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20. 6. 12.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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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않고 기도하는 내용이 있다면 바로 우리의 자녀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모든 부모의 마음에는 우리 자녀들이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나의 자녀들이 당하게 될 고생, 고난, 어려움들을 미리 예측하고 최선을 다해 자녀들에게 고난과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노력을 하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녀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고난의 길, 고통의 길을 가급적 피하고 평안하고 평탄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깨닫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에 고난이나 역경이나 고생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어쩌면 부모의 역할이란 자녀들에게 고생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하지 말고, 자녀들에게 고생이 찾아오고 어려움이 닥쳐올 때 그러한 고난을 감내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가지 종류의 고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고난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며 간구할지라도 우리 앞에는 어려움이 찾아오고 고난과 고생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고난이나 역경을 피해 갈 수는 없지요.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어떻게 우리가 고난이나 역경을 피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가 고난을 피할 수 없다면 과연 어떠한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줍니다. 다시 말해, 고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우리는 두 가지 고난 가운데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고난은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고난은 무엇이지요? 두 번째 고난은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보다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 받는 것은 복된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 14절에 그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여러분, 나는 매일 새벽 주님 앞에 나와서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데, 나는 매주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최선을 다해 봉사를 하는데, 왜 여전히 나의 삶 속에는 이렇게 고난이 많고 고생이 심하냐고 질문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을 행하든, 아니면 하나님을 모르고 기도하지도 않고 말씀을 거부하든 상관 없이 모든 인간에게는 고난이 찾아오게 되어 있어요. 고난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아니,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은 결국 멸망의 길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그래서 의를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은 복된 인생입니다. 



선을 행하며 고난을 받을 때 겪는 두 가지 경우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악을 행하며 받는 고난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받는 고난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게 되면 우리는 크게 두 가지의 경우를 마주하게 됩니다. 첫번째 경우는 선을 행하며 고난을 받는 우리의 모습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삼아 여러분의 속 사람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여러분을 찾아와 여러분의 마음에 담겨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러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선을 행하냐고, 도대체 어떤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것 같은데 끝까지 선을 행하냐고 질문한다는 것이죠. 바로 그때 그 이유를 대답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항상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바로 그때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천국의 소망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복음의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게 되면 사람들이 찾아와서 우리 마음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게 됩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그 반대의 자세를 취하지요. 바로 우리의 선행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선행을 욕하고요, 우리의 선행을 비방합니다. 그것 보라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그렇게 선을 행해도 너 자신에게 돌아오는 유익이 무엇이냐고 우리를 비방합니다. 바로 그때 오늘 본문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분이 한 분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누군가 저에게 오늘 본문 18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조사하는 꼽을 것 같습니다. 바로 18절 처음에 등장하는 “그리스도께서도”에 등장하는 “도”라고 하는 조사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라고 말씀합니다. 곧, 우리만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도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와 같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욕을 해대고 비방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2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악을 행함으로 당하는 고난을 버리고 선을 행함으로 당하는 고난을 선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할 때 어떤 이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질문하며 나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욕하고 비방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바로 그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십시오. 선을 행하다가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은 온 우주만물 위에 오르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나에게 조그마한 고난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기에 더욱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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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