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모세가 자신의 사역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찾아왔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사명을 정리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 일을 하죠. 그 첫째는 다시 한번 율법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31장에는 모세가 율법의 말씀을 말로 전할 뿐 아니라, 이제는 글로 자신이 전했던 율법의 말씀을 기록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율법책을 후대에 남겨 오고 오는 세대가 그것을 읽고 들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사명을 정리하기 위해 행했던 두번째 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가 신명기 32장에 매우 길게 기록되어 있지요. 그 노래는 인간의 죄악을 회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마음이 완악한 백성인지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합니다. 이렇게 모세는 이 세상을 떠나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가지 유산을 남겼는데 하나는 율법책이요, 또 하나는 노래 곧 찬양입니다.
우리에게도 신앙의 가장 귀한 유산이 있다면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이지요. 모세가 후대에 율법책을 남겼다면,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게 기록되어 있는 신구약 66권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오랜 세월 신앙인들이 함께 불렀던 찬송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찬송가를 함께 부르며 우리의 죄악을 회개하기도 하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노래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너희 마음에 두라
성경책, 그리고 찬송가. 이 두 가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값진 유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불리는 C. 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음악에 관한 책들 안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고 기대한다면,
우리는 실망하고 말 것이다.
아름다움은 그 안에 있지 않다." 1
음악에 관하여 멋진 문장으로 서술한 책이 있더라도 음악의 아름다움은 그 안에 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최고의 풍미를 자랑하는 음식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책 안에서도 우리는 그 음식의 맛을 결코 경험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책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성경책 안에 다 담겨있을 수가 없으며, 우리가 손에 들고 다니는 조그마한 찬송가 안에 온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낼 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책을 남기고, 함께 부를 노래를 남겼던 모세는 오늘 본문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46절입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이 구절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말씀은 '너희의 마음에 두라'는 권면입니다. 46절을 다시 보십시오.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그 다음이지요. '너희의 마음에 두어라.' 율법책에 기록되어있는 것,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찬송가에 기록되어 있는 것,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기록된 악보만으로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없고, 악보에 기록된 음악이 음악가의 손에서 연주될 때 음악의 아름다움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심겨 열매를 맺어야 하고, 찬송가의 가사는 여러분의 마음에서 울려 나와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말씀을 실천하고 기도와 찬양이 흘러나올 때, 성경책 그리고 찬송가라는 신앙의 값진 유산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헛되지 않은 생명의 길
모세는 후대에 율법책과 하나님을 향한 노래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그저 기록된 채로 책에만 기록되어 있다면, 그것은 살아움직이지 못합니다. 반면, 율법책의 말씀과 모세의 노래가 그들의 마음에 심기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역사하고, 찬양은 인간의 영혼을 새롭게 하지요. 그래서 신약성경으로 넘어오면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후 3:6b)
사도 바울의 이 문장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율법은 인간을 정죄하고 결국 사망으로 인도하지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복음이 인간을 구원한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오해입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율법이라고 말하지 않고, 율법 조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의도한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는 낱낱의 글자들만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사람을 죽음으로 이끕니다. 이것이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 인간의 심령에 새겨져 성령께서 자라게 하시면 율법의 말씀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여 생명의 길을 걷게 합니다. 이것이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율법은 율법책에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66권에 풍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 기록된 말씀을 문자로만 남겨 놓는다면 그 결과는 죽음이요, 만일 그 기록된 말씀을 마음에 새겨 실천한다면 그 결과는 생명입니다. 모세도 오늘 본문에서 동일한 말씀을 합니다. 본문 47절입니다.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어떤 이들에게 성경말씀은 현실과 상관없는 헛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성경의 말씀을 그저 문자로, 낱낱의 글자로만 남겨놓는다면 그것은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의 심령에 새겨져 오늘도 우리가 그 말씀 안에서 빛을 따라 걸어간다면 그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의 길이 됩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과 기도와 찬양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성의 제자도>, (서울: 조이북스, 2019), 133.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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