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2022. 3. 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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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 혹은 하나님의 이적을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기적이 한두 번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기적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특정한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초자연적인 기적이 집중적으로 나타났던 시대가 크게 두 번 있었는데 그 두 번의 시대는 과연 언제였을까요? 그 첫 번째는 모세의 시대입니다. 곧 출애굽의 과정에서 그리고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많은 기적을 집중적으로 행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모세의 시대 이후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무더기로 나타났던 시대는 또 언제였을까요?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하나님은 갈멜산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불도 내려주시고, 온갖 신기한 기적을 집중적으로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집중적으로 경험했던 모세 시대의 사람들과 엘리야-엘리사 시대의 사람들은 구약 성경의 그 어떠한 시대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앙이 더욱 견고하고 든든했을까요? 하나님의 기적을 그토록 많이 보고 체험했으니, 모세 시대의 사람들과 엘리야-엘리사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그 믿음과 신앙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을까요? 정답은 ‘아니요’입니다. 모세의 시대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 곧 열 가지 기적으로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위대한 기적으로 자신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냈으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앙이 생길만하지요. 그러나 그들은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 그 땅을 점령해라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였고, 그들의 믿음 없음으로 말미암아 결국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는 신세가 되지요.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많은 기적을 행하여 주셨고, 심지어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갈멜산에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장면을 직접 보았다면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회개하고 바알 신이 나 아세라 신과 같은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완전히 회복될 만하지 않은가요?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세벨은 엘리야를 잡아 죽이겠다고 달려들었지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기적을 많이 경험한다고 해서 믿음이 성숙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 같은 인생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시험을 당하시는 장면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은 가장 먼저 장소의 변화를 언급합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1절) 

오늘 본문 이전까지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요단 강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에게 이끌리어 어디로 이동하시죠? 광야로 이동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요단 강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영광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누가복음 3장은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첫째로 하늘이 열리고, 둘째로 성령께서 예수님의 위에 임하시고, 마지막 세 번째로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3:22) 한 마디로 요단 강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나는 장소요,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이 드러나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예수님께서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요단 강을 떠나 광야에 들어갔습니다. 광야는 요단 강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지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광야는 고난의 장소요 시련의 장소요 시험을 당하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1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예수님이 처음부터 누리셨던 하나님의 영광이 아름답게 드러나는 곳인 요단 강을 떠나, 고난의 땅이요 고통의 땅이요 시험의 장소인 광야로 들어가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한 가지 사실을 관찰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요단 강에 머무신 시간과 예수님께서 광야에 머무신 시간은 큰 차이가 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가신 이유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요단 강에 머무신 시간은 세례를 받고 아오시는 정도의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광야에 계신 기간은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거주하신 기간은 모두 40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운 영광이 드러나는 요단 강은 예수님께서 짧은 시간만 머무셨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장소요 시험의 장소인 광야에는 40일이라는 오랜 기간을 거주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경험하신 체험과 광야에서 겪으신 시험, 그리고 예수님께서 요단 강에 머무셨던 짧은 시간과 광야에서 오랫동안 고난을 당하신 기간을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지 않나요?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체험을 경험하곤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하는 여러분에게 간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마 한 분도 빠짐 없이 각자의 삶에 찾아온 하나님의 아름다운 손길을 이야기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이 예수님에게 나타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삶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지금도 여전히 요단 강에 머물러 계신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의 현재 삶을 제가 다 알지 못하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우리 대부분은 요단 강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고통도 많고 고난도 많고 그래서 시험을 당할 수밖에 없는 광야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짧은 요단 강의 체험을 뒤로하고 오랜 시간 광야에 들어가 시험을 받으셨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때는 요단 강의 아름다움을 경험하였는데, 한때는 요단 강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을 체험하기도 하였는지 왜 지금은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느냐고 불평하지 마시고도 말고 원망하지도 마십시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모두의 삶이 광야 같은 인생일진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주치는 그 모든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나에게 찾아오는 모든 시험을 이겨내어 우리 주님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기적의 떡 VS 약속의 말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단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지요. 오늘 본문은 그 가운데 첫번째 시험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2절을 보십시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2절) 

