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에서 시작되는 언어의 힘
2004년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코드』가 당시 출판시장에 큰 돌풍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사복음서 외에 다른 복음서가 있고, 바로 그 복음서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는 전제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은 많은 논쟁을 일으키면서 화제의 중심이 되었죠. 당시 『다빈치코드』라는 하나의 소설만이 아니라 공중파 다큐멘터리에서도 소설 『다빈치코드』가 전제하고 있는 내용, 곧 성경에 포함된 사복음서 외에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 있고 그 기록을 보면 지난 2000년 동안 교회가 가르쳤던 내용과는 다른 예수님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내용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대중적인 소설과 공중파 방송의 다큐멘터리는 당시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시 저는 중고등부를 담당하던 전도사였습니다. 중고등부 겨울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소설 『다빈치코드』에 등장하는 나그함마디 문서가 과연 어떠한 문서이고, 고대교회가 나그함마디 문서를 비롯하여 예수님의 인성을 보여주는 저작들은 꼭꼭 숨긴 뒤, 예수님의 신성만을 강조하는 사복음서를 성경에 첨가하였다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수련회 기간 안에 설명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신약 성경에 사복음서를 비롯한 27권이 포함되게 된 과정을 조사하면서, 소설 『다빈치코드』의 전제가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지를 보여줄 수 있는 충분한 자료를 다 찾아놓았어요. 이제 그것을 정리해서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빈치코드』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면서, 제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것보다는 청년 교사가 이야기를 해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 청년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 청년에게 특강을 해 달라고 부탁했던 거죠.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그 청년은 신학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청년이거든요. 그 청년이 자신은 도무지 특강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설득해서 특강 강사로 세웠어요. 그리고 제가 준비한 모든 자료를 다 주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논리적인 흐름을 다 알려줬어요. 자료가 있고, 논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 되는 거죠.
수련회 첫째 날이 되었습니다. 그 청년이 『다빈치코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처음 5분 정도는 논리적으로 잘 설명했어요. 그런데 그 5분의 내용은 『다빈치코드』가 전제로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논리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강의가 시작된 지 5분 정도가 지난 이후부터 이 청년의 머리가 백지가 된 거예요. 그때부터 더듬기 시작했는데, 맨 뒤에 앉아 있던 제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실수했구나. 그냥 내가 할 걸….
그런데 여러분, 그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처음 5분이 지나자 그 청년의 머리가 백지가 되었다고 했잖아요? 그 뒤로부터 약 20분 동안 그 청년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청년이 울먹거리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지금 전도사님으로부터 들었던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TV에서 어떤 내용이 나오고, 소설에서 어떤 내용이 나오든 상관없이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거죠.
그날의 수련회가 끝나고,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수련회에서 제가 한 설교를 기억하고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저에게 이야기한 학생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당시 수련회에 참여했던 학생들 중 대부분이 그 청년 교사가 수련회 때 눈물을 흘리며 『다빈치코드』에 대해 이야기했었다는 사실, 그 선생님이 진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음을 제가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언어의 힘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MBC 아나운서였던 백지연 씨가 언젠가 스피치에 대해서, 특별히 목회자들의 스피치인 설교에 대해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인터뷰에서 백지연 아나운서는 매주일 예배에 참여하여 설교를 듣는 평신도들, 백지연 아나운서 자신을 포함한 평신도들은 매우 똑똑한 것 같으면서도 어리석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는 것이 별로 없기에 설교자들은 쉽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백지연 아나운서는 평신도들이 똑똑한 것 같으면서도 어리석지만, 동시에 어리석은 것 같으면서도 똑똑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성도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가 진심으로 이야기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귀로 듣는 것은 공기를 울리는 소리이지만, 사람이 소통하는 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사람의 진심이거든요. 우리의 언어에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이 묻어 나오고, 사람들은 우리의 언어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무가 좋아야 열매가 좋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언어 생활이 우리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하십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2장 33절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우리가 함께 읽은 33절의 개역개정판 성경의 번역은 마치 언행일치를 명령하는 말씀인 것처럼 보입니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든지, 아니면 나무도 나쁘고 열매도 나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일하라는 말씀으로 들리죠.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의미는 그것이 아닙니다. 표준새번역(개정) 성경의 번역을 읽어드리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네, 대부분의 영어 성경도 이와 같은 의미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비유에서 나무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열매는 무엇을 가리키나요? 바로 우리의 언어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좋으면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도 아름답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마음에 악한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은 제 아무리 노력을 하고 결심을 해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는 공격적이며 악한 언어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과 언어의 관계를 나무와 열매의 관계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인간의 마음과 언어의 관계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35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5절에서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을 창고로, 인간의 언어를 창고에서 꺼낸 물건으로 비유하시죠. 휴지통에 온갖 음식 쓰레기를 채워놓았는데 제 아무리 탁월한 요리사라 할지라도 어떻게 거기에서 먹기 좋고 몸에도 좋은 음식을 꺼낼 수 있겠어요? 냉장고에 온갖 좋은 음식으로 가득 채워 놓아야 그곳에서 맛 좋은 음식을 꺼낼 수 있는 거지요. 우리의 마음에 비교의식, 열등감이나 우월감, 혹은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떻게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가득 차지 않은데, 어떻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수시로 변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는데 어떻게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줄 수 있겠느냐고요.
