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 분야의 전문가 가운데 제임스 클리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가 한글로 번역되어 출판되기도 하였는데요. 그 책의 제목은 <아주 작은 습관의 힘>입니다. 이 책에서 제임스 클리어는 작은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있는데요. 그 가운데 한 문장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목표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습관의 수준으로 떨어진다.
You do not rise to the level of your goals. You fall to the level of your systems.
고상한 목표를 세우고 이상적인 꿈과 비전을 선포하더라도 매일 혹은 매주 작은 습관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내가 내세우는 목표나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습관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제임스 클리어의 주장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마음에 품고 그것을 입으로 선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날마다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소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 받고 교회와 복음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되고 싶은 비전이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비전과 꿈은 우리의 작은 습관에 뒷받침되지 않으면 헛된 공상으로 끝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작지만 강력한 습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매주 주일을 맞이하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습관이지요.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이지요. 시간을 정해놓고 혹은 수시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습관. 이처럼 거룩한 습관이 우리 삶에 하나하나 자리를 잡을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슴에 품고 있는 거룩한 비전과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이 땅에 교회가 시작된 바로 그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뒤,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오순절이라는 유대인의 절기를 맞이하였고, 바로 그날 성령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임재하셔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임하신 그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교회는 매년 부활절 이후 일곱 번째가 되는 주일을 성령강림주일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목천의 모든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에 임한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바로 오늘 2025년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한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자,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먼저 그들은 다양한 언어를 말하는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지방에서 오순절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몰려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랍니다. 이 일을 계기로 사도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가르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바로 이날 예수님을 믿어 세례를 받은 사람이 모두 삼천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에 성령께서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가장 놀라운 변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초대교회 성도들 사이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거룩한 습관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오늘의 설교 제목 그대로 ‘성령의 거룩한 습관’이 초대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자리를 잡았던 것입니다.
제임스 클리어의 이야기를 기억해보세요. “우리는 목표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습관의 수준으로 떨어진다.” 성령이 충만하고 그 순간 위대한 경험을 했을지라도 지속적으로 매일 매주 매월 새로운 습관 거룩한 습관이 성도들의 삶에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어떻게 초대교회에 안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역사는 마침내 성도들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성도들의 습관까지도 변화시켰던 것이지요.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의 충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충만히 임재하셔서 우리의 일상이 바뀌고, 우리의 습관이 변하여 ‘성령의 거룩한 습관’이 우리 개인과 우리 교회에 분명히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거룩한 습관으로 말미암아, 매일 펼쳐지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날마다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습관 – 예배
성령 하나님께서 충만히 임재하시자, 초대교회에 성령의 거룩한 습관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면 본문이 묘사하는 성령의 거룩한 습관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예배의 습관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2절)
성령의 충만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습관적으로 일상적을 행한 일들을 무엇입니까? 본문 42절 말씀이지요.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사도들을 통해 말씀을 배우는 일이네요.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도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으니 그 위에 성령의 충만함이 임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중요한 특징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복음에 대해 이미 알고 있지만, 예수님의 복음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되었지만, 복음을 믿고 그 위에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했지만 여전히 지속적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했다는 사실이지요.
