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20. 6. 13. 18:24
반응형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매우 실제적인, 그리고 매우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확신에 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과 성경이 약속하는 하나님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을 해볼까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세상에 많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시잖아요.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아들이 늘 친밀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고 따뜻한 부자의 정을 나누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 그리스도인의 관계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에 우리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이 다루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확신에 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실질적이고 너무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또 하나의 비유를 들어 설명해보죠. 우물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땅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간 우물은 그 누가 보아도 우물입니다. 그런데 그 지방에 가뭄이 어찌나 극심하였는지 우물이 말라 그곳에서는 더 이상 한 방울의 물도 길어낼 수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물이라는 이름과 모습은 가지고 있지만 한 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는 우물이 우리의 영적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면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우물이 아닌 것은 아닌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죄 용서를 받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단 한 바가지의 물도 길어 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이 메말라 성경이 묘사하는 그 충만한 하늘의 은총을 조금도 경험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참하고 힘겨운 신앙생활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본문이 다루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확신에 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실질적이고 너무도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자,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확신에 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줍니다. 오늘 본문 18절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확신에 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정도로는 안되고, 행함으로 그리고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의 대답이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확신에 찬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꼭, 그리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대답이 조금 의외라고 생각되시는 분은 계속 이어지는 오늘의 본문 19절을 보십시오. “이로써” 어떻게요? “이로써”, 곧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19절은 더욱 중요한 선언을 합니다. 19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로써” 곧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19절 뒷부분,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그러므로 내가 진리 안에 거하고 있다는 확신,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다는 확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나의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앞에서 굳세게 서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정도로는 안되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인생의 풍파가 찾아옵니다. 계획이 무너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그저 눈물로 기도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어두운 광야길을 걸어가다 보면 예수님을 분명히 믿기는 믿지만 우리 마음에 확신이 사라지고 의심을 생길 때도 분명히 있지요. 과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맞나? 과연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맞나? 과연 지금 내가 걸아가는 이 길이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생명의 길, 기쁨과 행복의 길이 맞나? 물론,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분명히 믿지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저버린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의문이 들고 걱정이 찾아는 경우가 있어요. 바로 그때 누가 확신을 가지고 그 마음을 굳세게 붙잡을 수가 있을까요? 매일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사람입니까? 어디를 가든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은 그와 같은 대답을 전혀 내어 놓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되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제 아무리 강력한 폭풍우가 몰려와도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믿음 안에 굳세게 설 수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때로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여러분의 사회 생활, 여러분의 가정생활, 심지어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별로 큰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마땅히 용서해야 할 사람을 용서하느냐 용서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단지 그 사람과 여러분의 개인적인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여러분과의 관계로 이어진다는 것이 바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풍성하게 만드는 최고의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풍성한 은혜 안에 거하기를 원하신다면 서로 사랑하십시오. 먼저 용서하십시오. 마지막까지 이해하고,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사랑의 축복 – 기도의 응답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곧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풍성한 축복을 누립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는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요. 그 가운데 오늘은 두 가지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기도의 응답입니다. 오늘 본문 21절과 22절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1절을 다시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습니다.’ 당연하지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의 이 새 계명을 알면서도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했다면, 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을 그냥 지나쳤다면, 여전히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여 내 마음이 그 사람을 싫어한다면, 그러면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할 때 그것이 마음에 걸림이 되지요. 자책이 되잖아요. 당연히 하나님께 담대한 마음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21절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새 계명과 같이 서로 사랑하면,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는데요. 행함과 진실함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하나님 앞에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입니까? 22절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계속해서 설명하지요. 22절을 다시 보십시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 곧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로 그 계명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본문에 따르면 우리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까? 새벽과 밤으로 매일 같이 교회에 나와 울부짖으며 기도하지만, 내 곁에 있는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나아가 누군가를 끝까지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의 기도를 과연 들어주실까요? 그러면 과연 누구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대답은 너무도 명백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그 풍성한 사랑을 받아 누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사람. 나의 마음을 조금 속상하게 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는 사람. 하나님은 예수님의 새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성품은 구약시대부터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신 15:7-8)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신 15:10a)

이제 이 말씀대로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약속이 등장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 15:10b)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마다 모두 응답받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의 말씀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의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의 축복 –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곧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풍성한 축복을 누립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는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요. 그 첫 번째는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오늘 본문 23절과 24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24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합니다.’ 그리고 ‘주님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그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예수님을 믿어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제는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제가 장로회신학대학교를 다니는 신학생이었을 때, 여러 선배 목사님들과 짧지 않은 여행길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여행길에서 들었던 어느 선배 목사님의 이야기가 아직도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데 기도의 중요성,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기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과 깊이 오랜 시간 기도하며 교제하고 싶은 것은 마음뿐이요 실제로 기도하려고 앉으면 몇 마디 기도하고는 더 이상 기도할 것이 없다는 거예요. 좀더 길게 좀더 깊이 기도하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가 않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제가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오래 하나님과 깊이 기도하며 교제하고 싶습니다.’라고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불현듯 하나님께서 놀라운 지혜를 주셨답니다. 그 지혜는 이것이었어요. “교회 요람을 보고 기도하여라.”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던 바로 그 날부터 그분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때부터 목사님이 새벽마다 교회 요람을 펼쳐 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어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첫 페이지부터 한 분 한 분의 성도님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다 보니 기도 시간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요 기도가 깊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 지더라는 거에요.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도 내일부터 새벽예배에 오실 때에는 성경책과 찬송가만 가지고 오지 마시게 교회 요람을 가지고 오십시오. 

그런데 여러분, 요람을 펼쳐놓고 기도하는 것이 왜 그토록 그분의 기도를 풍성하게 만들었는지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본인이 목양하는 성도님들을 한 분 한 분 생각하며 진심으로 기도하다 보니 그분의 마음속에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일어났겠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곧 예수님을 계명을 따라 서로 사랑하면, 사랑하되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면 바로 그 사람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주님은 바로 그 사람 안에 거하며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영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은 나에게서 멀리 계신 분처럼 느껴지는 분들이 계십니까?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주님이 내 삶에 가까이 오신다는 것이 별로 실감 나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까?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계신다는 성경의 표현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출석해도 경험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해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말씀을 읽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 그것은 여러분 곁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사랑하되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십시오. 여러분 곁에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관용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 사랑으로 응답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행동과 반응에 상관하지 말고 여러분은 끊임없이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 그렇게 여러분 곁에 있는 한 사람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큰 확신을 얻게 되고, 그렇게 내 곁에 있는 사람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할 때 여러분은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그렇게 행함과 진실함으로 끝까지 사랑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반응형
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