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21. 10. 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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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21년에 출판된 책 가운데 <공간의 미래>라는 책이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코로나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나아가 전염병이 앞으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어놓고 있지요. 대학에서 건축학을 가르치는 이 책의 저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거주의 형태와 도시의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공간의 미래>라는 책에서 저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이 큰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생활하는 집의 공간이 좁아졌다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 각자가 살고 있는 집은 코로나 이전이나 코로나 이후나 평수가 똑같은데 왜 집의 공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까? 저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이전, 평일 낮시간에는 식구들이 학교나 직장을 나갔습니다. 주말에만 온 가족이 한 집에서 생활을 했지요. 그런데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이 확대되었고 평일 낮에도 가족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이제 집은 가족들이 학교와 직장을 다녀온 후 쉬는 장소만이 아니라, 직장인들이 재택근무를 하는 업무의 장소가 되고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듣는 학습의 장소도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가족들이 집에서 해야 할 활동의 종류가 늘어나면서 동일한 크기의 집이지만 가족들이 실제로 느끼는 공간은 더 좁아졌다는 설명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크기는 그대로인데, 혹은 과거보다 더 넓어졌는데 실제로 느끼는 공간은 좁아지는 이러한 현상이 사실 코로나 이전부터 진행되어 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방에 요를 깔면 침실이 되었습니다. 그 방에 요를 치우고 밥상을 놓으면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밥상에 음식을 치우면 공부할 수 있는 책상이 되었습니다. 방 하나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우리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우리의 가정에는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다양한 물건과 가구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8시간만 사용하는 침대가 넓은 공간을 하루 24시간 차지하고 있지요. 거실에 TV를 놓으니, 가족들이 함께 앉아서 TV를 볼 수 있는 소파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을 놓을 별도의 공간이 필요해졌습니다. 자녀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책상을 구비해 놓을 별도의 공부방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냉장고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언제부턴가 김치냉장고가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세탁기에 이어 건조기도 생활필수품이 되어 한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만큼 공간이 부족하게 되었고, 부족한 공간을 늘리기 위해 편법이지만 발코니를 확장하여 실내공간을 넓혔습니다. 그렇게 공간이 확보되니 우리는 다시금 물건을 사들이고 우리 집의 공간은 그만큼 더 좁아지게 되었지요. 결과적으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고, 더 넓은 집을 소유했지만 역설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은 더욱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

우리가 함께 묵상하는 호세아서는 1장부터 3장까지 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여인 고멜을 사랑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장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호세아가 선지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였던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호세아 4장에 접어들어, 호세아 선지자가 전하는 메시지의 첫 일성은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한마디로 묘사하는데, 그들의 영적 상태를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단어는 “없다”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호 4:1) 

호세아 4장 1절에 “없다”라는 단어가 세번이나 등장하지요. 이스라엘에게 무엇이 없습니까? 첫째로, 진실이 없습니다. 둘째로, 인애가 없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덕목들,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른 모든 것을 잃어버리더라도 마지막까지 지키고 보존하여야 할 가장 귀한 가치가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진실이 없고 인애가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지요. 

여러분, 호세아가 활동하였던 시대 북 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였습니다. 지난 세 번에 걸쳐 호세아서를 묵상하면서, 우리는 이미 호세아가 활동했던 시대가 여로보암 2세가 왕으로 북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였고 그때는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가장 부강했던 시대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이른바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왕하 14:25) – 이것은 마치 백두에서 한라까지 라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 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재물을 소유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유가 늘어나니 정작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리할 자리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중세 스콜라 신학의 대가였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하루는 가톨릭교회의 추기경 한 사람과 길을 걷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길가에는 돈을 구걸하는 걸인이 있었지요. 그때 추기경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은화를 하나 꺼내 그 걸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죠. “얼마나 다행입니까? 초대교회의 베드로 사도는 은과 금이 내게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걸인들을 구제할 수 있는 은과 금이 있습니다.” 그러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지금 교회는 베드로 사도께서 하셨던 것처럼,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베드로 사도께서 외치셨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도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이 없었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은으로 촛대를 만들고, 금으로 교회의 기둥을 세우며, 대리석으로 교회의 바닥을 깔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없었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는 능력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부터 말미암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거에 비해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 역시 과거와 비교한다면 큰 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의 물질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나눌 수도 있고, 우리 교회는 재정을 사용하여 어려운 이웃을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참 좋은 일이요, 감사한 일이지요. 그리나 우리의 소유가 늘어날수록, 우리에게 가진 것이 더 풍성해질수록 중세가톨릭교회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북 이스라엘이 광활한 영토를 소유하고 그로 말미암은 재물과 권세는 소유하였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사라지고 없어진 것처럼, 오늘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 역시 모든 것을 소유한 듯 보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없고 없고 없다”라고 평가받지는 않겠습니까? 

우리는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진실과 인애가 사라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어버린다면, 중세 가톨릭교회와 같이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요 우리 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

하나님은 여로보암 2세의 시대에 이스라엘에게 많은 것을 소유하도록 허락하셨어요. 그런데 소유가 늘어나자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진실과 인애가 텅 비어지고 있었어요. 그 장면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눈에 보이는 소유물까지도 모두 사라지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호 3:4)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니 왕도 없어집니다. 지도자도 없어집니다. 제사도 없어지고, 주상도 없어지며,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들이 자랑하였던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되리라는 예언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심판 뒤에 베풀실 새로운 구원의 역사도 말씀하시네요.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호 3:5)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구원과 회복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성취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점에서 호세아 4장 5절의 뒷부분 “마지막 날에” 일어날 참된 회복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에게 성취되었다고 믿습니다. 그 회복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도, 지도자도, 제사장도, 눈에 보이는 모든 자랑거리를 사라지게 하신다는 예언 하셨습니다. 이후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나라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나 마지막 날이 되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시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 회복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이 온전히 성취되었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풍성한 선물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 옛날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북 이스라엘이 누렸던 하나님의 축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우리 그리스도인은 매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날마다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지금도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로보암 시대,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바로 그것들이 아닐까요? 하나님을 향한 진실, 우리의 이웃을 향한 인애,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 말입니다. 

우리의 가정에 물건들이 가득 쌓일수록 우리의 가정에 가족들이 함께할 공간은 줄어들기 마련이지요. 그러면 여러분, 우리의 가정에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공간의 미래>라는 책의 저자는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우리의 관심을 옮기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더 많이 소유하여 나의 사적 공간이 집에 가득 쌓아놓는 것에 우리의 관심이 있다면 당연히 우리 가정의 공간은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을 소중히 여길 때 우리는 비로소 더 많은 것을 쌓아두려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더욱 가치 있는 가정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충분히 공급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움쳐지려 노력하면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진실과 인애,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이미 받은 은혜에 자족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가기 위해 더욱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손에 금과 은은 부족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위대한 능력이 우리 모두를 통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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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