자, 계속해서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본면 42절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그들이]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여기에서 “떡을 떼며”라는 표현은 성만찬 예식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잡히시던 그날, 제자들과 식탁을 나누시며 성만찬을 제정하셨지요.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며 말씀하시지요. “이 떡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초대교회는 놀라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따라 정기적으로 성만찬을 시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42절의 마지막은 어떻게 말씀합니까?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성령의 충만을 입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밤낮없이 어디에서든 함께 모여서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며 함께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42절에 등장하는 말씀을 배우는 일, 성만찬을 나누는 일, 그리고 함께 기도하는 일 이 모든 것이 언제 이루어집니까? 예배를 통해 이루어지지요. 그러므로 본문 42절이 묘사하는 초대교회의 거룩한 습관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예배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을 단 한 가지만 꼽는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향한 예배지요. 여러분, 다 경험하지 않으셨습니까? 나의 마음에 성령께서 임재하시면 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그전에는 지루하게만 여겨지던 설교가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그렇게 은혜가 될 수가 없고요. 그전에는 따분하게만 여겨지던 성만찬 예식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천국 식탁이 되고요. 그전에는 힘들게만 여겨지던 기도의 시간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가장 달콤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에 대해 결코 오해하지 마십시오. 성령충만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방언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예언을 하는 것도 아니고, 환상을 보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 충만을 입은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예배의 자리를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목천의 모든 성도 여러분,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께서 충만히게 임재하여 주셔서 여러분의 예배 생활이 다시금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 예배가 다시 살아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목천교회의 모든 예배와 모든 기도회마다 성령께서 충만히 임재하셔서 은혜로 가득한 예배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습관 – 교제
초대교회에 성령께서 강력하게 임재하셨습니다. 그러자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의 거룩한 습관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데, 가장 먼저 예배의 습관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또 하나의 중요한 습관이 있으니 그것은 성도들 사이의 교제입니다. 본문 42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그 다음에 어떻게 이어집니까? “서로 교제하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활동입니다. 함께 떡을 떼는 것, 곧 성만찬을 통해 우리는 지금도 우리에게 베푸시는 영혼의 양식을 얻습니다.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것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향상시키는 활동이지요. 그런데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우는 일에만 몰두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함께 예배하는 사람들, 함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함께 신앙생활하는 사람들과 무엇을 했습니까? 교제하는 일을 행하였던 것이지요. 이와 같은 모습이 본문 46절에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6절)
본문 46절이 어떻게 시작합니까? “날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일년에 한 번 한 것도 아니고 매월 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매일 행한 일을 본문 46절이 묘사해주고 있네요. 먼저 그들은 매일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예배를 말하지요. 그런데 초대교회의 더욱 중요한 특징은 그 다음에 등장합니다. 46절의 뒷부분을 보십시오. 그들은 “집에서” 각자의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을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여기에서 떡을 뗀다는 것은 위의 42절과 달리 공식적인 성만찬 예식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가정에서 나누는 식탁의 교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은 이 구절의 의미를 너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왜 그렇습니까? 목장의 예배를 드리거나 구역예배를 드리며 각 가정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밥을 나누고 떡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었던 경험이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625전쟁으로 온 국토가 초토화된 이후, 1950년대 한국 교회에 이른바 구역예배라는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구역예배의 성경적인 근거를 제공했던 구절이 오늘 본문 46절의 말씀이었어요. 성전에서 모이는 공적인 예배도 중요하지만, 각 가정에서 모이는 구역예배 혹은 목장의 예배도 그와 동일하게 중요하고 가정에서 모이는 예배는 함께 음식을 나누는 문화가 그때부터 한국교회에 정착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우리 한국 교회는 사도행전의 본을 따라 교회에 모여 예배 드리기를 힘썼습니다. 그리고 각 가정마다 함께 모여 교제하기를 즐거워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최근 한국 교회는 큰 침체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일 예배를 출석하는 성도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한국 교회의 더욱 큰 침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10년 전, 20년 전에 비하여 급격하게 목장 모임, 구역 모임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목천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의 충만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예배가 다시 살아나고, 뿐만 아니라 목장의 모임과 성도들 사이의 교제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충만한 우리 교회는 성도들 사이의 교제에서 배제되시는 분이 한 분도 안 계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매주 교회에 나아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성도들이 다른 성도들과 함께 만나 음식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고 기도제목을 나누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가 우리 목천교회 가운데 가득해지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
성령의 충만한 임재 이후,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거룩한 습관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습관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습관이고,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는 습관이지요.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배하기를 기뻐하는 성도들, 이렇게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기를 기뻐하는 교회에 하나님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데요. 그 장면을 먼저 본문 43절이 묘사하네요.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3절)
사람들이, 곧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바라보며 두려워합니다. 한 마디로,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령의 충만으로 예배하는 습관, 교제하는 습관이 딱 자리 잡은 초대교회에 하나님께서 날마다 기사와 표적, 곧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니 주변 사람들이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결론입니다. 오늘 본문 47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47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손길이 날마다 체험되시기를 바라시나요? 여러분의 삶 속에도 기도의 응답이 날마다 가득하시기를 바라시나요? 여러분의 삶 속에 날마다 간증의 내용이 풍성해지시기를 바라십니까?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십니까?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을 입어 예배의 습관 교제의 습관, 곧 성령의 거룩한 습관이 여러분의 삶 속에 자리 잡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때 사람들이 깜짝 놀란 기사와 표적, 곧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가득하게 되는 것이요, 우리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항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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