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2021. 2. 1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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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관광지 중의 하나는 단연코 금문교(Golden Gate Bridge)입니다. 지금이야 코로나의 여파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문화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와 그곳의 랜드마크인 금문교가 세계의 유명 관광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지요. 샌프란시스코를 찾는 많은 여행객들이 금문교를 방문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금문교는 남쪽의 샌프란시스코 시내와 북쪽의 마린 카운티를 연결하는 다리인데, 대부분의 관광버스는 남쪽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 마린 카운티로 다리를 건너는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그 옆에 넓은 주자장과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는 장소에 정차합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몰려온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에서 금문교를 관람하곤 하지요. 그런데 남쪽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북쪽 마린 카운티로 이동하는 방향에 마련되어 있는 그곳은 금문교를 관람하기에 그다지 좋은 장소가 아닙니다. 주차장은 넓고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편의시설도 있지만 눈으로 금문교를 관람하기에도, 사진을 찍기에도 그다지 좋은 전망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금문교를 조금 더 멋있게 내려다보며 그 다리를 배경으로 좋은 사진을 남기고 싶으면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남쪽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 마린카운티로 올라가는 도로가 아니라, 그 반대의 방향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북쪽 마린 카운티에서 남쪽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달리다 보면, 오른쪽에 조그마한 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빠져나와 언덕을 올라가면, 주차장이 매우 협소한 장소가 나옵니다. 거기에는 편의시설도 없고요, 화장실도 없어요. 주차장도 매우 좁아서, 시간을 잘못 맞추면 20-30분을 주차할 때까지 대기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언덕을 단 한 번이라도 올라가 본 사람은 다시는 금문교를 관람하기 위해 남쪽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 마린 카운티로 이동하는 길에 설치되어 있는 넓은 주차장으로 가지 않습니다. 그 언덕에 올라야 태평양의 바다와 샌프란시스코 시내,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한 금문교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보는 방식이나 평소에 보았던 방식을 벗어나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지금까지 보았던 것이 새롭게 보이는 경우가 있는 법이지요.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경험했던 것이 꼭 그와 같았습니다. 


