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2022. 11. 3.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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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분야의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명인 존 맥스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후계자 없이는 성공이라 말할 수 없다.” 존 맥스웰은 이 문장을 기억하기 쉽게 유사한 영어 단어를 사용해서 작성했습니다. 맥스웰의 문장을 영문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There is no success without a successor.” 한 시대에 위대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많이 끼친다 하더라도 자신을 이어 동일한 사명을 계속 이어나가는 후계자(a successor)가 없다면 그의 리더십은 성공(success)이라 말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공생애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였지요. 병든 사람, 귀신들렸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치유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자 사람들은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고 놀라며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예수님께서 행하신 공생애 사역의 하이라이트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그 뒤에 이어진 부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죗값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토록 놀라운 공생애 사역을 마치고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려 하십니다. 그러니 리더십 분야의 전문가인 존 맥스웰의 명제가 중요해진 때가 이르렀지요. 그 명제는 무엇입니까? “후계자 없이는 성공이라 말할 수 없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9절)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 승천하셨습니다. 구름이 예수님을 가리니 제자들은 예수님을 더 이상 눈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제자들은 하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러자 천사가 나타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1절) 

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셨고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예수님께서 다시오시는 재림의 시간까지는 누가 교회를 돌보고 누가 교회 성도들을 목양하고 누가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해야 합니까? 지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지금까지 제자들은 문자 그대로 제자의 자리만 지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도 제자들은 예수님만 바라보고 있으면 되었지요. 예수님께서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 명령하시면 그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해주시고 많은 무리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는 서기관들이나 율법교사들이 율법을 가지고 그들을 공격해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그저 예수님 뒤에 숨어만 있어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두 답해주시고 그들의 모든 악한 꾀를 무력화시키니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지요. 심지어 악한 귀신이 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어느 아버지가 제자들을 찾아와도, 제자들이 그 아들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가셨던 예수님께서 곧 제자들에게 내려오시니 예수님께서 친히 그 아들을 고쳐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때에는 제자들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몰려와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구름에 가려 더 이상 예수님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 어떠한 문제가 일어나면 그 모든 것을 이제는 사도라 불리는 제자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때가 이르렀습니다. 그 책임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제자들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지요. 

예수님의 승천을 바라보며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던 제자들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오늘의 한국 교회가 계속 떠올라 서글픔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성도들이 합심하여 뜨겁게 기도하니 귀신이 쫓겨나고 질병이 치유되며 교회가 크게 부흥하는 시대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부흥은 멈추어 버리고 오히려 기독교가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지요. 코로나의 시기를 겪으며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멀리하고 예배의 현장을 떠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제자들의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서울의 한 복판에서 150여명의 젊은 이들이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현장을 바라보면서도 이 땅의 교회는 큰 슬픔에 빠진 유가족과 국민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저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았던 제자들의 모습이 되어 버리곤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기력하게 로마 군인들의 손에 붙들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제자들은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절망은 이내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희망과 기쁨으로 바뀌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하늘로 올라가 버리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때와는 달리 제자들은 더 이상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승천은 제자들에게 커다란 당혹감을 안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제자들은 어떻게 교회를 이끌어 가야 할까요? 제자들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교회를 이끄는 사도의 직분을 감당할 자격이나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아니, 제자들이 아무리 탁월한 믿음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계승할 수 있을까요? 과연 이 세상에 예수님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요? 그러니 본문에서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았던 제자들의 모습은 하늘을 올려보기는 하지만 여전히 무력감에 당황할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으로 말미암아 당황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행전과 그 이후 이천년 기독교의 역사를 잘 알고 있지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기독교의 복음은 제자들, 곧 사도들로 말미암아 온 세상에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복음은 어떻게 제자들을 통해 온 세상에 전파될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을 우리 시대의 기독교에 적용해본다면, 이렇게 되겠네요. 부흥의 시대도 아니요 영적 대각성의 시대도 아닌 지금 이 땅의 교회는 어떻게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기독교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할 수 있을까요? 다시금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때와 시기에 대한 언급이 많이 등장합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1-2절) 

여기에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을 의미하지요. 누가는 자신의 두 가지 저술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시기와 때를 기준으로 구분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신 공생애의 시작부터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했습니다. 이제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부터 그 이후의 역사를 기록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사도행전은 그 첫 구절부터 시간과 때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뒷부분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마치고 예수님을 이어 제자들이 교회를 이끌기 시작하는 세대교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역시 시간과 때에 대한 언급이지요. 본문에는 시간과 때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제자들이 예수님께 시간과 때에 대해 직접 질문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이까 하니 (6절) 

예수님께서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의 세례를 받을 것이라 말씀하시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회복하시는 때가 바로 그때인지를 질문합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때와 시간에 대해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약 이천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때와 시간에 대해서는 언제나 궁금하지요. 과연 코로나로 말미암은 예배의 위축은 언제나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과연 이 땅에 새로운 부흥의 시대는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조금 더 개인적인 관심으로 바꾸어 볼까요? 나의 기도제목은 언제 응답받을 수 있을까? 과연 우리 가족은 언제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을까? 우리 자녀는 언제 믿음의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이처럼 우리의 주된 관심 가운데 하나는 바로 “언제”라고 하는 시간과 때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제자들의 때와 시간에 대한 질문에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7절) 

예수님의 이 대답이 조금은 실망스러우신가요? 물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 제목에 언제 응답하실지 너무너무 궁금한 우리들은 예수님의 대답에 풀이 죽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대답에 만족하든 만족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예수님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때와 시기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 안에 있으니 우리가 신경 쓸 바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다음 구절이 그 대답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8절) 

예수님은 제자들이 때와 시간에 대해 관심 쓸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사명이지요. 그런데 본문 8절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성령의 임재에 대한 말씀이지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령의 임재와 관련하여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이 본문 4절에 등장합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4절)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사명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것, 곧 성도들이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하면서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령의 충만을 입은 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사명이지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교회는 어떻게 예수님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대답은 두 가지 사명에 집중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성도들이 함께 모여 뜨겁게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는 것이요, 또한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증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언제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재하실지는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합니까? 성령께서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시도록 성도들이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요 우리의 사명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나의 가족이 언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까요? 내 친구 혹은 내 이웃이 언제 예수님을 믿게 될까요? 이 땅에 참된 부흥이 언제 다시 시작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때와 시간을 알지 못합니다. 때와 시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무엇에 집중해야 합니까? 언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그 때와 시간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요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 중에는 지난 10개월 동안, 우리 가정의 성령 충만과 우리 교회의 성령 충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분들이 많이 계신 줄로 압니다. 우리 중에는 지난 10개월 동안,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가족과 친척에게, 그리고 주변의 전도 대상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 분들도 많이 계신 줄로 압니다. 그러나 올해가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아직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는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지만 나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여전히 복음을 외면한다고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의 단호한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7절)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8절) 

성령의 충만으로 말미암은 영적 각성의 때가 언제 도래하느냐고 질문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낙심하지 말고 우리 자신의 성령 충만과 우리 가정의 성령 충만과 우리 교회의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 식구들이 구원받는 때는 언제이며 교회의 부흥은 언제 임하느냐고도 질문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상항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전혀 없을지라도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하고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는 이 두 가지 사명을 위해 충성을 다한다면,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올 것이요 이 땅에 영적 각성과 참된 부흥의 그 날은 반드시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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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