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하나님 백성의 경제생활에 대한 내용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곧 경제적 인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인간을 경제적 인간, 혹은 호모 이코노미쿠스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자신의 경제적 유익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특성을 지적하는 것이지요. 인간이란 누구나 자신의 재산이나 소유가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궁핍하고 가난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러한 경제적 인간의 모습과는 전혀 맞지 않는 명령입니다.
면제년 규례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사람이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면, 한 사람은 채무자가 되고 또 다른 사람은 채권자가 됩니다. 이러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는 너무도 명백한 것이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는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채무자에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도록 강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명령은 7년에 한 번씩 면제년을 맞이하면서 모든 채무관계를 없었던 일로, 무효로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면제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규정이 본문 2절에 등장합니다.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7년에 한 번씩 하나님께서 친히 면제년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면 채무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금액을 빚졌는지 상관없이 모든 채무를 면제해주라는 하나님의 강령한 명령이지요.
만일 이와 같은 법이 강력하게 시행된다면, 경제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있는 여윳돈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싶을까요? 아니면 빌려주기 싫을까요? 당연히 이러한 법이 정해져 있는 나라나 도시에서는 돈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지 않으려고 하겠지요. 은행에서 이자를 높이 쳐주어야 예금이라도 하고 싶은 것인데, 이자는커녕 원금도 다 탕감해주어야 한다면 누가 돈을 빌려주겠습니까? 이러한 인간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계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또 하나의 규정을 말씀하십니다. 본문 7절과 8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한편에서는 7년마다 면제년을 실행하라 말씀하시고, 다른 한편에서는 넉넉하게 빌려주라고 명령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실행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넉넉히 빌려주도록 하려면, 그들에게 높은 이자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반대로, 돈을 빌려주더라도 면제년이 되면 모든 채무 관계를 청산하도록 명령하면 당연히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으로는, 특별히 오늘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항목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하여 분명히 명령하십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인간의 본성에도 맞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어떠한 의도인지는 너무도 분명하게 알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 주변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우리의 손을 벌려 도움을 주라는 말씀이지요. 나에게 손해가 미칠 것을 뻔히 다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향해 움켜쥔 나의 손을 펼치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권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정당한 시대를 살아가더라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인간의 뿌리깊은 이기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필요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경제적 인간의 모습을 넘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나누며 베푸는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경고와 약속
본문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궁핍한 이웃의 필요를 외면하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우리의 마음 깊이 자리잡고 있는 이기적인 욕망은 이와 같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크게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시대를 역행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대답을 찾는다면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본문 9절을 보십시오.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참 무서운 말씀이지요. 우리 주변에 궁핍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아 그들이 괴로운 가운데 하나님께 호소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의 호소를 들으신 하나님은 바로 우리에게 죄를 정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가 자비를 베풀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오늘 밤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면 그것이 고스란히 우리의 죄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 경고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면,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이기적인 본성을 물리치고 나의 손을 펼쳐 궁핍한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곁의 이웃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비결, 그 두 번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이죠. 본문 10절입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약속도 주십니다. 아끼는 마음, 인색한 마음에서 벗어나 이웃을 위해 우리의 손을 펼쳐 나누고 베푼다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친히 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경고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종합해 보면 우리가 궁핍한 이웃에게 나의 소유를 나누는 것은 단지 나와 그 이웃과의 관계, 곧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궁핍한 이웃에게 나의 손을 펴 나누는 일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을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마 25:4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십니까?
여러분은 지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경외의 마음,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의 마음을
여러분 곁에 있는 이웃을 통해 표현하십시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요,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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