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2023. 5. 3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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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왓슨이라는 분이 저술한 <제자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출판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지침을 제공해 주지요. 데이빗 왓슨은 이 책에서 성도 개인의 제자도와 교회 부흥의 연관성을 매우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을 잠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에 복음에 대하여 흥분하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명백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에 
‘와서 보라’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때 복음 전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데이빗 왓슨의 논리는 이것입니다. 만일 어느 교회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교회 공동체에는 지배와 경쟁, 시기와 미움이라는 세상의 법칙이 아닌 사랑과 온유, 겸손과 화평이라는 하나님의 법칙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의 법칙이 가득한 교회 공동체는 세상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은 교회, 교회 성도들이 자신 있게 불신자를 초대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제자도가 살아있는 교회는 전도를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부흥한다는 주장입니다. 

우리는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제자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출석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이지만 그들이 모이는 교회는 세상의 조직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 제자도가 없다면,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사라졌다면 누가 그러한 교회를 찾아오겠습니까? 그러므로 제자도가 사라진 교회에는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데이빗 왓슨이 <제자도>라는 책에서 성도들의 제자도와 교회의 부흥의 관계를 설명한 내용입니다. 이 책이 출판된 1980년대 당시 미국 교회를 비롯한 서구의 기독교에 부흥이 사라진 이유를 데이빗 왓슨은 바로 제자도의 부재에서 찾았던 것이죠. 

지난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성도들의 예배 출석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의 종결을 사실상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많은 교회는 코로나 이전의 출석인원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요. 이처럼 최근 몇년간 교회의 출석인원이 급격히 감소한 데는 코로나 팬데믹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데이빗 왓슨의 주장을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리하여 우리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우리 시대 교회가 더 이상 부흥하지 않는 이유도, 아니 우리 시대 교회가 오히려 쇠퇴하는 이유도 외부의 어떤 요소보다는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제자의 삶을 바르게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는 교회가 부흥하지 않는다고 아니 오히려 우리 시대에는 교회가 자꾸 쇠퇴한다고 눈에 보이는 출석 인원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제자의 삶이 없음을 더욱 근심하며 슬퍼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 성도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사라진다면 
그 교회는 시간이 문제지 반드시 쇠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명목상의 제자

사도 바울의 3차전도여행을 묘사하는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이 묘사하는 초대교회에도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허울 좋은 명칭이었을 뿐 참된 제자의 삶을 살지 못했던 사람들이 존재했다고 알려줍니다.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하지요.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바울이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그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2a절) 

이때 그들의 대답은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2b절)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령 하나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고 답합니다. 이처럼 성령님에 대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제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으니 당황스러운 상황이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질문합니다.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3a절) 

에베소에서 제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세례는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질문합니다. 그들이 받은 세례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그들의 대답은 제자라는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3b절) 

여러분, 세례요한이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던 이유는 자신의 뒤에 오실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역으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였고, 요한의 사역 위에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나아가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을 완성하신 것이 이미 수십 년 이전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제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어찌 된 일인지 여전히 세례 요한의 세례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제자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지도 못했고, 단 한 번도 성령 하나님을 체험한 적도 없는 “이름뿐인 제자”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지금까지 성령 하나님께서 열두명의 사도와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 얼마나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펼치셨는지 웅장한 필치로 기록하고 있지요.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강림하시자 그 자리에 있었던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을 체험하였고,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열두 명의 사도들, 일곱 분의 집사님들, 바울과 실라 등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데 쓰임 받았던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로 사도행전은 가득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지 약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니 사도행전이 묘사하는 그 초대교회 안에 이름뿐인 제자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일찍이 데이빗 왓슨이 지적한 것처럼 교회가 제자도를 잃어버리면, 그리하여 복음의 능력도 모르고 성령의 역사도 체험하지 못한 이름뿐인 제자들 혹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 가득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교인의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도 아니고 교회의 조직이나 운영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 참된 제자도가 사라진 것이 문제입니다. 


두란노 학당

오순절에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로 시작된 초대교회였지만, 그로부터 약 20년의 세월이 지나자 교회 안에는 이름뿐인 제자들과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사도행전이 기록하는 초대교회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복음의 역사를 새롭게 체험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의 마지막 장면이 그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8절) 

바울이 어디에서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 대해 가르쳤습니까? 바로 회당입니다. 사도행전을 처음부터 계속 읽어오면, 바울이 이미 1차 전도여행과 2차 전도여행에서 방문하는 지역의 회당을 사역의 중심지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어느 지역에 거주하든 그 마을에 세워진 회당에 매주 안식일마다 모였지요. 바울은 1차전도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3차 전도여행을 다니는 지금까지 회당을 전도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안식일이 사역의 중심이 되었고 유대인들이 주된 선교의 대상이었겠지요.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본문 9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복음을 반대하네요. 9절을 계속 보십시오. 무리 앞에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비방하잖아요. 자, 지금까지 바울은 회당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상황입니다. 그러자 바울은 지금까지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법을 도입합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9b절)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복음을 전하는 장소가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쳤던 바울이 이제는 두란논 서원에서 강론을 시작하네요. 우리말 성경에서 “서원”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스콜레’인데 학교를 의미라는 School의 어원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서원 혹은 학당 정도의 의미로 보시면 될 것입니다. 자,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가르치던 지금까지의 방식을 바꾸어 두란노 서원에서 강론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장소가 바뀌자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변화가 따라왔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회당은 사람들이 주로 안식일에 모이던 장소였지요. 그런데 두란노 서원을 사역의 중심지로 삼으니 - 9절의 뒷부분이 말씀하는 것처럼 “두란노 서원에서” 그다음입니다 - “날마다” 복음을 강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본문 9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복음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던 대상입니다. 9절을 다시 보십시오. 바울이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니 어떤 사람들, 곧 회당에 참여하였던 유대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거부하였고 심지어 복음을 비방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그리고 본문 9절을 계속해서 무엇을 말씀하지요?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매일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두란노에서 말씀을 집중적으로, 매일 가르쳤던 대상은 누구일까요? 바로 제자들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제자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주 안식일에 모이는 회당을 포기한 바울은 이제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매일, 곧 집중적으로 복음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에 온전히 맡기는 참된 제자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었지만 바로 그들을 그리스도의 바른 제자로 세우는 일에 바울은 자신의 남은 모든 사역을 바쳤습니다. 이것이 회당을 떠나 두란노에서 사역을 시작한 바울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오늘 본문 10절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0절) 

여러분, 이 말씀은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두란노 서원을 찾아와 바울에게 복음을 들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문 10절이 묘사하는 바는,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쳤던 제자들을 통해 그 제자들이 아시아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신약성경을 계속 읽다 보면 그 흔적이 여러 가지로 등장하는데요. 그 대표적인 예가 골로새교회입니다. 신약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바울이 골로새를 방문하였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두란노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었던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에 교회가 세워지고 그곳에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지요(골 1:7).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지 약 20여년이 흐른 뒤, 사도행전이 기록하는 초대교회에도 이름뿐인 제자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났습니다. 당연히 교회는 복음의 능력도, 성령의 역사도 조금씩 잃어버리기 시작했지요. 바로 그때 사도 바울은 교회가 새롭게 복음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바른 길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간파했습니다. 비록 적은 숫자라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때, 바로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새로운 부흥을 일으키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는 더 이상 성장을 멈추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시대의 교회는 오히려 계속 쇠퇴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슴에 품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를 찾고 계십니다. 비록 소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비록 겉모습은 초라하고 볼품이 없을지라도 바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 시대에도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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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