여기 2절의 말씀은 시험의 구체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생활하시면서 겪으셨던 고통스러운 과정을 묘사해주고 있지요. 지금 예수님께서 광야에 계십니다. 광야에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먹을 음식, 마실 물, 거주할 집 등을 구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장소가 광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어요.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나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이것은 광야에서 생활했던 예수님의 모습이기도 하고,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자, 이제 예수님에 대한 사단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3절) 

지금 사단이 예수님께서 던진 시험, 곧 사단의 첫번째 시험의 주제는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돌보심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광야에서 음식을 얻지 못하여 굶주리고 계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며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와 하나님의 돌보심은 과연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사단의 대답은 매우 단순합니다. 그것은 “기적의 떡”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이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정으로 돌보신다면, 돌로 떡을 만들든 혹은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지게 하시든 필요할 때마다 기적의 떡을 만들어 주셔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모든 사람이 코로나로 건강의 위협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기적적으로 바이러스를 이겨내야 한다고, 모두가 경제적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기적적으로 재물의 축복을 받는 것이라고, 모두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는 기적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언제나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는 증거라고 사단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러한 사단의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보다 구체적으로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돌보심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본문 4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4절) 

예수님의 말씀을 무심코 읽으면 우리 육신의 양식이 되는 떡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마태복음에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다음에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이 덧붙여져 있습니다(마 4:4). 그래서 성도들 중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육신의 양식인 떡을 중요하게 여기지 말고 그보다는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그 첫 번째 시험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돌보심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러면 본문 4절에서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하고 계신 것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인용하시는 신명기 8장의 흐름을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명기 8장을 찾아보시겠습니다. 신명기 8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네요. 그리고 이제 이 명령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등장합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신 8:1)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언약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신명기 8장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을 살아왔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4장과 마찬가지로 이 장면에서도 광야 40년은 시험의 장소요, 시험의 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시험을 통과하는 방법에 대해 신명기 8장 1절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서,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신명기 8장 2절은 이것을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광야 40년의 목적이 무엇인지 곧이어 그 목적이 등장합니다.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여기에 시험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네요. 그러면 시험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8:2) 자, 이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이 신명기 8장 3절에 등장합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여기에 만나가 등장하죠?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으로 일반적인 음식이 아니라 기적의 떡입니다. 기적의 떡인 만나를 먹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기에서 떡은 일반적인 양식이 아니라 기적의 떡인 만나를 말합니다.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의 살 길은 기적의 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광야 같은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단은 그 대답이 기적의 떡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8장을 인용하시며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돌보심은 하나님의 말씀,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나의 삶은 광야같고 지금 나의 삶에는 기적의 떡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신명기 8장 1절의 약속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마침내 그곳에서 우리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시는 손길을 참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리

모세 시대는 구약 성경에서 손에 꼽힐 만큼 많은 기적이 일어난 때였지요. 그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 없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적의 떡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제는 아시잖아요.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적의 떡을 매일 먹으면서도 그들에게 찾아온 시험에 철저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의 마음은 언제나 기적의 떡을 원했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의 말씀을 믿으며 그 모든 시험을 참고 견디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으로 넘어오면, 또다시 수많은 기적이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시기가 등장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역시 유대인들에게 기적의 떡을 먹여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건을 오병이어라고 부르지요. 그러면 여러분, 기적의 떡을 먹었던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그 마음이 변하여 예수님을 자신들의 구세주로 받아들였나요?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본디오 빌라도를 향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의 떡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른 신앙인으로 변화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복음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기적의 떡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사단의 첫 번째 유혹입니다. 

성도 여러분,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며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물론,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기적의 떡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기적의 떡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삶은 늘 광야 같아서 기적의 떡을 갈망하기 마련이지요.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의 마음을 기적의 떡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도 넘어지고, 엘리야-엘리사 시대의 북이스라엘 사람들도 실패했으며,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도 사단의 시험에 쓰러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단의 이 시험에 넘어졌을지라도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을 넉넉히 이겨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하여 오늘 우리도 주님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며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사단의 시험을 물리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X2)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신 8:1) 

비록 지금은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갈지라도, 하나님의 이 말씀은 반드시 현실이 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주님의 선하신 손이 지금도 우리를 돌보아 주셨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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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