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2016. 2.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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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본받을 것인가?

 

어느 조직이든, 혹은 어느 종교든 그 모임이 강력한 결속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롤 모델(role model)이 필수적입니다.

기독교가 매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것과 비슷하게, 불교 역시 매년 석가탄신일을 기념하지요. 기독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과 동등한 분 곧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은 나의 주인이 탄생하신 날이기에 기념하고 또 기념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유대교나, 기독교나 혹은 이슬람과 같은 유일신에 대한 개념이 없지요. 불교에서 석가는 유일무이한 하나님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깨달음을 얻은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유일무이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듯, 불교도 석가의 탄생을 기념합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에 있어서 롤 모델입니다. 기독교든, 불교든 그들이 지속적으로 본받으려는 어떤 모델이 있어야 그 모델을 중심으로 그 종교가 하나의 마음을 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 이르러 사도 바울은 크리스천다운 삶을 강조하지요. 예전의 이방인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에베소서 5장에 이르러 바울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중요한 원리 하나를 알려주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5:1-2)

 

우리가 의를 행하는 것, 선을 행하는 것, 진리를 행하는 것,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본받고 따르라고 제시되는 모델이 예수 그리스도만 계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세상을 닮으라고, 세상의 가치관을 본받으라고 말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사실을 지적합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5:3-7)

 

우리에게 본을 받으라고 보여주는 모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분의 은자 하심, 그분의 그 깊은 사랑,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만 따라갈 수 있다면, 그분만 닮아갈 수 있다면 우리 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워지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세상의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유혹의 손길이 교회 안에 존재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에베소교회의 형편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권면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너희를 유혹하는 자들을 멀리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본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빛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세상이 보여주는 가치관, 세상이 보여주는 삶의 모델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말씀하지요. 그런데 바울은 세상이 가르치는 가치관과 삶의 모델을 버리고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넘어, 이제는 예수님을 닮은 크리스천이 바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5:8-13)

 

우리 크리스천은 빛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의 아름다운 행동은 이 세상의 어두움을 책망하는 역할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의 현실이 어두울수록, 세상의 어두운 세력이 더욱 강력할수록, 여러분 더욱더 간절한 마음으로 이 땅의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교회를 통하여 다시금, 하나님의 빛이 이 땅에 비췰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 자는 자여 일어나라

 

오늘 본문에 근거하여 저는 두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첫째는 크리스천이 세상의 가치관이나 모델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예수님을 닮은 크리스천들이 세상의 어두움을 책망하는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이 두 가지를 강조했어요.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을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마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5:14)

 

여기서 ‘잠자는 자’는 누구를 의미할까요? 먼저는 에베소교회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와 우리 교회를 의미하죠. 그러면 ‘죽은 자들’은 누구를 의미할까요? 바로 세상 사람들입니다.

 

죽은 사람과 잠자는 사람은 외관상 비슷합니다. 모두 움직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그런 점에서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과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하나님도 알지 못하기에 세상 속에서 더러움과 방탕과 탐욕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겉보기에 비슷해요. 그러나 여러분, 겉보기가 비슷하다고 모든 것이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비록 빛의 자녀와 같이 살아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잠 자는 사람입니다. 지금 비록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지 못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교회는 죽은 자들이 아니라 잠자는 자들입니다. 언제라도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서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일어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잠자고 있는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잠자고 있는 이 땅의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지금 한국 교회는 잠자고 있는 것이지 죽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복음을 간직했으며, 그 복음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면, 잠자던 교회가 깨어날 것입니다. 잠자던 교회가 일어나 하나님의 빛을 어두운 세상 가운데 비추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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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