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강해2021. 7. 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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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시편 24편은 표제어에 ‘다윗의 시’라고 되어 있지요. 동시에 시편 24편의 지리적 배경은 예루살렘입니다. 본문 안에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이 명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산’, ‘거룩한 곳’ 등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표현이 시편 24편에는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24편은 다윗이 예루살렘 성에 대해 노래한 시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다윗과 예루살렘의 관계는 매우 특별했거든요. 

예루살렘은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 가나안 민족이었던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전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땅의 대부분을 점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다윗이 등장하기까지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예루살렘 성은 가나안의 한 중앙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오랜 세월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았을 뿐 차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너무도 단순한데요. 예루살렘 성이 산 높은 곳에 위치한 천연의 요새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누구입니까? 어린 소년 시절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골리앗을 향해 당당히 달려가 큰 승리를 이끌었던 사람이지요. 그는 이번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예루살렘을 공격하였고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자 다윗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이스라엘의 새로운 도성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다윗에게 예루살렘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성읍이었지요. 


여호와께서 그 터를 건설하셨도다

오늘 본문 시편 24편에서 다윗은 예루살렘 성에 대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1절) 

하나님은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1절이 노래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땅과 거기에 충만한 모든 것의 주인이시요,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모든 사람들의 주인이십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전에는 예루살렘의 주인이 여부스 족속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분명히 믿고 확신했습니다. 저 예루살렘 성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다윗이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여 이스라엘의 새로운 도성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예루살렘의 주인이 다윗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노래하는 믿음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점령한 이 예루살렘 성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2절을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2절) 

여기서 ‘그 터’라는 표현이 등장하지요. 당연히 예루살렘의 터, 예루살렘의 기초를 말합니다. 그런데 2절이 묘사하는 내용은 우리의 상식과는 조금 다르지 않으세요? 예루살렘의 터, 곧 예루살렘 성의 기초를 하나님은 바다 위에 세우고 강들 위에 건설하셨다고 말씀하네요. 바다의 물결은 시시각각 변하잖아요. 강물도 쉼 없이 흘러가지요. 어떻게 파도치는 바닷물 위에 튼실한 건물을 지을 수 있으며, 쉼 없이 흘러가는 강물 위에 든든한 성벽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다윗이 체험했고, 그리하여 다윗이 노래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그곳을 이스라엘의 도성으로 삼았습니다. 그것도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도성이 된 이후에도 예루살렘을 뒤흔드는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겠어요? 마치 바다의 풍랑이 몰아치는 것처럼, 마치 강물의 물결이 굽이쳐 흐르는 것처럼 예루살렘의 기초를 뒤흔드는 사건들이 수없이 몰려왔겠지요. 그러나 다윗이 체험하고 다윗이 노래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기에 넘실거리는 바닷물에서도 든든하고, 소용돌이치는 강물 위에서도 튼튼합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바이러스의 4차 대유행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사회적거리두기의 최고 단계인 4단계가 적용됩니다. 거리두기 4단계에서는 교회의 모든 예배와 모임이 온라인으로 전환하게 되어 있고, 우리 교회는 공공의 유익을 위해 이와 같은 지침을 따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주일5부예배로 함께 모여 예배하고 있지만, 당장 다음 주에는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으로서는 앞으로 몇 주나 온라인 예배가 지속될지도 알 수 없고, 또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도 알 수 없어 우리의 마음이 더욱 답답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루살렘 성에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몰려왔지만 다윗의 마음에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소유이니 그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을 굳건하게 지켜 주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에게 그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다 위에서도, 강물 위에서도 예루살렘의 기초를 든든히 세우신다고 말씀하셨으니,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이 혼란한 시대 속에서도 우리의 교회를 든든한 기초와 토대 위에 세우신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떠한 상황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이 믿음에서 흔들리지 마십시오. 비록 무수한 광풍이 몰려온다 하더라도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주님의 교회요, 그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니 하나님은 우리 교회와 우리 예배를 든든히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든든히 지켜 주십니다. 그 사실을 믿는다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예루살렘 성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예루살렘에 바닷물이 흘러오고, 예루살렘에 강물의 위협이 몰려올 때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는 따로 남아 있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3절) 

여기에서 여호와의 산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곳도 당연히 예루살렘 성입니다. 하나님은 바다의 파도 위에서도, 강물의 물결 위에서도 예루살렘 성을 든든히 지켜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바이러스의 위협이 극심한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교회의 터를 튼튼하게 건설하십니다. 제 아무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며 우리의 삶과 우리의 예배를 위협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마침내 우리의 예배를 다시금 새롭게 회복하실 것입니다. 비록 모든 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할지라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믿음의 기초를 든든히 세우실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면 남아있는 문제는 무엇일까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다른 말로 바꾸어 볼까요? 나는 과연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오를 사람이 맞는가, 나는 과연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가 맞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시편 24편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도 제시하네요. 4절입니다. 첫째로, “손이 깨끗하며” 손으로 행하는 행동이 깨끗해야 합니다. 둘째로 “마음이 청결하며”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나의 마음이 정결한 사람이 거룩한 산에 올라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어요. 셋째로,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구약성경에서 ‘허탄한 것’은 주로 우상을 말합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사람, 곧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로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언어로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습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모든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한 구절이 본문 6절입니다.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6절) 

