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2023. 1. 26. 20:19

이른바 '예수님의 반제(Antithesis)'가 계속된다.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될수록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율법의 참 의미를 왜곡하였는지, 성도들이 따라야 하는 율법의 바른 정신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맹세하지 말라 

맹세에 대한 가르침은 십계명의 제 3계명,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말씀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지만 그 맹세가 거짓으로 드러나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3절)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율법에 따라 헛 맹세를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맹세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서 맹세하는 방식이다.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구체적인 예로 하늘이나 땅이나 예루살렘이나 자신의 머리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34-36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맹세할 수 없으니 하늘이나 땅으로 맹세하면서 거짓인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성도들이 거짓을 말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죄악이라고 지적하신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37절)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는 표현을 보다 쉽게 풀어보면,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라는 뜻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정직하고 진실한 언어생활에 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좋아했던 성구 중에는 이른바 동태복수법이라 불리는 구절이 있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8절) 

위의 구절을 동태복수법이라 부르는 것은 율법의 정신을 오해하게 만든다. 이 말씀은 재판관에게 공정한 판단을 명령하는 규정이지 개인의 보복을 명하는 구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율법은 손해를 입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상대에게 보복하는 것을 엄격히 금한다. 율법은 오히려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이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의 마음에 도사린 분노와 복수심을 정당화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3절)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변하지 않는 율법의 말씀이다. 그러나 원수를 미워하라는 구절은 성경에 없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을 실천하려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그 말씀을 피할 길을 찾아 나섰다. 그 하나의 결과로 이웃이라는 개념의 경계를 만들었다. 어떤 율법교사는 예수님께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질문한다(눅 10:2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4절)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웃과 원수라는 유대인의 경계를 허무는 말씀이다. 이웃이든 원수든 사람을 구별하지 말고 모두 사랑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다른 사람을 이웃과 원수로 구분한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핵심은 이러한 구분을 뛰어 넘어 나의 모든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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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