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20. 6. 1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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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백마를 탄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1절)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고, 그곳에서 백마와 그것을 타신 분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에서 백마를 타신 분은 바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백마를 타셨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요? 백마는 승리, 그리고 통치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오늘 본문이 예수님을 백마를 탄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은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상의 참된 승리자요, 참된 통치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사도 요한에게 요한계시록의 묵시를 보여주셨던 그 때는 로마 제국이 온 지중해 지역을 통치하고 다스리던 시대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역사의 주관자가 로마 제국으로 인식되었고, 온 세상을 통치하는 사람은 로마의 황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의 참된 승리자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세상의 참된 통치자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본문 15절과 16절은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씀합니다.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5-16절) 

16절을 보면, 예수님의 옷과 다리에 그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이 세상에 힘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 – 곧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 – 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영국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배당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흔히 웨스트민스터사원이라고 불리는 대성당입니다. 이 교회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이 성당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1066년 윌리엄 1세의 대관식이 있은 이후, 영국을 다스렸던 대부분의 왕들이 바로 이곳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왕위에 오르는 대관식을 거행했기 때문입니다. [각주:1] 그런데 수많은 왕와 여왕들이 대관식을 거행했던 바로 이곳의 가장 좋은 제단에는 요한계시록 11장 15절의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11장 15절) 

웨스트민스터사원의 제단에 새겨진 말씀을 바로 15절의 말씀 가운데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입니다. [각주:2] 이곳은 수많은 정복자들이 대관식을 거행했던 장소입니다. 수많은 권력자들이 이제는 자신의 시대가 되었다고, 이제부터는 자신들이 이 세상을 통치하겠다고 선언했던 바로 그 장소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렇게 선언했던 것이지요. ‘세상의 나라들, 세상의 권력자들, 세상의 통치자들이 결국에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힘을 가진 사람도 많고, 권세를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의 삶이 힘 있는 몇몇 사람의 손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세가 크게 보이고, 세상의 힘과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이라도, 우리의 인생을 참으로 통치하시며 우리에게 궁극적인 승리를 안겨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라는 믿음에서 결코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참된 승리자요, 참된 통치자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엇으로 이 세상의 악한 세력과 싸워 승리하시고, 무엇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실까요? 바로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19장 13절에 그 대답이 등장합니다.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3절) 

예수님이 입으신 옷은 ‘피 뿌린 옷’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그분이 흘리 피가 뿌려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정치적인 힘이나, 군사력으로 승리하시고 통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를 짐으로 말미암아 –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 이 세상을 승리하시고 통치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온전한 희생과 온전한 자기 비움을 통해 부활이라는 궁극적인 승리를 이루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분의 대적들은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승리의 비결은 바로 십자가를 통한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십자가의 고난과 순종을 통해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도 십자가를 통해 이 세상을 승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그 내용이 등장합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4절) 

‘하늘에 있는 군대들’은 성도들, 곧 교회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승리하시며 통치하시는 그 행렬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동행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오늘의 본문을 관찰하고 관찰해도, 예수님을 따라 이 세상을 정복하고 승리하기 위해 떠나는 성도들의 모습에서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갖췄다는 내용은 전혀 보이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늘에 있는 군대는 군복이나 갑옷을 입는 대신,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깨끗해진 옷(계 7:14),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우리의 선한 행실을 의미하는 깨끗한 세마포 옷(cf. 계 11:8)을 입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승리하며 다스리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최후의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승리는 세상의 권력이나, 세상의 재력으로 얻는 승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십자가를 지는 승리, 나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승리입니다. 

찬송가 150장 <갈보리 산 위에>의 후렴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이 찬양의 후렴구는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는 두 가지 믿음을 노래합니다. 먼저는 최후 승리를 얻는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최후 승리를 얻어 빛난 면류관을 받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때로는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의 문제가 너무도 커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궁극적인 승리를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최후 승리를 얻게 되는 그 날은 반드시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에 빛난 면류관을 씌워주실 때가 반드시 옵니다. 아울러, 이 찬양의 후렴구는 또 하나의 진리도 노래합니다. 곧, 최후의 승리를 얻기 위해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빛난 면류관을 받아 쓰려면 험한 십자가를 붙잡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최후 승리를 주시는 그 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빛난 면류관을 받아쓰는 그 날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험한 십자가를 든든히 붙잡으며 희생과 헌신의 삶을 묵묵히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 www.westminster-abbey.org/our-history/abbey-history [본문으로]
  2. N. T. Wright, Revelation for Everyone (New Testament for Everyone)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p. 101-10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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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