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강해2021. 2. 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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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이면서 동시에 사상가이기도 했던 스캇 펙이 저술한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첫 장에서 스캇 펙은 모든 정신병의 원인을 ‘고통의 감정을 회피하려는 성향’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의 삶은 너 나할 것 없이 모두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찾아오는 고통의 문제를 질질 끌고 외면하면서 그 고통이 저절로 사라지기를 기대합니다. 문제를 정면으로 직면하기보다 그 문제를 그저 회피하는 것인데, 이러한 자세가 모든 정신병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시편에는 이른바 탄식시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탄식시란 깊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탄식하며 기도하는 시편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25편도 대표적인 탄식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편 25편에는 지금 자신에게 찾아온 극심한 고통과 아픔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내 원수를 보소서 그들의 수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하나이다 (시편 25편 16-19절) 

오늘 본문 시편 25편 외에도 시편 전체의 약 1/3 이상이 탄식시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노래가 모여 있는 시편의 약 1/3 이상이 탄식시라니, 인간의 삶은 너 나할 것 없이 모두가 고통의 연속이라고 이야기했던 스캇 펙의 이야기가 결코 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삶이 너 나할 것 없이, 곧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구별 없이 모두가 고통의 연속이라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아니라, 그 고통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그 아픔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신앙인의 자세이겠지요. 시편의 탄식시를 읽고 묵상하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유익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그 아픔을 믿음으로 반응하는 신앙인의 지혜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삶에 고통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시편 25편을 통해 어떠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크게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라

나의 삶에 고통이 찾아왔을 때 시편 25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 그 첫 번째는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라”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시편 25편 1절) 

우리의 삶에 고통이 찾아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러한 아픔이 찾아왔는가?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이러한 고통이 내 삶에 엄습하는가? 이렇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에게 찾아온 고통과 아픔의 원인을 더듬어 찾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의 삶에 찾아온 고통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제 아무리 던져보아도 그에 대한 속 시원한 대답은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욥에게 찾아온 고난이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왜 사단에게 욥을 시험하는 것을 허락하셨을까요? 사단은 왜 하필 욥에게 그 극심한 고난을 내리도록 계략을 썼던 것일까요? 욥은 하나님을 향하여 왜 나에게 이러한 고통을 허락하셨느냐고 수없이 질문했지만,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왜”라는 질문에는 단 한마디도 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왜 나에게 이러한 아픔이 찾아왔는지 질문하는 것은 신앙인의 지혜가 아닙니다. 

시편 25편은 자신의 삶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을 때, 그 아픔의 원인을 분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아픔과 그 고통을 가지고 주님을 우러러보았지요. 그리고 자신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한 채 하나님께 자신의 아픔을 기도로 아뢰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시편 25:2)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우리 삶에 찾아온 아픔과 고통을 회피하라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한다는 것은 아프고 괴로운 우리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짊어진 채 하나님께 기도하며 아뢰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의 2절 말씀을 다시 보세요. “나를 부끄럽게 않게 하시고” 지금 부끄러움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잖아요.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지금 당장 내가 패배하고 나를 미워하는 원수들이 개가를 부를 것 같은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지요. 그 모든 괴로움을 다 짊어지고 있어요. 그 모든 아픔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 모든 아픔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모든 아픔을 주님께 아뢰라, 그의 마음에 평안과 확신이 찾아왔습니다.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시편 25편 3절) 

본문을 가만히 살펴보면 2절과 3절은 그 분위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2절에서는 지금 당장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하나님께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3절에서는 그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 것 같아요.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보호하여주시고, 오히려 까닭 없이 속이는 자 곧 악인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하죠. 이러한 차이, 곧 2절에서는 지금 당장 큰일 날 것처럼 탄식하며 기도하지만 그다음 구절인 3절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것. 이것은 오늘 본문만이 아니라 시편의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탄식시의 일반적인 특징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탄식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주님을 우러러보며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시셔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확신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지만 2000년의 교회사에서 예배를 드릴 때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었던 관용어가 있습니다. 라틴어로 Sursum Corda라는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마음을 들어 올리다’가 됩니다. 이 말은 우리 예배와 우리 기도의 핵심을 묘사해주는 말이지요. 성도 여러분, 지금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본문 시편 25편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신앙의 지혜를 배우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시간만큼이라도, Sursum Corda 여러분의 마음을 들어 올려 주님을 향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시간만큼이라도 여러분의 영혼으로 주님을 우러러보십시오. 극심한 고난이 찾아온다 하더라고 Sursum Corda 여러분의 마음을 들어 올려 그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마음에 평강을 주시고 기도 응답의 확신을 주시기 바랍니다. 


