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20. 6. 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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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는 기독교의 복음이 가장 분명하고 명확하게, 또한 웅장하고 화려하게 담겨있는 성경의 책입니다. 한 평생 복음을 전했던 사도 바울이 자신이 전한 복음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설명한 글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 로마서는 편지입니다. 편지란 특정인이 편지를 받는다는 전제 하에 그 사람에게 무엇인가 전하고 싶은 내용을 기록한 것이죠.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편지를 보내는 발신자가 되고, 로마교회 성도들이 편지를 받는 수신자가 됩니다. 곧,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특별히 무엇인가 전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 로마서인데,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그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15절을 보면,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대목에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복음에 대해 알려주고, 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존 신자인가요? 아니면 불신자인가요? 우리가 전도를 한다고 할 때 주로 불신자를 만나 전도를 한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기존 신자들에게도 전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불신자에게 전도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죠.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편지를 작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 곧 갈라디아 지방, 마게도냐 지방, 아가야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거쳐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저 서바나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동시에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사도 바울이 이미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고,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 교회를 이룬 로마 교회 성도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여기에 아주 귀한 교훈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교회 성도들에게도 복음을 다시 듣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 복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도 무엇이 필요해요? 복음을 다시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면 내 마음에서 기쁨이 샘솟듯 솟아납니다. 너무나 즐겁습니다. 내 마음에 감격이 흘러넘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감히 눈을 들 수조차 없는 죄인인데 나의 그 많은 죄악이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로 깨끗해졌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것을 구원의 감격이라고 말하죠. 처음 예수님을 믿으면 이러한 구원의 감격이 넘쳐나요. 이때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좋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서 기도하고, 성경 읽고 내가 체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이것이 구원의 감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시간이 흐르면 불행히도, 안타깝게도, 슬프게도 내 마음에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복음의 감격이 껍데기만 남아요. 복음에 대해 알지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알지요.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내 마음에 그 감격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하고, 다시 복음을 묵상해야 하며, 다시금 복음을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은혜가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오래하였고, 교회에서 생활하는 것이 이제는 익숙해지는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격이 사라지셨다면 다시금 우리가 바른 믿음 위에 굳건하게 서고 우리 안에 구원의 감격이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음 –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편지를 시작하는 로마서 1장 1절부터 복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1-2절)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까지 예수님을 반대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그날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바울을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의 길을 막아서고 그로 하여금 새로운 믿음의 길을 시작하도록 하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도 바울의 회심을 그저 다메섹 도상에서 있었던 한 순간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됩니다. 한 순간, 예수님을 대면했던 그 신비한 체험이 바울이 회심하는 전체 과정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이 그 근거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는 이 선언은 예수님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그 예수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이후에나 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직후 아라비아로 갔다고 회상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cf 갈 1:17). 아무도 없는 아라비아 사막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너무도 익숙한 구약성경을 다시 읽으며 자신이 만난 예수님이 누구인지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여 진지하게 탐구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거부하고 박해하였던 예수님이 과연 누구인가? 다메섹 도상에서 나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이 과연 누구인가? 이 질문을 가지고 씨름을 하면서 구약 성경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기 시작하는 거지요. 

그 과정에서 창세기 12장 2절에 등장하는 열방에 복을 주시는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7장에 등장하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임마누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11장에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와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자가 된다는 예언이 바로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무엇보다 이사야 53장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바로, 이사야 53장에 등장하는 고난 받는 종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도 바울이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요?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님이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어요. 그런데 다시금 성경을 읽고, 다시금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보니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야 말로 온 인류를 구언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아요, 사도 바울 자신을 구원하신 구원자가 되셨던 거예요. 사도 바울은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으로 바울은 복음을 설명하며 바로 2절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 3절을 계속 보십시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이 모든 것을 구약 성경을 통해 분명히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4절,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는 다메섹에서의 단 한번의 체험은 바울이 회심하는 계기는 될 수 있었지만, 그것이 바울이 회심하는 전체 과정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체험 이후, 구약 성경을 깊이 읽었고, 예수님의 생애를 깊이 묵상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알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며 탐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복음을 깨닫게 되었고, 복음의 은혜가 그의 마음에 흘러넘쳤으며, 어떠한 고난이 찾아와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성하는 복음의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놀라운 체험을 했지만,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 신비한 체험을 계속해서 추구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 바른 길입니다. 

