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강해2022. 1. 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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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이 묘사하는 사사시대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도 이웃을 향한 진실한 사랑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 사사기는 그 시대에 일어났던 많은 비극적인 사건들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입다라는 사람을 통해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비극적 사건입니다. 입다는 하나님께 성급하게 서원하여 자신의 무남독녀를 제물로 바쳤고 이 사건은 이스라엘 여성들의 큰 통곡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에브라임 지파를 대상으로 한 이스라엘의 내전이었습니다. 그는 이 전쟁을 치르며 에브라임 사람 4만 2천 명을 하루아침에 죽이고 말지요. 그러면 여러분, 입다라는 인물이 이처럼 역사적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던 그 출발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입다는 싸움과 전쟁에 매우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입다를 ‘큰 용사’라고 묘사합니다. 그에게는 전쟁의 능력과 기술이 있었고, 고대사회에서 이것은 그의 큰 장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마음에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과 열등감이 가득했다는 점입니다. 입다는 첩의 자녀였거든요. 그래서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들이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말하면서 그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때부터 입다의 마음에는 형제를 향한 미움,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의 감정이 가득했지요. 

그러한 입다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암몬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을 쳐들어왔는데, 이스라엘에는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암몬을 물리칠 장수가 없는 거예요. 입다의 마음은 미움과 분노로 가득하지만, 전쟁을 치르는 능력만큼은 탁월했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입다를 찾아와서 군대를 지휘하여 저 암몬을 물리쳐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입다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을 붙이죠. 군대를 이끌고 나가 전쟁에 승리하면 이제부터 입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사사가 되겠다는 조건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입다가 군대를 이끌고 암몬이라는 나라에 맞서 싸운 그 마음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민족에 대한 사명감인가요? 아닙니다. 전쟁으로 피해를 볼 사람들에 대한 연민인가요? 입다에게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입다가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한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내 마음에 있는 미움, 내 마음에 있는 분노를 실제로 터트릴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는 마음뿐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은혜를 주셔서 입다로 하여금 암몬 자손을 물리치게 하십니다. 이 일만 놓고 보면 입다는 이스라엘을 지켜낸 구국의 영웅이지요. 그러나 그의 이 모든 일은 사랑의 마음으로 행한 것이 아니요, 미움과 분노 나아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이기적인 욕망의 발로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입다의 능력이 빛을 발하여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이스라엘에 통곡하는 소리가 가득한 역사적 비극이 펼쳐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고 무엇이 우리의 공동체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까요? 능력입니까? 재능입니까? 탁월한 은사입니까? 아니면 진실한 사랑의 마음입니까?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은 다양한 은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고린도교회 안에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아 다양한 은사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천사의 언어를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병을 고치는 역사를 일으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예언하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여러분, 고린도교회 안에 많은 성도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그 가운데 많은 능력과 은사가 발휘되었지만 정작 교회의 내부에는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죠? 음행의 죄, 우상숭배의 죄, 여러 가지 불의로 세상 법정에서 판결을 받는 모습 등 아름다운 열매보다는 인간의 추한 모습만 드러나고 있었어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교회 안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지 않는 이유는 교회에 성도들이 많이 모이지 않기 때문도 아니고, 교회의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도 아니고, 심지어 교회 안에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은사가 부족하기 때문도 아니라고 말이지요. 그러면 그들에게 무엇이 부족합니까? 그들에게 무엇이 부족하여 교회 안에 성령의 열매는 사라지고 인간의 추한 모습만 드러나고 있습니까?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진실한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외국어 능력이 탁월한 사람도 많았고 천상의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무엇이 없습니까? “사랑이 없으면” 네, 그들에게는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니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절도 보십시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예언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영적인 지식이 충만하네요. 어디 그뿐인가요?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받은 능력이 얼마나 큰 지 산도 옮길 수 있데요. 그런데 영적인 지식으로 가득하고 산도 옮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그들에게 무엇이 없습니까? “사랑이 없으면” 이번에도 사랑이 없네요. 그러니 그 결과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지요?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절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내어 놓았네요. 그뿐이 아닙니다.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나의 물질만 드린 것이 아닙니다. 나의 소중한 시간과 나의 몸까지도 온전히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사랑이 없으면” 제 아무리 자신의 모든 재산과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내어 놓아도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성령께서 베푸신 은사의 종류가 수도 없이 많고 우리 각자에게 주신 능력과 재능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그 모든 것이 아름다운 열매로 이어지기 위한 마지막 퍼즐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이 땅의 교회가 우리 사회에 점점 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기독교의 현실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면에서 우리의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개신교희의 역사는 이제 130여 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독교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인들은 기독교의 눈치를 봅니다. 많은 기업이 교회의 구매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이처럼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후 지금까지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재력을 가지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교회를 신뢰하지 못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실망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왜 교회가 이 사회에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일까요? 교회의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인가요?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에는 진실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마지막 구절이 무엇입니까? 