시선을 나 자신에게 두라

나의 삶에 큰 고통과 아픔이 찾아왔을 때, 시편 25편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 그 두 번째는 “시선을 자신에게 두라”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시편 25편 6절) 

여기에 갑자기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언급되지요. 시편 25편이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간구하는 이유는 이제 새로운 기도의 제목을 하나님께 아뢰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시편 25편 7절) 

시편 25편이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간구한 이유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지속되는 고통과 아픔 속에서 자신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며 간절히 기도하였던 시편 25편은 이제 자기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뿌리 깊은 죄성을 발견하였지요. 신앙인으로 살아갔지만, 그래서 고난이 찾아올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지만, 내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나의 삶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고난도 아니고, 나를 괴롭히는 대적자들도 아니라, 여전히 내 안에 똬리를 치고 있는 죄악이라는 사실을 고통이라는 계기를 통해 철저히 깨달았던 것이죠. 그리하여 시편 25편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간구하며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자신의 죄악을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아오셨지요. 지금까지 수많은 역경이 찾아올 때마다 여러분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여 ‘내 영혼이 주님을 우러러보나이다’ 기도하며 간구하셨지요. 그리하여 그 모든 아픔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을 받으며 지금까지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오셨잖아요. 참으로 잘하셨고, 참으로 수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칭찬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를 괴롭히는 저 원수나 대적자들이 아니요, 바로 내 안에 있는 뿌리 깊은 죄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나의 삶에 고난이 찾아왔을 때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지혜, 이것이야말로 신앙의 참된 지혜입니다. 

시편 25편은 시선을 나 자신에게 돌려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십니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시편 25편 8절) 

하나님께서 그분의 도로 누구를 교훈하십니까? 죄인인 우리를 교훈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시선을 나 자신에게 향하여 나의 죄악을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신약성경 요한일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 (요한일서 1장 9-10절) 

고난과 고통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고난을 이겨내는 신앙인의 모습만 있다면,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참된 신앙인이요 나를 괴롭히는 저 원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요한일서에서 말씀하는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말하며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사람이 바로 내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나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지혜만이 아니라 나의 시선을 나 자신에게 돌려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지혜까지 배운다면 바로 그때 우리는 요한 일서가 말씀하는 것처럼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주실 뿐만 아니라, 나를 모든 불의로부터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고통과 아픔이 찾아오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여러분의 시선을 여러분 자신에게 돌려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하십시오. 사순절의 첫 번째 주일,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며 죄인들을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성숙

나의 삶에 고통이 찾아올 때 시편 25편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를 두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라’는 것이요, 둘째는 ‘시선을 나 자신에게 두라’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지혜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두 가지 정체성이 각각 담겨 있습니다. 곧,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인의 모습과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는 죄인의 모습입니다. 어찌 보면 이 두 가지 정체성은 매우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시편 25편이라는 하나의 시편 안에 주님만 의지하는 신앙인의 모습도 있고 동시에 하나님께 죄를 범한 죄인의 모습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인의 모습과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는 죄인의 모습은 오늘 우리 안에도 어색하지만 공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니 주님을 우러러보는 신앙인의 모습도,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할 수밖에 없는 죄인의 모습도 영락없이 우리 모두의 정체성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신앙인의 모습과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고 있는 죄인의 모습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삶에 큰 고통과 아픔이 계속 찾아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한 순간도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없기에 우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깊은 내면을 성찰하게 되어 나의 죄악이 하나님께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음을 깨달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는 죄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베풀어주시니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믿음의 성숙이죠. 

스캇 펙은 모든 정신병의 원인을 ‘고통을 회피하려는 성향’에서 찾았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은 너 나할 것 없이 모두가 고통의 연속인데, 그것을 회피하면 회피할수록 더욱 큰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강조하기를, 너 나할 것 없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는 고통과 아픔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대처할 수만 있다면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 대목을 한 문장만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오로지 문제(고통)를 통해서만 가능하다.”(아직도 가야 할 길, p. 20-21)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고통이 찾아오셨습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너 나할 것 없이 모두가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으니,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도 말고 고통의 원인을 찾으려고 이곳저곳을 둘러보지도 마십시오. 그 대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아 여러분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지혜를 배우십시오. 여러분의 시선을 여러분 자신에게로 돌리는 지혜를 배우십시오. 거대한 아픔과 고통이 여러분의 삶을 에워쌀지라도 날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여러분은 더욱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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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