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2020. 4. 2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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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으며 우리가 만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치유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백부장의 하인을 치유하여 주시지요. 뿐만 아니라, 복음서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유해 주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면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13절)

여러분, 우리의 치유는 저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은 치유를 얻는 것이요, 예수님께서 조금 더 기다리라 말씀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때가 임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치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실 때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고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를 얻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어떠한 것인지,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중보의 능력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교훈은, 중보의 능력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5-6절)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합니다. 얼마나 열심히 예수님께 구했는지 성경은 ‘간구하였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그토록 열심히 예수님을 찾아 병을 고쳐달라고 했던 이유가, 자신이 병이 들었기 때문도 아니고, 집안 식구가 병이 들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자기 집 종을 위해 간구합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했던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복음서에 자신의 자녀가 병에서 치유되기를 바라며 예수님을 찾았던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 집 하인을 위해 예수님을 찾았던 사람은 이 백부장뿐이었습니다. 

백부장은 자기 집 하인이 죽으면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나기 때문에 예수님께 간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간청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기 집 하인이 병으로 괴로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여러분, 중풍병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고통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큰 아픔을 느끼는 병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하인은 통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이 백부장은 예수님을 향해 달려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인을 향한 백부장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7절)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찾아와 그를 위해 간구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아시고 직접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의 모든 소그룹이 중보기도의 능력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안에 질병으로 고통하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분은 교회 안에 환우들이 계십니다. 우리 교회 안에 마음에 상처를 받아 아파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죄악으로 영혼이 병들어 계신 분들이 계십니다. 이러한 때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자신의 집에서 종살이하는 하인을 위하여 예수님께 간절히 간구했던 백부장과 같이, 몸과 마음과 영혼의 질병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중보기도의 믿음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병든 환우를 돌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목회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요. 목회자가 먼저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늘 부족하여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집 하인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사람은, 유대교 지도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요, 그저 로마의 한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자신의 하인을 위해 간절히 간구할 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감동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오늘 본문을 근거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중보 기도가 다시금 새로워지십시오. 우리 교회의 모든 소그룹은 날마다 중보기도하는 모임이 되십시오. 몸이 아픈 사람, 마음에 상처가 가득한 사람, 여러 가지 죄악으로 영혼이 병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의 능력이 강력하게 나타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겸손의 능력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교훈은 겸손의 능력입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8절)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백부장은 출애굽기 18장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세웠던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직책입니다.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로마 군대에서 100명의 부하를 통솔하는 지휘관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고 로마 군대는 백부장이 이끄는 백인대가 군대 조직의 중추였습니다. 한 마디로 백부장이라는 직위는 특별히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팔레스타인에서는 결코 그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적 위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의 첫 번째 대답이 무엇입니까?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어쩌면 백부장은 유대인들의 전통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과 같은 이방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면 당시의 유대 사회에서는 예수님께 이로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만일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백부장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자신을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 하나님의 율법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가 자신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백부장은 로마의 군인으로서 철저한 계급의식에 사로잡혀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마 군대에서 계급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방문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로마의 황제가 그 누구의 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지요. 로마의 군인으로서 이 백부장은 황제보다도 더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 백부장은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자신이 주인으로 섬기는 로마의 황제보다도 더 높임을 받아야 할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어느 경우든, 이 사람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100명의 로마 군인을 거느리는 백부장이라는 지위가 예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메튜헨리라는 분은 오늘 본문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백부장은] 군대의 장교로서 마을을 통치하는 자이므로 스스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으나, 그는 자신의 높은 지위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서 그리스도께 나아가 간구하였던 것이다. 주목하라,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그리스도 앞에서는 구걸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들으십시오. “주목하라,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그리스도 앞에서는 구걸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겸손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질병과 모든 연약함을 고치십니다. 치유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치유하지 못하는 질병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만이라는 지독한 질병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겸손하다면,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가 반드시 필요한 병든 사람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정한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모든 질병을 치유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교만해질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가 나에게는 별로 필요가 없다는 교만, 그 교만한 마음이 우리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 사건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에게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때 야고보와 요한이 이렇게 대답하지요.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예수님께서 동일한 질문을 바디매오에게 하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바디매오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은 예수님께서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의 요청은 수락하여 주시지요. 

여러분,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드렸던 부탁과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드렸던 부탁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그 핵심적인 차이는 예수님께 요청하는 요구사항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태도에 있지요. 다시 말씀드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예수님,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형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제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실 때 우리에게 높은 자리를 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들은 자신 있었어요. 당당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 교회에서 많은 일들을 감당하셨지요? 지금까지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많은 것을 헌신하고 희생하셨지요? 그런데 여러분, 그렇다고 여러분이 우리 주님께 당당하게 나가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큰 질병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병자만이 아니라 로마 군대의 장교로서 마을을 통치하는 백부장도,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며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제자들도 예수님 앞에서는 ‘구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겸손의 능력입니다. 


말씀의 능력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세 번째 교훈은 말씀의 능력입니다. 백부장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을 직접 방문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백부장은 계속해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죠. 8절입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말씀으로만 하십시오. 그러면 하인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백부장은 역시 군인입니다. 그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지요.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네, 그에게는 자신을 다스리고 있는 상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통솔하는 부하 군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상관이 명령 한 마디로 부하 군사를 움직이고 통솔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면 모든 질병이 떠나갈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이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 이와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백부장이 배웠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하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만 백부장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권능이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는 믿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권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면, 우리의 영혼은 치유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회복됩니다. 우리의 육신은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진심으로 믿을 때, 우리를 치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대역전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깜짝 놀라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10-12절)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감탄하십니다. 중보기도의 능력, 겸손의 능력, 말씀의 능력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는 깜짝 놀라십니다. 그리고 위대한 선언을 하시지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시는지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여기까지는 백부장과의 대화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여기서 따르는 자들은 이방인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이방인들, 곧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로마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이방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방인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천국에 앉아 있지만, 정작 그 나라의 본 자손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유대인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저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오늘 이 시대, 교회를 오래 다니고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다시 한 번 깨어나십시오. 다시 한번 믿음의 횃불을 치켜드십시오. 중보 기도를 회복하십시오.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를 구걸하십시오.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십시오.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이 다시금 불붙어 우리 가운데 온전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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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