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2023. 2. 15.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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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1900년대 후반까지도 서유럽이나 북미의 나라들은 기독교 국가로 불릴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었지요. 그들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성탄절이나 부활절이 되면 교회를 출석하고, 결혼식과 장례식 등 인생의 중요한 모든 의식을 교회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라고 질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과 이러한 대답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 기독교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기는 하였지만 그 사람이 마음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지, 삶의 모든 과정 속에서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참된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가는지는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매우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라는 질문에 한 가지 표현을 덧붙여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입이까?”(Are You a Re-born Christian?) 

매주 교회를 출석하며 지금도 예배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의 종교는 당연히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시대 성도들에게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너무도 당연하고 쉬운 이름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이었는지 보여줍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6b절) 

이 구절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단어는 ‘비로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이미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예루살렘에 교회가 생겨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였고,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안디옥에 이르러서, 다시 말해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안디옥에 교회가 시작되고 나서야 성도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누군가에게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지켜보니 저 사람들, 예수님을 믿는 저들은 우리와 분명히 다른 특징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 곧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예수’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우리의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고는 “당신은 틀림없이 그리스도인이군요”라고 이야기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의 가슴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명찰을 달지 않아도 좋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꼭 성경책을 옆에 끼고 다니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힘주어 소개하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당신은 참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까 질문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을 지켜보면서 “당신은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군요”라고 평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은 이러한 소원을 가슴에 품고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징: 하나님의 선물

저는 오늘 본문을 근거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두 가지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금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내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약 1:17a) 

모든 좋은 것들과 최고의 선물은 어디로부터 임합니까? 바로 위로부터 옵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좋은 것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야고보서의 말씀 그대로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많은 선물 가운데 가장 귀한 것, 가장 위대한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그분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이지요. 

본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안디옥에 모여 교회를 이루기 전에도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미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 예루살렘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루살렘 교회는 여전히 유대교가 가르치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던 할례의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그 이후에 예수님을 믿을 수도 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용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내가 할례를 받을 때, 내가 율법을 지킬 때, 곧 나의 노력으로 무엇을 할 때 하나님께서 그 보상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반면, 안디옥 교회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비록 할례를 받지 않더라도, 비록 구약의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심지어 율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방인이라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선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본문 19절부터 분명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19절)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여전히 유대인에게만 전하네요. 율법을 지키지도 않고 율법을 알지도 못하는 이방인은 예수님을 믿을 자격조차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달랐습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0절)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헬라인이어도 괜찮습니다. 이방인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자격이나 공로가 전혀 없어도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에게 천국을 주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을 향해 주변 사람들은 작은 예수,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이름 붙여 주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는 인생입니다. 시편이 노래하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됩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수고가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노력으로 무엇인가 얻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내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특별히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어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 부르며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이 놀라운 특권은 나의 노력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지요. 


그리스도인의 특징: 나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첫번째 의미는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선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받은 선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베풀며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들을 부르셨지요. 예수님은 그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과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여러 마을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라고 파송하십니다. 그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마 10:8b)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풍성한 선물 가운데 최고의 선물은 단연코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지요. 그러면 이처럼 위대한 선물을 풍성히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삶의 자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아무런 자격도 없고 공로도 없는 자신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거저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격하였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헬라인에게도, 이방인에게도,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자격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었던 하나님의 선물은 단지 복음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27절). 그들 가운데 온 천하에 큰 흉년이 있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분들이 계셨지요. 그런데 본문 28절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온 천하에 거대한 흉년이 닥쳤습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안디옥 교회보다는 예루살렘 교회가 더 큰 위기를 맞이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합니까?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예루살렘 교회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29-30절)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들로 구성된 교회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교회이지요. 예루살렘 교회를 구성하였던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에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났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중에는 여전히 유대인들에게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곤 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은 성도들도 그 사실을 잘 압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저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들은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믿을 자격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감정이 좋지 않을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힘이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 헌금을 하고 그것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줍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에게 풍성한 은혜와 선물을 날마다 공급하고 계시다고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수많은 선물 가운데 최고의 선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사실을 믿고 계십니까? 그러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십시오. 나에게는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선물로 다 주셨으니,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격을 묻지 말고 값없이 나누고 베푸십시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 방식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할 때 그들은 비로소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기 이전에 이미 예루살렘에는 교회가 있었지요.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를 생각해 보면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가 결코 따라올 수 없었던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일어난 장소도 예루살렘이고, 오순절 성령의 강력한 임재로 시작된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이고, 예수님께서 친히 선택하여 세우신 열두 사도가 있는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 있게 전하였던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은 교회는 어느 교회입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넘어서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 받았던 교회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던 안디옥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와 같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안디옥 교회와 같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만일, 우리 교회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 복음을 전하였던 예루살렘 교회의 역할을 넘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안디옥 교회와 같이 쓰임받기를 참으로 원하신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십시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풍성한 선물인 줄 믿고 거저 받은 하나님의 선물을 거저, 값없이 나누며 베푸십시오. 바로 그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용하시고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바로 이 교회를 사용하셔서, 지난 100년 동안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 복음을 전하신 것을 넘어 앞으로 맞이할 100년에도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일에 우리 교회를 들어 사용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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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