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리는 복을 선언했다면(마 5:1-12),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가르친다.
세상의 소금과 빛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소금과 빛으로 표현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3-14절)
"너희"라는 대명사는 본문의 바로 앞에 나왔던 팔복의 대상, 곧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신다. 이들은 장차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것이 아니라 이미 소금이고 이미 빛이다. 곧,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순간 그들에게는 복음으로 세상에 맛을 내고 빛을 비추는 사명이 주어졌다. 남은 과제는 그 사명을 감당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다.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맛을 잃은 소금처럼 밖에 버려진다. 그러나 사명을 감당하면 산 위에서 비추는 빛처럼 세상 사람들이 그 빛을 바라보게 된다.
예수님은 소금과 빛의 사명이 구체적으로 "착한 행실"이라고 설명하신다(16절). 또한, 팔복 선언(마 5:3-12)과 소금과 빛의 사명(마 5:13-16)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팔복이 가르치는 십자가의 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마태복음 5장 1-12절 "팔복, 십자가의 또 다른 이름"). 온유한 행동, 의에 주리고 목마른 모습, 긍휼히 여기는 것, 화평하게 하는 말과 행위 등이 제자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율법의 완성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 대해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초대교회의 중요한 이슈였다. 유대인들은 스데반이 율법을 거슬러 말한다고 공격했다(행 6:13). 바울 역시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행 21:17-26). 율법에 대한 논쟁은 교회 안에서도 격렬하여 예루살렘 공의회의 주요 안건이었다(행 15장). 이것은 초대교회만 아니라 현대 그리스도인에게도 구약성경을 어떻게 읽고 적용해야 하는가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7절)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 오셨다. 율법의 완성이란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율법의 조문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을 넘어 그 참된 정신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유대 민족 중심의 율법 해석과 적용에서 벗어나 열방을 구원하는 복음의 관점에서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율법을 대하는 자세 역시 율법의 폐지가 아니라 율법의 완성이어야 한다.
뱅크스(R. Banks)는 위의 구절에서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제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이 율법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 이전에 율법을 완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 본문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양용의 교수는 율법을 완성하시는 예수님을 이렇게 묘사한다. "예수는 율법의 연속선상에서 서 계시면서도 율법의 한계에 머물지 않으시고 율법의 궁극적 목표를 성취하심으로써 율법을 초월하신 분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경시하는 자들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율법주의도 반대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8절)
"천지가 없어지기 전"이라는 표현은 특정 시한을 지칭한다기보다, '결코'라는 의미의 과장법이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율법의 효력이 멈춘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율법은 완성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예수님은 다음 구절에서 율법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시점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19절)
17~18절은 '율법'이라는 단어를 쓰고, 19절에서는 '계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차이는 17~18절과 19절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듯하다. 17~18절이 예수님의 오심으로 율법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을 묘사한다면, 19절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천국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마지막 심판의 때를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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