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그리고 우리 시대의 주일은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 너무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에 신앙심이 깊은지 얕은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누군가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여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주일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보면 압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이처럼, 주일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본 중에 기본이요, 기초 중의 기초입니다. 안식일과 주일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기초 하나가 다시금 반듯하게 놓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율법으로서의 안식일
안식일은 율법입니다. 안식일은 한 주에 하루는 쉬라는 것이죠. 그리고 모든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안식일이 아닙니까? 노동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은혜, 일상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다는 은혜가 안식일입니다. 쉼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애굽에서 종으로 살면서 쉼이라고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선물로 주십니다. 은혜지요. 심지어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진영에 함께 살고 있는 노예, 종, 그리고 가축까지도 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율법으로 명령하셨습니다. 안식일의 제도 자체는 사람들에게 은혜이지만 그 은혜를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얼마나 엄격하게 율법으로 요구하시는지 보십시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출 31:14)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사형을 선고하십니다. 실제로 민수기에 보면 안식일을 어겨 사형에 처해진 사람이 등장합니다. 누군가 안식일에 나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옆에 있던 사람이 보고 모세와 아론에게 알렸지요. 모세는 하나님의 처분이 무엇인지 기다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15장 35절 말씀을 읽어드립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하나님의 이 말씀에 의해 안식일을 어긴 이 사람은 사형을 당합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세요. 한 주를 보내면서 안식일 하루만큼은 모든 업무와 일로부터 자유하여 하나님께 집중하는 안식일은 분명 사람들에게 매우 유익하고, 바람직한 제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율법이 아닌 그저 권고사항으로 제시하셨다면 안식일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었을까요? “안식일에는 좀 쉬는 것이 너희에게 꼭 필요한 일이고, 최소한 한 주에 하루만큼은 하나님께 집중해야 너희의 영혼이 새로운 힘을 얻고, 너희의 종이나 가축까지도 쉬게 한다면 너희 공동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을 이스라엘 백성의 재량권 아래에 두었다면,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며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육식보다는 채식이 몸에 좋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육식을 피하지 못하고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규칙적으로 운동하지 못하고요,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확보되어야 나의 영혼이 성숙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아무리 좋은 안식일의 제도를 알려주신다 할지라도, 그것을 율법으로 정하여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못 박아놓지 않으면 인간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혜인 안식일을 율법으로 제정하셨던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은 은혜입니다.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도들과 만나 교제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놀라운 은혜의 시간이 주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일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요, 은혜라고 하여 율법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시면 오해입니다. 때로 주일을 지키기가 부담되고, 때로 마음이 분주하고 어떠한 일로 말미암아 마음에 조급함이 생길 때, 주일이 은혜이면서 동시에 율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마음속에 썩 내키지는 않고, 예배를 빠지면서까지도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주일을 지키는 것이 율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매주일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때로는 은혜가 아닌 율법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죠. 그런 경우가 많으시죠? 특별히, 교회 안에서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가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부담스러운 일이 있는 날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바로 그때, 주일은 은혜이면서 동시에 율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교회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부담이 있는 주에는 더욱 모든 순서에 다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주일을 율법의 차원에서도 지켜 나갈 때, 주일에 담겨 있는 은혜의 풍성함을 더욱더 깊이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로서의 안식일
안식일은 율법이면서 동시에 은혜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은 안식일을 율법으로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을 어긴 사람은 사형에 처하도록 되었고, 그에 따라 사형을 당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율법의 조항을 자세히 묵상하다 보면 안식일은 율법이면서 동시에 은혜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명령하신 출애굽기 20장을 찾아보시겠습니까? 출애굽기 20장 8절부터 11절까지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8절부터 10절까지는 안식일에 대한 규정이 나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켜야 합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자신의 일을 할 것이지만, 일곱 번째 안식일만큼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 그들의 가족, 그들의 종과 가축, 그리고 그 집을 찾은 손님들까지도 모든 일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신학적인 이유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율법으로 규정해 놓으셨습니다.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는 그것이 율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 만물을 만드신 창조의 섭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은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순차적으로 온 만물을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우리의 가정을, 그리고 우리의 교회를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아름답게 빚어가고 계셔요. 하나님의 그 섭리 안에 일주일에 한 번 우리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나의 인생과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를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복된 날, 바로 그 날이 안식일인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십계명이 두 번 등장하죠. 우리가 조금 전에 찾아본 출애굽기 20장과 더불어 신명기 5장에도 십계명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신명기 5장 12절부터 15절의 말씀도 함께 찾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명기 5장 12절부터 14절까지는 출애굽기와 동일한 안식일의 규정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와 다른 부분이 있지요. 바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신학적 이유를 밝힌 부분입니다. 바로 15절입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출애굽기에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언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구원의 역사를 언급합니다. 신명기 말씀에 의하면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 곧 꼭 지켜야 하는 율법이지만,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율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날이 애굽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처음 율법으로 주어지는 그 순간부터 율법이지만 동시에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키는 주일도 마찬가지죠. 주일은 율법이면서 동시에 은혜입니다.
