설교문2024. 2. 2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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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럼시스트”(Palimpsest)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복기지”라고 번역하는 단어입니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양피지에 글씨를 써서 그 내용을 후대에 남겨주곤 했습니다. 글을 쓸 수 있고,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후대에 정보와 지혜를 남겨주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니 양피지가 그 시대에 얼마나 귀하였겠습니까? 당연히 사람들은 그 양피지를 재활용하곤 했습니다. 한번 글씨를 쓰고 난 뒤에 사람들은 그 글씨를 최대한 깨끗하게 지웠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글씨를 쓰는 방식이지요. 여러분 중에도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종이가 귀했던 시절에 노트를 재활용하였던 경험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노트에 연필로 글씨를 씁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노트를 다시 사용하기 위해 기존의 글씨를 깨끗하게 지우고 그 위에 또 다시 글씨를 쓰게 되지요. 그런데 여러분, 사람들이 아무리 깨끗하게 글씨를 지워도 글씨의 자국은 남게 되거든요. 그 옛날 양피지에 쓴 글씨를 아무리 열심히 지워도 자국이 남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양피지를 몇차례 재활용하고 나면, 또렷한 글씨 아래에 글씨를 수차례 쓰고 지웠던 연한 자국이 남아 있게 되는 데, 그것을 팰럼시스트 곧 복기지라고 부릅니다. 

“팰럼시스트”라는 개념은 여러 분야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건축학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이 현대적 건물로 모두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공간과 배치 안에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흐릿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면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국가나 문화의 흔적을 현대 도시에서도 여전히 찾아볼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건축이나 도시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에도 팰럼시스트는 존재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은 과거의 생각이나 과거의 관습을 버리고 현대적 문화에 따라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도 자세히 관찰하면 말끔하게 지워낼 수 없는 오랜 역사와 관습이 팰럼시스트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인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의 가장 큰 어려움은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채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생각에서 벗어나고 익숙했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가봇에서 미스바로

성경은 우리 인간에게 존재하는 팰럼시스트에 대해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모습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인간에게 깊이 새겨진 팰럼시스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간의 마음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팰럼시스트 가운데 마지막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그리고 가인으로부터 시작된 죄성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 15:19-20)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우리 인간의 마음에는 죄성이라는 팰럼시스트가 깊이 새겨져 있어서 그것을 씻어내고 그것을 지워내기 너무도 힘겹고 버거운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구약 성경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거대한 민족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에서 43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노예로 살다 보니,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노예근성이라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팰럼시스트가 새겨졌습니다. [과거]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그들에게 여전히 유효하고, [현재]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여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직업 언약을 맺었고, [미래]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새로운 비전인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를 그리워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삶은 포기하고 애굽 사람을 섬기는 과거로 돌아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노예근성의 팰럼시스트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기보다 가나안의 여러 민족들이 섬기던 풍요의 신들, 곧 바알이나 아세라 등을 섬기기에 바빴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주변 민족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민족의 고난을 허락하셨지만, 이스라엘의 마음은 그때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잠시 돌아왔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시면, 그들은 언제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느냐는 듯이 우상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사는 동안 이번에는 그들의 마음에는 우상숭배라는 뿌리깊은 죄성이 도저히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침내 언약궤는 블레셋 군대에 빼앗기고, 제사장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루에 죽고, 이 소식을 들은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이를 출산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의미로 이가봇이라고 아이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처럼 백성들의 마음에 우상숭배의 습성이 도저히 지워지지 않으니, 그러한 사사시대의 결론이 무엇이었습니까? “이가봇” 곧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마음에 우상숭배의 팰럼시스트가 제 아무리 뿌리 깊게 박혀 있더라도, 그리하여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어두운 이가봇의 시대가 지속되었더라도, 하나님의 때가 이르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으로부터 우상숭배의 뿌리깊은 죄성을 제거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사무엘을 마치 사사의 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에 의해 크게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이 회개하고 사무엘이라는 사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블레셋을 물리쳐 주시고 그들에게 다시 평화를 주십니다. 이 동일한 사건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 구약성경 사사기의 이야기였지요.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은 사사기에서 지루하게 반복되었던 이야기들과 전혀 다른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놓여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이 묘사하는 미스바의 회개를 기점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사무엘이 다스리던 시대는 물론이요,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이었던 사울의 시대를 지나, 다윗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오랜 세월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의 악습을 철저하게 끊어냅니다. 솔로몬 왕이 이방의 여인들과 함께 그들의 우상을 데려오기 전까지 이스라엘 역사에서 우상숭배는 더 이상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상 숭배라는 깊은 죄성에 빠진 시대를 이가봇의 시대라 부른다면, 오늘 본문은 이가봇의 시대를 끝내고 이스라엘 백성이 최소한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은 더 이상 섬기지 않는 미스바의 시대가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참으로 위대한 은혜가 무엇입니까? 도저히 끊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우리의 모든 죄악 된 습관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마침내 모두 제거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도저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죄악이 놓여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모든 죄악을 깨끗이 제거해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바라볼 때, 얼마나 많은 죄악이 가득 넘치고 있는지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가봇의 시대를 종결하시고 미스바의 시대를 열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새로운 복음의 시대를 펼치실 것을 믿기에, 우리 나라와 우리 민족을 위하여 소망 가운데 기도해야 할 수 있습니다. 


