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가운데 욥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구약의 욥기를 처음 1장부터 42장까지 진지하게 정독하여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제가 구약의 욥기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읽기 전에 저는 욥기를 본문으로 한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설교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욥과 같이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놀라운 은혜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욥은 재산을 자녀들을 다 잃어버리고,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자신의 몸이 병까지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욥은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하나님은 욥에게 처음보다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런데, 제가 그 설교를 들은 이후에 실제로 욥기를 처음 1장부터 42장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들었던 설교의 주제는 욥기 전체가 가르치는 핵심 주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의롭게 된 우리가 고난이 몰려오는 순간에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하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훈이 욥기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욥기의 매우 작은 부분입니다. 욥기의 핵심 주제는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게 된 크리스천 역시 큰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크리스천이 당하는 고난과 고통은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과 고난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이죠.
욥은 몸에 병을 얻었습니다. 자녀들을 마음에 묻었습니다. 모든 재산을 잃었습니다. 이만하면 큰 고난이요, 큰 고통입니다. 그런데 욥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친구들이 와서 그에게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정죄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크리스천에게도 어렵고 힘든 시기가 찾아옵니다. 오랫동안 준비한 시험에서 낙방할 수가 있고요. 원치 않는 질병이 찾아올 수도 있고요.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려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고통과 고난은 더욱 참아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렇죠? 우리에게 큰 아픔이 찾아오면 우리는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슨 큰 죄를 범하였나?’ ‘내가 알지 못하는 죄악이 있나?’ 고민을 하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크게 떠오르는 것이 없단 말이죠. 그러면 우리는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왜 이러실까?’ ‘하나님은 나에게 너무하신 것이 아닌가?’ 이미 나에게 찾아온 아픔도 큰데, 거기에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포함하여 고민하게 되니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 - 인내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일이 왜 이렇게 힘이 듭니까? 왜 저는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이토록 노력하였지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잘 경험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이와 같이 질문한다면, 예수님은 ‘왜냐하면’이라고 대답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과 같이 대답하실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24절과 25절입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처음부터 이리 떼 한 가운데 던져진 한 마리의 양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사셨던 예수님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람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봉사하였지만 그분에게 돌아온 것은 뭐예요? 십자가 죽음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세상의 출세와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이나 칭찬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길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는 인내입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2절) 그 다음을 주목하십시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3절)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하나님, 왜 우리가 참아야 합니까? 그냥 저희에게 좋은 길을 주시면 안 되시나요? 우리가 지금까지 크게 잘못한 것도 없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왔고, 지금까지 교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살아왔고, 그래도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려고 노력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조금만 좋은 것으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우리의 이러한 질문에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주인으로 모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죄인들이 자신을 거역한 일을 참으셨기에, 우리도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내의 원리 - 하나님의 섭리
예수님께서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인내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가르침을 주시지요. 오늘 본문 26절부터 28절까지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인내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6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여러분,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왔는데 여전히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감추어진 것은 없습니다.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28절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우리가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리 떼 한 가운데 양 한 마리가 던져졌는데 이리 떼가 그 양을 가만히 놓아두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그마한 잘못만 발견하면, 혹은 우리에게 조그마한 불행만 찾아오면 세상 사람들은 교묘하게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가 인내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우리의 영혼이 그분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설교의 초두에 욥기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마치 욥기를 1장부터 읽기 시작해서 20장 혹은 30장까지 읽고 머물러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욥기는 처음 1장부터 천천히 정독하며 마지막까지 읽기조차 쉬운 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욥의 고난은 한두 장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 뒤에 장황하게 욥이 왜 그와 같은 고난을 당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뚜렷한 답을 내지 못한 채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욥기를 처음부터 20장 혹은 30장까지만 읽고 멈추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의인에게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그 고난도 견디기 힘이 듭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그 의인이 왜 고난을 받았는지 조차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못하는 크리스천의 삶이 바로 그와 같이 답답한 매일의 삶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힘들지만 욥기를 42장까지 다 읽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과정이 지루했습니다.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욥기를 42장까지 다 읽으면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게 됩니다. 의인의 고난을 왜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이 세상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기에 많은 고난을 뒤따릅니다. 괴롭지요. 힘이 들지요.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왜 나에게 이와 같은 고난이 찾아오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인내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지금은 우리가 다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신뢰해야 할 ‘섭리’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28절부터 31절까지 우리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참새 두 마리가” 여기에서 한 마리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수 없이 많은 참새를 만들어놓으셨지만, 그 한 마리 한 마리에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말씀입니다. 참새 한 마리조차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생명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그렇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는 귀한 생명이라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께 얼마나 귀중한 존재이겠습니까? 우리의 개인의 모든 부분까지도 세밀하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결론적으로 그 다음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참새 한 마리의 생명도 귀하게 바라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사람은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인생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왜 하나님께서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이리 떼 한 가운데 던져진 한 마리 양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마지막 순간까지 참고 견디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해 헌신하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였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나 자신을 붙잡고 계신 것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 한 가지 사실은 바로 하나님께서 내 삶의 처음과 마지막을 붙잡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참으며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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