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을 비롯한 공관복음에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기 사역은 주로 갈릴리 지역에서 행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후기 사역은 주로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행하신 초기 사역을 크게 3가지 사역으로 요약해서 설명해줍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와 같은 내용이 등장하지요.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 9:35)
여기서 모든 도시와 마을은 주로 갈릴리에 있는 다양한 도시와 마을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1) 가르치시며 2)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3)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이것이 초기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대표적인 활동 세 가지입니다.
오늘 본문과 동일한 구절이 이미 마태복음에서 나왔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을 찾아보십시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 4:23)
마태는 자신이 요약한 예수님의 초기 사역 세 가지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마태복음을 기록해 왔습니다. 가장 먼저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입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두 번째로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을 소개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에 이르는 산상보훈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치유하시는 사역도 하셨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8장과 9장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되어 있지요.
목자의 마음
이처럼 마태는 예수님의 초기 사역을 세 가지로 요약하고 각각의 사역에 대하여 길게 설명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그 세 가지 사역을 다시 한번 요약한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집중하는 부분은 바로 그다음 구절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9장 35절과 36절을 함께 봉독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세 가지 사역을 주로 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모든 질병과 모든 연약함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역을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만들었던 비결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무리를 보시며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시며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 그들을 향한 목자의 마음을 품으셨습니다. 바로 그 목자의 마음으로 복음을 선포하셨고, 바로 그 목자의 마음으로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시고, 바로 그 목자의 마음으로 모든 질병을 치유하셨던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질병을 치유하는 사역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사역들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목자의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목자의 심정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신 적이 있습니다.
“목자의 심정이란 가난한데 자식이 많은 엄마의 심정입니다. 자식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에게 줄 게 없어요. 먹을 것이 없다고 엄마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머리카락이라도 잘라주고 싶고, 손톱이라도 빼주고 싶고, 막 쫓아다니면서 무엇이든 먹이고 싶은 겁니다. 그게 목자의 심정이지요. 한국 교회가 바로 그 목자의 심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마음으로 천국의 복음을 선포하셨고, 바로 그 마음으로 병든 사람을 치유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어찌,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이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만을 향한 마음이었겠습니까. 오늘도 예수님은 동일한 마음으로 천국의 복음을 우리에게 선포하시고, 예수님은 동일한 목자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예수님은 동일한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치유의 능력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
예수님께서 목자의 마음으로 무리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9장 37절입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추수할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추수할 일꾼이 적다는 것입니다.
추수할 것이 많습니다. 추수할 때를 맞이한 농부의 심정을 상상해보십시오. 그것은 해변에서 수많은 모래알을 바라보는 피서객의 마음과 다릅니다. 해변에 있는 수많은 모래알도, 논과 밭에 널려있는 곡식알도 많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해변에 있는 수많은 모래알을 보면서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추수할 곡식이 논이나 밭에 가득한 모습을 보면, 농부는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농부에게 있어서 논과 밭에 널려있는 곡식 하나하나가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래알이 많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추수할 곡식이 많다고 말씀하셨지요. 예수님 주변으로 수많은 사람들, 성경의 표현대로 무리가 몰려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그들을 해변의 모래알과 같이 생각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지금 당장 추수하고, 지금 당장 그들의 마음을 붙잡아주어야 한다는 농부의 심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추수할 곡식은 많은데 무엇이 없습니까? 추수할 일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시대의 이스라엘은 종교가, 곧 유대교가 국가를 운영하는 가장 중요한 이념이자 정치 조직이었습니다. 당시 유능한 사람들은 모두가 유대교에 입문하였고, 유대교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 가운데 유능한 사람,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이 없다고 한탄하십니다. 예수님 시대 유대교 지도자들은 추수를 기다리는 무리들에게 추수하는 일꾼이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 무엇이 부족하여 예수님 시대 유대교 지도자들은 추수할 일꾼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까? 그들에게 성경 지식이 부족했습니까? 그들이 정기적으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그들이 구제를 하지 않아서 일까요? 그들이 종교적인 혹은 정치적인 조직이 없어서입니까? 아닙니다. 그 모든 것에 있어서는 완벽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결정적으로 없었던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마음, 곧 목자의 심정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필요로 하는 일꾼은 머리가 좋은 사람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필요로 하는 일꾼은 성경 지식이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필요로 하는 일꾼은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필요로 하는 일꾼은 무리를 바라보며 추수할 알곡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 사람들을 보면서 목자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일꾼을 위한 기도
예수님의 말씀은 정확한 지적입니다. 그러면 이른바 ‘평신도’된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요. ‘하나님, 우리 교회의 목사님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네요.’ ‘하나님,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이 문제입니다. 그들도 우리를 예수님처럼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 소그룹 리더들이 문제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목자의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불평하실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불명이 아니라, 교회의 일꾼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9장 38절입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물론, 이 구절은 추수할 일꾼을 새롭게 보내달라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일꾼이 ‘추수할 일꾼’, 곧 목자의 심정을 품은 일꾼이 되도록 기도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와 같은 교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의 일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세워진 일꾼들이 목자의 심정으로 교회를 바라보며, 우리 교회의 성도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 곧 목자의 심정을 품은 일꾼으로 세워지기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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