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2022. 12. 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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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대교회는 여러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때로는 외부에서 위기가 발생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내부로부터 위기를 자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저, 외부로부터 위기가 찾아오는 경우입니다. 교회가 성령이 충만해서 복음을 열심히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당시 유대 지역의 종교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던 산헤드린 공의회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것이 너무도 싫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들인데,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하나님의 구원자라고 전파하니 그 이야기가 얼마나 싫었겠습니까? 그래서 산헤드린 공의회는 초대교회의 사도들을 감옥에 투옥하기도 하고 그들에게 매질을 하기도 하면서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위협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외부로부터 몰려온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지요. 그 위기 앞에서 초대교회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모든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 내용을 읽어보면, 그들은 산헤드린 공의회의 박해와 위협이 사라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위협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용기를 주셔서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한번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외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힘 있게 전할 수 있도록 그들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교회가 외부로부터 몰려온 위기를 기도하면서 이겨낸 장면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초대교회는 여러 가지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외부로부터 몰려운 위기도 있지만, 내부에서 발생한 위기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내용이지요.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1절)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과부란 여러 가지 이유로 남편을 잃어버린 여인들, 당시 고대 사회에서 생산 수단이 전혀 없어 하루 세끼의 양식을 얻기에도 힘들었던 분들을 말합니다. 교회는 이러한 분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구제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1절이 묘사하는 것처럼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은 교회의 구제를 더 많이 받는 것처럼 보이고,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는 교회의 구제에서 배제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성도들 사이에 미움과 갈등이 빚어지고, 급기야 커다란 교회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위기에 교회가 어떻게 대처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자, 본문이 묘사하는 교회의 반응과 대처를 살펴보기에 앞서, 초대교회에게 임했던 외부로부터의 위기 그리고 내부로부터의 위기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교회 안에 위기가 없이 그저 평안하다면, 그것은 사도행전이 소개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교회에 베풀어 주시는 은혜는 위기도 없고, 고난도 없고, 온실 속의 화초와 같이 평탄한 길을 걸어가는 그러한 은혜가 아닙니다. 지난 이천 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교회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위기가 있지만, 고난이 있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밤새 뜬 눈으로 지새우는 눈물의 어두운 밤이 찾아오지만, 그 위기를 이겨내게 하시고, 그 위기를 통해 하나님의 더 크고 위대한 섭리를 경험하는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교회에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고 계십니다. 물론, 위기가 있지요.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이 외부에서 발생하여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외부의 위기도 있지요. 뿐만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 우리가 스스로 자처한 여러 어려움과 위기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있다고, 고통이 있다고, 어려움이 있다고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난 세월 속에서 이 교회를 은혜의 손길로 붙잡아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주님의 몸 된 교회로 우뚝 서도록 은혜로 붙들어 주실 줄로 분명히 믿습니다.


직분자, 하나님의 창조적 대안

초대교회는 외부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외부로부터 임한 위기였지요. 뿐만 아니라 교회의 내부로부터 서로 오해하고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내부로부터 일어난 위기입니다. 그런데 외부로부터 박해를 받는 위기와 내부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위기를 대처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대응법이 서로 다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산헤드린 공의회가 더 이상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위기의 상황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외부의 공격에 대한 그들의 대응법은 무엇이었습니까? 기도였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는 합심기도였지요. 그런데 교회의 내부로부터 기인한 갈등과 문제를 대처하는 오늘 본문의 내용은 조금 다릅니다. 본문 3절에 사도들이 성도들에게 제안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3a절)

바로 이것이 사도들이 내어 놓은 대안입니다.

본문 3절은 계속해서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라고 말씀하지요. 그러므로 지금까지 가난한 과부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구제 사업을 누가 주도하고 있었다는 뜻입니까? 열두명의 사도들이 교회의 구제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사도들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공식적인 지도자들이니 교회의 중요한 사역인 구제에도 사도들이 직접 관여하고 주도하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어요. 사람들의 심리라는 것이 내가 받은 떡이 언제나 저 사람이 받은 떡보다는 작게 보이지요. 그러니 성경의 기록만으로는 실제로 구제하는 일에 헬라파 과부들이 차별을 받았는지, 아니면 히브리파 유대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에서 공평하게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로 말미암아 헬라파 과부들의 마음이 서운했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 구제하는 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책은 사실 바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 성도들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구제하는 일에 문제가 발생했으니, 이 일을 주도하는 사도들이 구제와 금전출납을 더 꼼꼼하게, 더 투명하게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면 될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금전출납을 기록하는 방식도 개선하고, 음식을 나누는 방법도 개선하고, 사도들이 구제하는 일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라고 제안하는 사람들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교회가 구제하는 방법을 아무리 개선하고 사도들이 문제 의식을 가지고 아무리 신경을 써도, 유사한 문제는 언제든 발생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단순히 구제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나 단순히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바른 대안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또, 초대교회 성도들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산헤드린 공의회의 박해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의 위기도 온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온 성도들이 열심히 기도해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교회 안에서 조금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서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번에는 온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나 성도들의 합심기도가 해법이 아닙니다. 물론 기도해야지요. 그러나 성도들이 아무리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도, 교회가 구제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차별을 받는다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되는 성도들이 언제든지 일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여러분, 교회가 내부적으로 서로 시기하고 갈등하고 나아가 미움이 싹트기 시작한 이 커다란 위기를 창조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3절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교회의 다양한 사역을 책임감 있게 감당할 수 있는 교회의 직분자를 세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비록 사도들의 제안이었지만, 이것이야말로 내부로부터 커다란 위기를 맞이한 교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대안입니다. 곧, 설교의 제목과 같이 ‘직분자’가 위기를 맞이한 교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대안입니다.