미스바의 시대를 위한 조건

오늘 본문은 이가봇의 시대가 미스바의 시대로 전환하는 장면을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미스바에서 일어난 회개의 사건이 그 이전의 사건과 다른 결과를 맺었던 것일까요? 과연 무엇 때문에 미스바에서의 회개 사건은 사사시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를 펼치게 되었던 것일까요? 오늘 본문이 알려주는 중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2절) 

언약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긴 이후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언약궤는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오늘 본문의 표현 그대로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네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성도 여러분, 20년이라는 그 오랜 세월 빼앗겼던 언약궤는 분명히 이스라엘 영토 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선택하셔서 선지자로 세워주셨고, 사무엘은 선지자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이라는 오랜 세월, 이스라엘은 여전히 이가봇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언약궤가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도, 사무엘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어도 그들의 마음이 여전히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어떻게 이가봇의 시대가 끝나고 미스바의 시대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까? 비로소 온 백성들의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곧 마음의 변화입니다. 

자, 이가봇의 시대를 끝내고 미스바의 시대를 시작할 수 있었던 핵심 이유, 그 두번째는 ‘진실한 회개’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모하자,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결단을 촉구합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3절)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모든 이방의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길 것을 요구합니다. 지금까지는 우상숭배라는 잘못된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바른 길로 그들의 삶을 돌이키라는 요구입니다. 곧 회개에 대한 촉구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을 사모하기 시작한 백성들이 사무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4절) 

그런데 여러분, 사무엘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모든 백성을 미스바로 모으고 다시 한번 철저한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리하여 미스바의 대각성이 일어나게 되지요.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6절)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물을 길어서 하나님 앞에 쏟아 부었지요. 지금 그들의 마음이 꼭 그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쏟아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이, 자신들의 깨어진 마음 상한 마음은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도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물을 길어 하나님 앞에 쏟는 행동에는 그들 자신의 마음도 이처럼 하나님께 내어 드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마음으로 깊이 통회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의 상한 마음을 내어드리는 철저한 회개의 역사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이가봇의 시대를 끝내고 미스바의 시대를 시작할 수 있게 하였습니까? 언약궤가 이스라엘에 들어왔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활동을 시작하였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 위에 우상숭배를 비롯한 뿌리깊은 죄악을 진심으로 회개하니 비로소 이가봇의 시대는 끝나는 것이요 미스바의 시대는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어떻게 이가봇의 시간을 끝내고 미스바의 시대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이 땅의 교회들이 어떻게 이가봇의 시간을 끝내고 미스바의 시대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죄악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지 않는 이가봇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이제는 하나님만 섬기는 새로운 미스바의 시대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다른 길은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의 변화요, 또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철저히 통회하는 진실한 회개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의 변화, 그리고 나 안에 깊이 뿌리 박힌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사순절이 마치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 부활절, 이가봇의 시대가 끝나고 미스바의 시대를 맞이하였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새로운 미스바의 시대를 활짝 펼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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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