여러분, 진심으로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가기 원하세요? 여러분의 언어와 여러분의 행동이 크리스천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이 가득하기를 소원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 차 넘쳐흐를 때 비로소 우리의 언어와 우리와 행동이 크리스천다운 모습으로 조금씩 바뀌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로 우리는 심판을 받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먼저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언어는, 그리고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이와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사실을 여러분에게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언어를 기준으로 우리의 마음을 평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2장 36절과 37절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 심판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언어입니다.
아니 예수님, 우리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에 대해 ‘인간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배웠는데요.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이나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동으로 마지막 날에 심판하실 수가 있나요? 때로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행동에 실수가 있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평가하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여러분, 이렇게 질문하지 마십시오. 말씀드렸잖아요.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언어를 통해 묻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사람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평가하실 때, 사람을 심판하실 때 그의 언어를 통해 평가하시고, 그의 언어를 심판의 기준으로 삼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지금 바리새인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앞을 보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는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의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적대감을 품게 되었고, 급기야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 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마 12:22-24).
여러분, 하나님께서 바리새인을 평가하시죠. 바리새인의 마음에 있는 예수님에 대한 적대감을 하나님께서 평가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리새인의 마음에 예수님을 향한 적대감이 가득 차 있다는 있다는 증거로 무엇을 들이대십니까? 바로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쏟아 놓았던 그 비난의 언어들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우리 인간도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결국에는 그들의 언어와 행동을 기준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도 누군가의 마음을 평가함에 있어서 그들의 언어와 행동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무엘 선지자에 대한 평가는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3장 19절은 이렇게 말씀하거든요.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이 말씀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사무엘의 예언이 하나도 헛되지 않고 모두 현실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꼭 그렇게만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사무엘의 말에는 힘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서 사무엘이 한 마디 하면 그 말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넘어서, 사무엘은 그의 언어에 자신의 진심이 담겨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면, 사무엘의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가 어떤 말을 하든, 그의 말이 헛되지를 않았던 것이죠. 사무엘의 언어에 대해 이토록 칭찬하고 있는 사무엘상의 말씀은 실상, 사무엘의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를 평가해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단순한 말 실수였다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그것이 아닌데, 말하는 기술이 부족해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했다고도 변명하지 마세요. 예수님의 논리는 명쾌합니다. 여러분의 언어가 여러분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여러분을 평가할 때도, 나아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평가하실 때도 그 기준은 여러분이 평소에 내뱉는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 전투의 현장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 그 두 번째는 우리의 마음이 영적 전투의 현장이라는 사실입니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향해 독설을 퍼붓자 예수님은 그들의 언어가 얼마나 악독한지를 지적하셨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폭력적인 언어만 공격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대해 매우 중요한 하나의 비유를 말씀해주십니다. 만일 누군가 어느 집을 약탈하려 한다면, 그 집을 지키고 있는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으면 그 집을 약탈할 수 없다는 비유입니다(마 12:29).
여러분, 예수님의 이 비유에서 강한 자가 지키고 있는 집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미 어두움의 세력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내려는 예수님의 공격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 안에 어두움의 세력과 빛의 세력이 서로 싸움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가장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이 어딘지 아세요? 크리스천과 안티기독교가 갈등하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기독교인과 이슬람교도들 사이의 싸움이 일어나는 현장이 아니라고요. 가장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은 바로 여러분들의 마음입니다. 당연하지요. 우리의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달라지거든요. 우리의 마음이 비교의식, 열등감, 우월감, 미움, 시기, 다툼, 탐욕 등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의 말과 행동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행동이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동은 참된 크리스천의 말과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가장 점령하고 싶어 하는 고지는 어디일까요? 당연히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반드시 지키고 싶은 요새가 있다면 어디일까요? 당연히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의 마음이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사로잡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에 성령의 충만함이 부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음으로부터 말과 행동으로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능력이 흘러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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