여러분도 사도 바울과 같이, 마음 가득히 복음의 은혜가 넘치기를 바라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에도 구원의 감격이 다시금 풍성하게 흘러 넘치시기를 원하시나요?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도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신비한 체험을 쫓아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마십시오. 다시금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집중하시고, 다시금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의 삶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들려 달라고 요청하지 마십시오. 너무 새로운 이야기를 좋아하지 마세요. 성경 저 구석에서 한 구절을 찾아내어 뭔가 새로운 이야기인 양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은 바로 이단들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2-24)


부르심 – 복음이 일으키는 변화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먼저 복음에 대해 간단히 서술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지 묘사하지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5-6절)

바울은 먼저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5절을 다시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사도 바울이]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은혜와 사도의 직분”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직역입니다. 본문에는 ‘이사일의’라는 수사학적인 방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설명은 다 뒤로 하고 결론만 말씀드리면, 우리말 성경의 ‘은혜와 사도의 직분’이라는 표현의 뜻은 ‘은혜, 곧 사도의 직분’이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았습니다. 곧 사도의 직분이라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복음을 깨닫기 전, 바울은 복음을 박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그의 마음에 자리 잡자 복음의 박해자였던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삶의 정체성이 변화되고, 삶의 목적이 바뀐 것, 이것이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복음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했지요. 바울은 다음으로 이방인들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5절을 계속 보십시오. “그의 이름을 위하여” 그 다음에 누가 등장하지요? “모든 이방인”이 등장합니다. 그들도 “믿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요 그리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믿어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선포되니, 그들도 복음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변화를 설명했지요. 마지막으로 로마 교회 성도들이 등장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너희도” 여기서 너희는 당연히, 로마교회 성도들입니다. 로마교회 성도들인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은 로마의 시민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을 성도로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변화시켜주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박해자였던 사울을 불러 바울 사도로 삼으시고, 이방의 우상을 섬기던 이방인들을 불러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앙인으로 변화시키고, 로마의 시민들을 불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였습니다. 곧, 복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요,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삶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복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복음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의 삶이 변화됩니다. 그런데 그 변화라는 것이 만사형통으로의 변화가 아닙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내 삶의 변화는 하는 일마다 성공하는 인생으로의 변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도라는 직분, 감당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어요. 이방인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던 삶에서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고요. 로마교회 성도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무엇을 소유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것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은혜가 마음에 가득한 사람의 중요한 특징을 발견하게 됩니다. 곧, 복음의 은혜가 마음에 가득한 사람은 자아가 죽어 있는 사람이에요. 나의 자아는 죽고 예수님만 살아있는 사람이지요. 그에게는 자신의 의지, 자신의 욕망, 자신의 고집이 없어요.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만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순종만 있고, 하나님의 소유라는 정체성만 있어요. 내 손에 있다고 내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려 합니다. 나에게 조그마한 힘이 있다고 그 힘을 행사하기보다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 마음에 너무도 풍성하기에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성숙이고, 신앙으로 말미암은 인격의 성숙입니다. 

신앙생활의 경륜이 한 해 한 해 더 늘어날수록 우리의 믿음도 성숙을 경험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올해보다 내년에 나의 믿음이 더 성장하고, 신앙으로 말미암아 나의 인격이 더 성숙되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에 필요하지 않을까요? 

여러분, 그 해답, 그 비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습니다. 

우리를 온갖 죄악에서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시고, 우리 마음에 구원의 감격이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박해자 바울을 사도로 부르신 은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신앙인으로 부르신 은혜, 로마의 황제가 정해놓은 법률에 따라 살아가던 로마의 시민들을 천국에 그 시민권을 두고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신 그 은혜가 이 자리에서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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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