물론 본문에는 직분이나 집사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사도들은 그저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말씀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사도들이 성도들에게 말씀한 의미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일곱 명의 집사님을 택하여 세우라’는 뜻이지요. 그러면 여러분, 사도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말씀하였으니, 일곱 분의 집사님을 세우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교회입니다. 집사님을 택하는 일, 직분자를 세우는 일은 누구의 역할입니까? 교회의 역할이요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점은 사도들이 교회의 지도자로 세워지는 장면을 기억하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열두명의 사도는 교회가 세우지 않았지요. 예수님께서 직접 선택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후 사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가룟 유다가 사도의 직분을 잃어버렸습니다. 초대교회는 그 한 사람의 결원을 자신들이 선택하여 보충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사도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세우기 위해 제비뽑기의 방식을 선택하거든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집사님을 뽑는 방식은 성도들의 선택입니다.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지만 집사님을 세우는 실제적인 주체는 누구입니까? 교회입니다. 그러니 집사님을 선택하는 역할, 직분자를 세우는 사명은 교회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입니다.

여러분, 말씀드린 것처럼 이 땅의 모든 교회는 하나도 예외없이 수많은 위기를 맞이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수많은 위기가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수많은 문제와 위기가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 교회는 그 모든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나아가 그 모든 어려움을 딛고 보다 성장하며 성숙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구제하는 방식을 개선해야 합니까? 금전출납의 좋은 양식을 도입해야 하나요? 도움이 조금은 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알려주시는 창조적인 대안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마지막까지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충성된 일꾼을 세우는 일, 헌신된 집사님을 세우는 일,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기에 교회를 위해 충성스럽게 헌신하는 직분자를 세우는 일입니다.

사도들의 제안에 따라 교회가 일곱분의일곱 분의 집사님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큰 위기 속에서 초대교회는 일곱 분의 집사님을 세우지요. 그 결과를 본문 7절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7절)

교회 안에 직분자가 세워졌습니다. 그러자 교회를 위기로 몰아갔던 시기와 갈등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왕서해서 교회는 더욱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우리 교회 가운데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직분자의 흩어짐

초대교회의 집사님들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교회가 성도들에게 직분을 주는 이유는 직분을 받은 분들이 교회에 애정을 가지고 오랜 세월 교회를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지요. 예루살렘 교회 역시 처음 일곱 분의 집사님을 세웠을 때, 집사님들이 오랜 세월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에 일곱 분의 집사님을 세운 사도행전 6장의 바로 다음 7장으로 넘어가면 집사님 가운데 한 분이셨던 스데반이 순교합니다. 그뿐이 아니지요. 한 장 더 뒤로 넘어가서 사도행전 8장에 이르면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납니다. 그 결과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남아 있었지만, 스데반을 제외한 여섯 분의 집사님들은 모두 교회를 떠나 흩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한평생 충성하리라 다짐하였을 일곱 분의 집사님들이 원치 않게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거대한 박해가 일어나 예루살렘의 모든 집사님들이 예루살렘과 유대땅을 벗어난 것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습니다. 집사님들이 흩어져서 떠나간 지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마리아였거든요. 사도행전을 처음 시작할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처음에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합니다. 이 단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택하시고 세워주신 사도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분들은 누구였을까요? 네, 오늘 본문의 주인공으로 예루살렘 교회에서 집사님으로 선택을 받고 세워진 바로 그분들입니다. 이후 사도행전 8장을 보면, 빌립 집사님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정말로 대단한 활약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직분자 여러분, 여러분의 사명이 교회 안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서 충성을 다하되, 여러분의 발걸음이 미치는 그곳에서 여러분의 손길이 닿는 그곳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한 일에 힘쓰십시오. 장로, 집사, 권사의 귀한 직분을 받으신 여러분이야말로 교회를 위한, 그리고 온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창조적 대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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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