그런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의 모조품

사랑은 우리의 삶과 신앙에 있어 너무도 중요한 덕목입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씀드릴 수도 있지요. 그러면 이렇게 중요하고 귀한 사랑의 덕목에는 이른바 모조품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지금 제가 사용한 ‘사랑의 모조품’이라는 표현은 미국의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였다고 평가받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사용한 용어입니다. 기독교의 매우 중요한 덕목인 사랑에는 모조품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조나단 에드워즈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있다” 그것도 “매우 많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하나의 비유로 이것을 설명했습니다. 철이나 동을 흉내 낸 모조품과 금이나 은을 흉내 낸 모조품 가운데 어떤 모조품이 더 많지요? 당연히 금이나 은같이 더 귀한 물건을 흉내 낸 모조품이 더 많습니다. 사람들은 흔하게 길가에 놓여있는 돌멩이의 모조품은 만들지 않습니다. 그 대신 다이아몬드나 루비와 같은 값진 물건의 모조품은 많이 만들지요.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라는 덕목은 우리의 삶과 신앙에 너무도 중요한 덕목이기에, 아니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선언할 정도로 가장 귀한 덕목이기에 그만큼 가짜도 많고 모조품도 많습니다. 

자, 그러면 진실한 사랑이 아닌 사랑의 모조품, 곧 거짓된 사랑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과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의 신앙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만드는 진실한 사랑과 그저 흉내만 내는 사랑의 모조품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에서 한구절, 그리고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 한 구절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마지막 종말의 때를 설명하시며 하신 말씀의 한 구절입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 24:12) 

이번에는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축복하는 대목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엡 6:24) 

읽어드린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 우리는 진실한 사랑과 거짓된 사랑 사이에 존재하는 너무도 분명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진실한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거짓된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식어진다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진실한 사랑의 특징을 묘사하며 가장 먼저 무엇이라고 말씀하지요? “사랑은 오래 참고”(4a절)라고 말씀하잖아요.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 그것이 진실한 사랑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이렇게 진실한 사랑과 거짓된 사랑의 차이를 구별하고 나면, 오늘 본문 3절의 말씀을 우리는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 3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 줄지라도” 나의 재물을 모두 내어 놓았습니다. 심지어 나의 몸까지도 헌신하고 바쳤습니다. 그런데 본문 3절은 계속해서 무엇을 말씀하지요?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아니, 내가 가진 모든 소유를 나누어 주고 심지어 나의 몸까지도 불사르게 내어 주었는데 사랑이 없다고요? 나에게 사랑의 마음이 없는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 주고 심지어 나의 몸까지도 불사르게 내어주었다고요? 이것이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거짓된 사랑, 곧 사랑의 모조품도 사랑이라는 겉모습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재물을 내어 줄 때는 사랑의 마음이 있었을 거예요. 나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때는 사랑의 마음이 불타오르고 있었겠지요. 그런데 거짓된 사랑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 사랑이 식어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한 때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심지어 나의 몸까지도 내어 주었지만, 그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었기에 – 그것은 잠시 타오르다 식어지는 사랑의 모조품이었기에 –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도 끼치지 못한다는 말씀이지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것은 바로 진실한 사랑입니다. 곧, 오래 참는 사랑이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랑이지요. 