누가 거룩한 성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예배할 사람입니까? 누가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말로,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야곱이라는 이름과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표현이 나오네요. 창세기를 읽다 보면 야곱과 하나님의 얼굴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 혹시 기억나시나요?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얻는 가족과 큰 재산을 거느리고 고향 땅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형 에서를 만나야 합니다. 고향 땅에서 형 에서를 만나기 위해 얍복 나루를 건너기 직전 야곱은 밤이 새도록 하나님과 씨름을 하지요.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당신을 보내줄 수 없다’고 말하며 야곱은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구했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며 기도했던 야곱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십니다. 그리고 야곱은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구나’라고 말하며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 곧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사람이며, 누가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서 예배할 사람입니까?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시 24:6)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으로 말미암아 당장 내일부터 모든 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은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든든히 지켜 주실 것입니다. 어떠한 환란과 고통의 소용돌이가 찾아와도 주님의 교회이기에 하나님께서 든든한 기초 위에 세워주실 것입니다. 물론 극심한 코로나의 확산으로 교회가 성도들에게 예배당을 개방하지 못하고 모든 예배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당연히 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지요. 그러나 교회의 모든 예배가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동안 우리가 늘 관심을 가지고 주의할 것이 있으니 지금 나의 마음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구하고 있는지 우리는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구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있는지 나 자신의 마음을 늘 돌아보십시오. 그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마음을 지켜 정결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손을 늘 조심하여 우리의 행동을 늘 깨끗이 하십시오. 하나님이 아닌 다른 허탄한 것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늘 주의하고, 그 무엇보다 내 곁에 있는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위해 항상 노력하십시오. 현장에서 함께 예배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만 예배에 참여하시는 동안 우리 모두가 더욱 힘쓰고 더욱 애쓰고 더욱 노력해야 할 것, 그것은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간구하는 일입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다윗은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여 이스라엘의 도성을 삼았지요. 그리고 다윗은 예루살렘 성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했어요. 마치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구했던 것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얼굴이 예루살렘에 가득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이 간절한 마음은 결국 행동으로 이어졌는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도 하고, 사람이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다윗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어요. 마침내 예루살렘 성안에 법궤가 들어오게 되었고, 다윗은 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7절) 

네, 그렇습니다. 시편 24편은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실 때 불렀던 찬양입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9절) 

본문 7절과 9절에 등장하는 문은 예루살렘 성의 문이기도 하고, 법궤를 모셔야 하는 곳인 성소의 문을 말합니다. 모세 시대에 만들었던 성막에는 법궤를 모시는 장소인 지성소까지 모두 세 개의 문이 있었어요. 성막에 들어가는 문, 그리고 성막에서 성소로 들어가는 문, 마지막으로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이전에는 예루살렘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막의 문도, 성소의 문도, 지성소의 문도 쉽게 열리거나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본문 7절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가 예루살렘에 도착하니 그 앞에서 모든 문이 열립니다. 예루살렘 성의 문이 열리고, 성막의 문이 열리며, 성소의 문과 마침내 지성소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이 장면을 바라보면서 다윗은 계속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지금 다윗의 눈에 보이는 것은 지성소 안에 법궤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떻게 노래합니까? 법궤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영광의 왕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안에 들어가고 계시는 현장을 다윗은 분명히 체험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 감격으로 영광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8절) 

법궤가 들어가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에 임하는 현장을 체험하면서 다윗의 마음에는 예루살렘 성을 점령할 때부터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오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지 않았을까요? 여호수아의 시대로부터 오랜 세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게 하셨던 하나님의 능력, 예루살렘 성을 뒤흔드는 거센 바다의 파도와 휘몰아치는 강물 같은 위협 속에서도 그 기초를 든든히 붙잡아주셨던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구하는 마음을 자신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 마침내 예루살렘의 성문이 열리고 성막의 문이 올라가며 성서와 지성소의 문이 활짝 열려 법궤와 함께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이 예루살렘을 뒤덮는 그 영광의 장면을 바라보며 다윗은 벅차오른 감격 속에서 하나님을 계속 찬양합니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10절) 

다윗의 입술이 영광의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였을 그때, 성막의 문이 열리고 성소의 문이 열리고 지성소의 문이 열리듯 다윗의 마음도 활짝 열렸겠지요. 법궤가 성막을 지나고 성소를 지나며 지성소에 들어가 자신의 자리에 놓이듯 영광의 하나님께서는 활짝 열린 다윗의 마음에 들어가 그의 마음에 좌정하셨겠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온 예루살렘을 뒤덮듯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얼굴이 가득 차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다윗 한 사람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 앞에 거대한 풍랑이 이는 바다가 놓여있고, 비록 지금은 무서운 물결이 휘몰아치는 강물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을 지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면 마침내 하나님은 우리 앞에 모든 문이 열리게 하시며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을 우리의 마음에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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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