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21. 12. 8.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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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라는 분은 『마음을 이끌다』(Leading Minds)라는 책에서 리더십과 리더가 전하는 이야기의 관계를 언급하였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리더들을 3가지로 구분합니다. 그 첫 번째는 ‘일반적인 리더’(ordinary leader)로 그들의 특징은 전통적인 이야기, 그래서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리더와 구별되는 두 번째 리더는 ‘혁신적인 리더’(innovative leader)입니다. 혁신적인 리더의 특징은 모두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내에 잠재되어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사람입니다. 하워드 가드너가 마지막 세 번째로 구분한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visionary leader)로 기존의 전통적인 이야기와 공동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리더를 말합니다. 당연히 하워드 가드너는 마지막 비전적인 리더가 가장 높게 평가하였지요. 

우리는 계속해서 호세아서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던 선지자들의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는 호세아서와 이후 살펴보게 될 아모서스를 읽어보면 이들은 참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워드 가드너의 구분을 굳이 적용하자면, 호세아와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옵니다. 여기에서 전통적인 이야기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출애굽의 사건이요, 또한 시내산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사건이지요. 그런데 호세아 선지자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곧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아가지 않고 죄악을 행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호세아를 비롯하여 북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위대함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워드 가드너가 가장 높이 평가했던 비전적인 리더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전통적 이야기와 공동체에 내재되어 있는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 곧 내일에 대한 비전을 선포하는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이지요. 호세아를 비롯한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바로 이러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조상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에 대한 이야기, 곧 전통적인 이야기 위에 현재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있는 죄악의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곧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미래를 일구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을 선포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문장으로 농축되어 있는 구절을 찾는다면 오늘 본문 호세아 9장 10절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전통적 이야기

본문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던 전통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네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처음 만났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주셨던 장면, 나아가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어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그 약속을 체결하는 장면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은 단순히 과거의 구원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시지요.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10a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셨을 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두 가지 비유로 표현되어 있네요. 먼저는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다’는 것입니다. 메마른 광야를 연상해보십시오. 그곳에서는 목을 축일 수 있는 한방울의 물만 만나도 너무 귀하죠. 하물며 메마른 광야에서 달콤한 포도송이를 만난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바로 그것이 이스라엘을 만났을 때 그들을 바라보신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은 참 보잘것없었습니다. 그들의 모습과 삶은 비천했습니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그들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애굽의 노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만난 포도송이처럼 귀하게 여겨주셨어요. 그러니 열방에 많은 민족이 있었지만 바로 다른 어떤 민족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며 그들의 하나님 되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이야기도 이와 동일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무엇이 있었습니까? 우리에게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나요? 아닙니다. 그런 것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뜻와 상관없이 살았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마친 광야에서 만난 포도송이처럼 귀하게 여겨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이야기입니다.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나셨을 때의 감정을 두 가지 비유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가 “광야에서 포도”라면 두 번째는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무화과나무를 경작하는 농부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무화과나무에 처음으로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 열매는 마치 광야에서 만난 포도처럼 탐스럽고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무화과나무에서 귀한 첫 번째 열매를 만난 농부는 그 첫 번째 열매로 만족할까요? 그것이 아니면 농부가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계속해서 좋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겠지요.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을 만났던 하나님의 마음이요 소원이라는 말씀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것을 시작으로 많은 열매를 맺기 바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에서 생각이 멈추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지요. 어제보다 더 거룩한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잠재되어 있던 이야기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셨던 위대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 곧 전통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한 문장으로 구성된 오늘 본문에는 전통적인 이야기 외에도 북 이스라엘 공동체에 내재되어 있는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곧, 이스라엘 자손이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죠.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10b절) 

바알브올의 사건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하기 이전의 사건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서로 언약을 맺은 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져들었음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사건이지요. 그러므로 바알브올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써 외면하고 싶은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깊이 타락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이야기를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바알브올의 결과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바로 이것이 지금 북 이스라엘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현실이라고 꼬집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어제보다 거룩한 오늘’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의 형편은 무엇입니까? 우상을 좋아하고 우상을 사랑하더니, 결국 우상처럼 가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드러내는 북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에 대한 이야기이죠. 그러나 오늘 나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기대와 바램과 역행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님들 가운데 우상을 숭배하고 우상을 사랑하여 우상과 같이 추한 모습으로 변하는 분들은 별로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나 도사리는 유혹은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과 같이 추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제보다 거룩한 오늘을 기대하시지만, 오늘 내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는 과거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였고 어제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지만 어느덧 이 세상을 본받아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새로운 이야기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전통적인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당시 북 이스라엘이라는 신앙 공동체에 내재되어 있던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이야기로 끝이 나지요. 그러면 설교를 시작하며 소개하였던 비전적인 리더들의 이야기, 곧 전통적인 이야기와 공동체에 내재되어 있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모든 이야기를 통합하여 앞으로 나아갈 비전을 노래하는 새로운 이야기는 본문에 없는 것일까요? 물론, 문자적으로는 하나의 문장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오늘 본문 호세아 9장 10절에는 내일에 대한 비전의 이야기는 안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 호세아 선지자의 탁월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문자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한 문장으로 구성된 오늘 본문에는 충분히 내일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자,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스라엘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그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동시에 이제는 그들이 어제보다 거룩한 오늘을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이 써내려 온 이야기는 하나님의 마음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였어요. 그리하여 여로보함2세 때에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번영의 시대를 누리기도 하였지만, 그 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리고 외부에서는 앗수르와 아람의 위협을 당하며 내부에서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혼란이 지속되고 있었어요. 이 모든 이야기를 오늘 본문은 단 한 문장으로 농축하여 서술해주었지요. 그러면 여러분, 이제 북 이스라엘이 내일의 참된 비전을 위해 써 내려가야 할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호세아 선지자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지요. 지금까지 써왔던 바알브올의 이야기, 지금까지 써왔던 우상숭배의 이야기, 지금까지 써 왔던 죄악의 이야기를 모두 그치고 이제부터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야기, 곧 어제보다 거룩한 오늘의 이야기를 나의 삶을 써 내려가는 것, 바로 그것이 내일에 대한 참된 비전이라 호세아는 선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동안 여러분은 어떠한 이야기를 써 내려온 삶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이야기는 어제보다 거룩한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부터라도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을 닮아 우리도 추해진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이야기, 곧 어제보다 거룩한 오늘의 삶을 써 내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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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