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강해2021. 5. 1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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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판된 책 가운데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가 있습니다. 이 책의 주장은 매우 단순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리고 과거와 비교할 때 훨씬 불행해졌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행복은 감소하는 현상, 이것을 ‘풍요의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을 비롯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풍요의 역설을 경험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니 오히려 행복 열풍이 불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행복 열풍은 사람들에게 참된 행복의 길은 숨기고 거짓 행복만을 추구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른바 ‘소확행’입니다. 소확행은 이렇게 말합니다. 직장생활이 고달프니 점심시간에 고급 커피 한잔을 즐기며 마음의 행복을 추구하라고, 일주일간 힘겨운 삶을 살았으니 주말에는 잠시라도 여행을 떠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경험하라고 말입니다. You Only Live Once. 이른바 ‘욜로’ 역시 동일하게 권면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 뒷일은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 지금 당장 원하는 그것을 체험하라고,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고단한 삶을 살면서 커피 한잔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과제에서 잠시 벗어나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원하는 그것을 체험하는 것도 때로는 유익합니다. 그러나 소확행과 욜로로 대표되는 행복 열풍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인생의 행복을 그저 한 순간의 즐거운 감정으로 축소시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단지 그 순간만의 좋은 느낌을 행복으로 여기며 나의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만들고, 참된 행복을 추구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참된 행복의 길

시편의 문을 여는 시편 1편의 주제는 행복입니다. 시편 1편은 이렇게 시작하지요. “복 있는 사람은.” 곧 참으로 복된 인생, 참으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노래하는 행복한 인생은 소확행이나 욜로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대신 우리의 인생 자체를 복된 인생, 행복한 삶으로 가꾸어 가도록 초대하지요. 

자, 시편 1편이 묘사하는 복 있는 사람, 곧 행복한 인생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소극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측면에서 행복한 사람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소극적인 측면에서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이 본문 1절에 등장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편 1편 1절) 

‘아니하며,’ ‘아니하며,’ ‘아니하고.’ 곧 행복한 삶을 위해 피해야 할 것이 세번에 걸쳐서 등장하네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입니다.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서 지금 당장 재물을 얻을 수 있겠지요. 부정한 방법으로 지금 당장 지위를 얻고, 사람들의 눈을 속여 지금 당장 칭찬과 평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재물과 지위와 평판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거짓 행복입니다. 

구약성경 잠언을 보면 지혜라는 추상명사가 마치 인간처럼 말을 하며 독자들을 지혜로운 길로 초청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것을 ‘지혜의 의인화’라고 불러요. 마찬가지로 잠언에는 미련이라는 추상명사가 마치 인간처럼 말을 하며 독자들을 미련한 길로 이끄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그 미련이라는 추상명사가 의인화되어 나타날 때 한글성경은‘미련한 여인’이라고 번역하였는데, 그 미련한 여인이 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도둑질 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잠언 9장 17절) 문장으로 써 놓고, 눈을 읽으면 이것은 거짓 행복을 설파하는 것이라고 금방 알아차릴 수 있지요.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거짓 행복을 따라가고 있지 않나요? 그러니 하나님은 시편 1편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한번 강조하십니다. 복된 인생, 참된 행복의 삶을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와 악을 멀리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정의롭지 못한 모든 것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계속해서 본문 2절은 참된 행복을 위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에 대해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편 2절) 

우리의 삶을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비결은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이요,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보면묵상하다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나를 구원하여 주시고 또한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감격하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 보면 큰 위기의 순간을 만난 우리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 보면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발견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핵심 이유는 따로 있어요. 

예를 들어 보지요. 예수님께서 하루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누가복음 6장 36절)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누가복음의 이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의무감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나의 마음을 조금씩 넓히려고 노력합니다. 비록 이 세상은 자신의 것을 움켜잡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을 즐거워하여 매일 조금씩 자비로운 사람이 된다면 나의 삶에는 거짓 행복이 아닌 참된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사도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이렇게 권면하지요.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아니, 나는 기계가 아니라 다양한 감정이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데살로니가전서의 이 말씀을 즐거워한다면, 그래서 하루를 마감할 때마다 그날의 감사한 일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면, 나아가 내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면, 그렇게 조금씩 감사하는 사람이 된다면 나의 인생이 복된 삶, 참된 행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말씀 묵상을 통해 우리의 인생이 복된 인생, 행복의 인생으로 변화되는 비결은 말씀을 즐거워하는 데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닙니다. 단지 종교생활로 성경을 읽는 것도 아닙니다.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말은 말씀이 그저 좋아지고 말씀대로 그저 살고 싶어 지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 말씀이 진리로 믿어지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성경이 가르치는 삶의 자세와 태도를 즐겁게 따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말씀을 즐거워하니, 그의 삶은 매일 조금씩 변하여 이 사회가 권하는 거짓 행복이 아닌 성경이 약속하는 참된 행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신명기 10장 12절)

그리고 모세는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합니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명기 10장 13절)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이요, 나아가 그 말씀을 살의 유일한 표준으로 삼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 