안식일의 의미를 교정하시는 예수님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안식일의 의미에 대해 오해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바리새인이죠. 오늘 본문 마태복음 12장 1절과 2절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지금 바리새인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안식일이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이니 어길 수 없다는 거죠.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아무런 노동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율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아가 안식일을 보다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 유대교 랍비들이 가르쳐준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일면 타당합니다. 분명히 안식일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율법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잊고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안식일은 율법이면서 동시에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오해를 교정해주시기 위해 3가지 질문을 던지십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2장 3절부터 5절까지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구약성경 가운데 안식일을 율법으로만 이해하면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구절을 소개하십니다. 먼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가면서 너무도 배가 고파 제사장들에게만 허락된 떡을 먹었던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 대해서 성경은 다윗이 범죄 했다고 이야기하지 않거든요. 또 하나의 장면은 안식일에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는 ‘노동’을 하도록 율법이 규정해놓은 부분입니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심으로써 예수님은 안식일을 율법으로만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의 고정관념을 교정해주십니다. 안식일은 율법이면서 동시에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은혜가 아닌 율법으로만 생각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만일 우리가 안식일을, 혹은 주일을 율법이 아닌 은혜로만 생각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말씀을 주실까요? 안식일이나 주일을 은혜로만 여겨서 거의 방종으로 흐를 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율법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지 않으실까요? 주일을 지키는 것보다 나의 개인적인 업무를 처리하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것을 선택할 때 예수님은 안식일이 십계명에 기록된 계명이 아니냐고, 안식일을 어긴 사람이 사형에 처해지지 않았느냐고 질문하지 않으실까요?
만일 우리 가운데 주일을 은혜가 아닌 율법으로만 여기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래서 주일을 지키지만 그 안에서 참된 자유와 은혜를 맛보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주일은 율법이면서 동시에 은혜라고 알려주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만일 우리 가운데 주일을 율법이 아닌 은혜로만 여기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래서 자신의 처지와 자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주일을 지키는 일이 좌우되는 분들이 계시다면, 주일이 은혜이면서 동시에 율법이라고 가르쳐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의 유일한 주인 – 예수님
안식일을 은혜가 아닌 율법으로만 생각했던 바리새인의 오해를 지적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안식일의 참된 의미가 지적하십니다. 오늘 본문 6절부터 8절까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호세아 6장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그런데 호세아 6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요구하셨던 거죠. 그들은 제사를 드려요. 안식일 규정에 따라서 제사를 드렸다고요. 그런데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호세아 선지자는 안식일 제도, 제사 제도보다 더욱 중요한 하나님을 그 마음에 모시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지금 율법의 계명, 율법의 문제에 얽매여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 자신을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도 동일한 말씀을 하시죠. 8절을 보시면, 안식일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안식일은, 그리고 주일은 율법이면서 동시에 은혜입니다. 안식일과 주일은 율법이에요.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율법으로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일을 율법으로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주일에 대한 자유를 무한히 허락하신 말씀으로 오해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안식일은 지켜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율법이면서 동시에 은혜라는 사실을 상기시키시는 것뿐입니다. 주일은 우리에게 율법으로 다가와요. 왜 그렇습니까? 주일의 주인은 우리가 이니라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필요해서 주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해서 주일을 지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분께 정성을 다하여 예배하기 위해 주일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일은 율법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안식일과 주일의 주인이십니다. 모든 율법의 제도와, 모든 율법의 규정과, 모든 제사의 절차가 안식일과 주일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어집니다. 우리는 주일을 지키면서 누구를 만나요?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 안으로 다시금 깊숙이 빠져듭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키는 주일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일의 주인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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