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2020. 5. 1. 16:55

마태복음 8장 5절부터 13절에서 우리는 한 백부장의 믿음을 배웠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우리에게 중보기도의 능력, 겸손의 능력, 말씀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이 필요하고 우리 역시 백부장과 같이, 그리고 한 나병환자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기도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를 생각할 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는 나의 열정적인 기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그와 같은 원리를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4절과 15절을 우리 한 목소리로 봉독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 들더라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왜 들어갔는지 그 이유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한 나병환자와 같이 예수님께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한 것도 아닙니다. 한 로마 군대의 백부장처럼 예수님께 간구한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어떠한 간청이나 간구가 없지요. 예수님께서 스스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워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베드로나 베드로의 아내가 예수님께 지금 열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워있는 장면을 목격하십니다. 

여러분, 이쯤 되면 베드로나 베드로의 아내가 한번쯤은 등장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쯤 되면 예수님께 어머니를 고쳐달라고 요청할 만도 하잖아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나 그의 아내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 들더라”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는 그의 손을 만져 병이 떠나가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시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베드로의 역할, 베드로 아내의 역할, 심지어는 베드로의 장모 자신의 역할도 그 어느 것 하나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님께서 어떻게 행하셨는지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고통당하는 장면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러자, 열병이 떠나고 베드로의 장인이 예수님을 수종 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우리의 역할은 없어요. 물론, 우리가 전혀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해야지요. 우리 자신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치유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로 병이 낫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육신이 질병으로 고생하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큰 상처로 고통스러우세요? 여러분의 영혼이 지금 큰 죄악으로 말미암아 병들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상처와 질병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십니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자신의 손을 내밀어 우리를 고쳐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니, 우리가 그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순서가 계속 바뀌지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질병과 아픔 가운데 있는 나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고쳐주시고, 그 치유를 경험한 우리가 감사와 감격의 마음으로 우리 주님을 위하여 봉사도하고 헌신도 하는 것인데, 우리는 자꾸 내가 먼저 헌신하고, 내가 먼저 봉사하고, 내가 먼저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의 손길이 나에게 찾아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오해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치유가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의 치유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장모의 병을 고치신 장면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하신 장면이 등장합니다. 16절의 말씀을 함께 봉독 하겠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날이 저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날도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귀신 들린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예수님께로 옵니다. 사람들이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데려 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그 모든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능력이 크신 분이기에 말씀 한 마디로 모든 귀신을 내어 쫓으실 수 있고, 말씀 한 마디로 모든 질병을 깨끗하게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날 밤 우리 주님은 자신에게 몰려오는 수많은 병자들을 다 모아놓고, ‘이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의 질병은 떠나갈 지어다’ 선언하셔서 단 한 번에 모두 치유하셨을까요? 

오늘 본문의 장면이 누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온갖 병든 환자들을 치유하시는 장면을 보다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 있는 구절을 제가 읽어드립니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눅 4:40)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방식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손을 얹어 고쳐주셨어요.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베드로의 장인을 찾아가서 고쳐주셨잖아요. 예수님은 날이 저무는 그 시간에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한 사람씩 손을 얹어서 고쳐주십니다. 여기에 예외는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질병이 있으세요? 예수님께서 직접 여러분을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손을 얹어 고쳐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이 병에 걸러 아파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여러분을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손을 얹어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묵상하면서 저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치유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질병 모두를 치유하신다는 사실입니다. 16절을 다시 보십시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여러분, 귀신이 들렸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혼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의미지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다 잃어버리고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불쌍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망가져 버린 영혼, 상처 난 마음을 우리 주님이 치유하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다음 구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귀신들을 좇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네, 우리 몸의 질병도 고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치유 사건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치유를 영혼의 치유로만, 마음의 치유로만 바라보는 것도 균형을 잃은 말씀 묵상입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건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치유를 육신의 치유로만 바라보는 것도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에는 우리의 몸을 치유하시는 것,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시는 것,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시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좋은 치료자가 되십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주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종 

마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장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많이 고치시고, 병든 환자를 많이 고치시는 장면을 소개하였습니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직접 찾아오신다는 사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여기에 중요한 구약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인 17절을 함께 봉독 하겠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지금 마태가 인용한 구절은 이사야 53장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사야 53장은 고난당하는 종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오늘 마태가 인용하는 구절의 이사야 말씀을 제가 봉독해 드립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4)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좋은 치유자가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병든 몸과, 우리의 상처 받은 마음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병들어 아파하는 우리의 영혼을 바라보시며 찾아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의 손을 얹으시고 치유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고난당하는 종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악으로 말미암아 병들어 아파하는 우리의 영혼을 고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상하고 찢긴 영혼의 아픔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지금까지 얼마나 고단한 인생을 살아오셨습니까? 여러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질병으로 고통당하며 살아오셨습니까? 여러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품고 살아오셨습니까? 우리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그 모든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나의 모든 아픔과 슬픔과 고통과 죄악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십시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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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