훼방꾼

사실 우리 모두는 오늘의 설교를 듣기 전에도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행복의 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참된 행복의 길을 걷는 것이 참 힘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그 이유 가운데 하나를 오늘 본문인 시편 1편에서 발견합니다. 1절을 다시 보십시오. ‘복 있는 사람,’ 곧 참된 행복의 길을 걷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주변에는 누가 있습니까? 악인이 있고, 죄인이 있고, 오만한 자가 있습니다. 여기에 악인, 죄인, 오만한 자가 각각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연극을 할 때, 행인 1 2 3이 무대에 오르지만 그들이 각각 누구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복 있는 사람 주위에 악인도 있고 죄인도 있고 오만한 자도 있어 복 있는 사람을 에워싸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1절에 등장하는 ‘복 있는 사람’은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한 명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죄인과 악인과 오만한 자는 모두 복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즐거워하며 복된 길을 가려는 한 사람 주위에 죄인과 악인과 오만한 자의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1절에서 참된 행복을 따라가려는 사람은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지요. 나는 혼자인데, 나의 길을 방해하는 훼방꾼들은 그 숫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성경 말씀을 즐거워하며 복된 길을 걸어가기 원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훼방꾼이 존재합니다. 여러분 주변에는 어떠한 훼방꾼들이 있으세요? 본문에 등장하는 악인, 죄인, 오만한 자로 대표되는 훼방꾼들은 오늘 우리에게는 특정한 인물일 수도 있고, 지금 내가 처해있는 특별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죄와 악을 멀리하고 성경 말씀을 즐거워하며 말씀을 따라 참된 행복을 추구하려 할 때 반드시 우리 주변에는 나의 길을 방해하는 훼방꾼들이 반드시 존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참된 행복의 길을 따라가려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장면도 본문에는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본문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한명이요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악인, 죄인, 오만한 자는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본문 5절과 6절에 이르면 복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이른바 ‘의인’들인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명으로 등장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그다음을 주목하세요. ‘의인들의 모임’이 등장하지요. 처음에는 나 혼자 외롭게 그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어느 순간 나의 곁에는 의인의 모임, 의인의 회중, 곧 신앙의 공동체가 함께 있어 나의 걸음을 든든하게 지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거짓 행복을 권하는 이 사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 곁에는 함께 참된 행복의 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라는 기준

시편 1편의 주제는 복 있는 사람, 곧 참된 행복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아울러 시편 1편에는 복 있는 사람을 훼방하는 악인들도 등장하지요. 그리고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들, 곧 의인과 그들을 괴롭히는 악인들의 결말이 얼마나 다른지도 보여 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 3절) 

참된 행복의 길을 걷는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합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편 1편 4절) 

이 구절에서 악인들, 곧 죄와 불의를 행하면서까지 지금 당장의 거짓 행복을 쫓는 사람들은 무엇에 비유합니까? ‘바람에 날리는 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두가지 이미지, 곧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바람에 날리는 겨’ 안에는 모두 시간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3절을 다시 보십시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다음 단어입니다.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여기에 시간의 개념이 담겨 있지요? 참된 행복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도 사시사철 행복의 열매가 맺히는 것은 아닙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가운데 참된 행복의 열매가 맺히는 것은 바로 가을 한철입니다. 4절도 보십시오.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겨’ 혹은 ‘쭉정이’는 농부가 키질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농부는 언제 키질을 할까요? 당연히 추수 때입니다. 추수하여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섞여있는 것을 키질합니다. 그러면 가벼운 쭉정이는 바람에 날아가 곡식과 분리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의 유쾌한 감정만을 행복으로 여기고 그러한 거짓 행복을 좇는 사람들의 삶이 불행으로 판가름 나는 것도 봄여름가울겨울 가운데 추수의 때인 가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습니다. 그것은 참된 행복과 거짓 행복을 명백히 구분하는 기준이 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이 참된 행복인지, 아니면 지금 내가 쫓으며 추구하는 것이 거짓 행복인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설파하는 거짓 행복은 시간이 흐를수록 행복이 아닌 불행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참된 행복을 따라가다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더욱 행복한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오늘이 청년주일이지요?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내일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불어넣어주지 못하는 현실이 더욱 안타까워지는 하루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청년들조차 자신의 인생 자체를 보다 행복하게 변화시키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한 채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에 탐닉하도록 만들고 있으니, 우리 역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통감하며 우리 시대의 청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풍요의 역설’이 지배하는 시대, 그리하여 행복의 열풍이 불어오고 있지만 그것은 잠깐의 만족만 제공하는 거짓 행복이어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불행한 인생으로 전락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먼저 이 세상이 설파하는 거짓 행복의 길을 피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참된 행복의 길을 걸어가면 어떻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외로울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행복의 열매가 맺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여러분 곁에는 오늘도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있으니 다시 한번 힘을 내어 하나님께서 초대하시는 참된 행복의 길을 걸어가시면 어떻겠습니까? 거짓 행복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행이 되지만 말씀을 즐거워하는 인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의 열매를 더욱 풍성히 맺게 될 것이니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행복을 따라가는 여러분의 인생도, 그리고 여러분의 뒤를 이어 말씀을 즐거워하게 될 이 땅의 청년들의 인생도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께서 더욱 행복한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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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의 서론(1편-2편) “복 있는 사람”

구약성경 시편에는 150개의 시가 하나의 책으로 묶여 있다. 그렇다 보니 시편을 묵상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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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