그리스도의 사랑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실한 사랑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이 점을 마음에 생각하면 여러분의 마음에는 기대감이 일어나십니까? 아니면 절망감이 일어나십니까? 그래 좋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능력도 변변치 않지만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변함 없는 사랑으로 나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다는 결단의 마음이 생기세요? 아니면 차라리 더 노력해서 나에게 부족한 능력을 얻으라고 하면 그래도 가능성이 있을 텐데 변하지 않는 진실한 사랑만이 나의 삶을 아름답게 열매 맺게 한다면 내가 어떻게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을까라며 그 사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드시지는 않으세요?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본다면 오늘 본문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큰 절망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실한 사랑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의 삶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진실한 사랑을 생각할 때, 기어이 우리 주님께서 친히 보여주셨던 주님의 사랑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사용했던 비유를 한 가지 더 인용해보겠습니다. 그는 우리 마음에 진실한 사랑이 자리잡는 것을 도장과 인주의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 자, 도장에 인주를 충분히 묻혀서 종이에 찍는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종이에서 도장을 떼어내고 나면 그 종이에는 도장과 동일한 모양이나 글씨가 분명하게 남게 되지요. 에드워즈는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 꼭 이와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진실한 사랑,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노래했던 그 진실한 사랑의 원형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인간에게는 없어요. 오직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의 형상, 곧 예수님의 진실한 사랑을 도장을 찍듯이 우리의 마음에 각인시켜 주셨어요.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진실한 사랑의 성품이 남아 있게 된 거예요. 물론, 우리의 마음은 연약하여 진실한 사랑보다는 쉽게 사그라드는 거짓된 사랑이 더 많지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 한 가지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도장을 찍듯 분명히 새겨주신 주님의 진실한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기에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새겨진 주님의 진실한 사랑을 따라 행하십시오.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분명히 새겨진 주님의 진실한 사랑을 따라 행하십시오. 우리 주님의 진실한 사랑은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한 없이 부어지고 있으니, 그 주님의 사랑을 따라 행하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넉넉히 진실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이 소개하는 사사시대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도 없었고 이웃을 향한 진실한 사랑도 없었습니다. 사랑보다는 미움과 분노와 이기심을 따라 행동하고 있으니 거대한 적군을 물리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들이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도 비극적인 사건과 사고는 그칠 줄을 몰랐지요. 그러던 중 마침내 그 어두운 사사시대의 역사를 끝냈던 인물, 곧 마지막 사사로 평가받는 인물이 등장했으니 그는 사무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무엘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사무엘에게는 입다와 같은 탁월한 전쟁의 능력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무엘은 모세나 엘리야와 같이 놀라운 기적을 행한 일도 없습니다. 그러면 사무엘에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탁월한 리더십이 있었느냐?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의 의견에 반대하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거든요. 이렇게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것도 아니요, 대단한 능력을 소유한 것도 아닌 사무엘은 어떻게 그 비극적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던 사사시대를 종결하고 미스바에서 민족의 영적 대각성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3장을 가만히 묵상하면서 그 하나의 대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에게 발견할 수 있는 그의 최대 장점은 어린 시절 성소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한평생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민족의 지도자가 된 사무엘에게는 탁월한 은사도, 대단한 능력도 보이지 않았지만 한평생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은 유창한 외국어나 아름다운 천상의 언어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겠지요. 지금 당장은 큰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면 사람들이 그의 권위를 인정해 주겠지요. 지금 당장은 나의 모든 재물을 내어주고 심지어 나의 몸까지도 불사르게 내어주는 행위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지금 당장은 빛을 발하지 않을 지라도, 묵묵히 내 마음에 새겨진 주님의 진실한 사랑을 따라 여러분이 계신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을 사랑하시고 내 곁에 있는 이웃을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말씀하셨으니,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실력이 조금은 부족해도, 별로 화려하지 않아도, 
변함없이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는 여러분들의 인생은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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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