변화산 사건의 의미

하루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그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의 모습을 참 많이 보았지요.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의 일을 하고있을 때 자신을 찾아와 부르신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며 귀신을 쫓아내는 모습도 모았지요.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셨고,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서 예수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그분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과 많은 장소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모습을 수 없이 보아왔지만 바로 그날 높은 산에서 뵙게 된 예수님의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마가복음 9장 2절)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앞에서 ‘변형되셨다’고 말씀합니다. 분명 동일한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이 어떠했는지 그다음 구절이 설명하지요.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마가복음 9장 3절)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되자, 예수님에게는 광채가 났습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인 모습은 설명하거나 묘사하기가 참 힘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사람이 아무리 빨래를 해도 그 옷이 그 정도로 흴 수는 없었다고 표현합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는 모습이요, 인간의 능력으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모습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바로 그 순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예수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너무도 신비하고 너무도 영광스러며 너무도 아름다운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결코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예수님의 변화된 이 모습은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었을 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참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온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며, 마지막 날에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심판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고, 우리가 마땅히 경배하며 예배해야 할 분이십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광의 주님이시요, 예수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예수님께서 영광의 주님이시요 영광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인간의 눈에 영광의 주님이신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고 그 대신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만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세 명의 제자들에게 영광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참모습을 아주 잠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시대에도 이와 같은 사건이 우리에게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에게 영광의 주님이신 예수님, 영광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매일의 출퇴근 길에 바라보았던 금문교나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머물며 사진을 찍는 금문교의 모습이 아니라,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 비로소 보이는 금문교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 익숙하게 알고 있었던 예수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영광의 주님이시요, 영광의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의 참 모습이 여러분의 눈 앞에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영광스러운 분이시며,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월등히 아름다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변화산 사건의 목적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자 그들의 눈에 영광의 주님이시며 영광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참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본문을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광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이유와 목적입니다. 과연 성부 하나님께서 영광의 주님이시요 영광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참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이유와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변형되신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8장에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신앙을 고백하자(마가복음 8장 29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처음으로 가르치시는 장면이 나와요. 그로부터 정확히 6일 후, 그러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당할 수난과 죽음을 가르치신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시고 그곳에서 변형되셨습니다(cf. 마가복음 9장 2절). 그리고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목격하였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이 당할 고난을 다시 말씀하십니다(마가복음 9장 12절).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위치한 마가복음 9장이 채 마치기도 전에 예수님은 다시 한번 모든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십니다(마가복음 9장 31절).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말씀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죠.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살펴보는 변화산에서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가르치시며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하시는 바로 그 시점에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흐름은 교회의 절기에도 적절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산상변모주일이지요. 곧,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서 그 모습이 변모되었던 오늘 본문의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음 주부터 어떠한 절기가 시작되나요?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자, 그러면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영광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명의 제자들에게 영광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무엇을 의도하셨을까요? 비록 예수님이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계속 말씀하고 계시지만, 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실 것이지만, 비록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시게 되겠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영광의 주님이시요 영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실 것인데, 그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하는 제자들에게 낙심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십자가의 길을 완주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주고 싶었던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돌아오는 수요일부터 40일간 사순절을 맞이합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광의 주님이시요, 영광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우리의 삶에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고난이 있음을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겉모습은 그렇게 영광스럽지도,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우리의 인생에는 예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아름다움이 밝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인생의 사순절을 보내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며 헌신하였지만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은 예수님도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으니 너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말씀뿐이요, 여러분의 삶에 부활의 영광은 도대체 언제 찾아오는 것인지 기약이 없어 가슴 답답한 인생의 사순절을 보내고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우리 앞에 있는 부활의 영광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 이미 우리에게 보여주신 변화산의 영광을 기억하십시오. 곧 여러분의 삶에 잠시나마 보여주셨던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기억해보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여러분의 인생에 주님의 영광을 비추시며 주님의 아름다움을 펼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비록 지금 나의 삶이 인생의 사순절을 통과하고 있을지라도 변화산의 사건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전심으로 여러분을 응원하고 계시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금 힘을 내어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십시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 하나님은 높은 산에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빛나는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비록 예수님의 모습이 인간의 몸을 입고, 사람들에게 고난을 당하며 마침내 십자가를 지시더라도 주님이 누구인지 기억하며 십자가의 길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주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넘기 어려운 한가지 난관이 있습니다. 변화산 사건은 딱 한 번만 일어났고 제자들은 더 이상 영광의 주님이시며 영광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눈에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은 변화산에서의 사건을 의심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고, 그곳에서 무기력하게 채포되어 심문을 받아 십자가형을 당하셨잖아요. 과연 단 한 번의 변화산 사건, 그 짧은 시간의 경험이 제자들에게 이 모든 십자가의 길을 넉넉히 이겨낼 힘을 줄 수 있었을까요? 단 한 주의 산상변모주일이 이후 40일에 걸쳐 지속되는 사순절을 견디어낼 수 있는 힘을 충분히 불어넣어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본문 7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마가복음 9장 7절) 

성자 예수님은 영광의 주님이시요,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확증이라도 하듯, 성부 하나님께서 그름 속에서 직접 말씀해주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그러면서 이제부터 제자들이 따라야 하는 삶의 지침을 말씀해주십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영광의 주님이시며 영광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다면, 이제는 그분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입니다. 제자들은 더 이상 영광의 주님이시며 영광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목격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끊임 없이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비록 변화산의 사건은 단 한 번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들리니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충분히 제공되었던 것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인 금문교를 조금 더 멋지게 관람하기 위해서는 남쪽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의 마린카운티로 이동하는 도로 옆에 위치한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안 됩니다. 거기에는 각종 편의시설도 있고, 주차장도 넓지만 금문교를 적당한 높이에서 내려다볼 수가 없어요. 그보다는 북쪽 마린 카운티에서 남쪽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이동하다가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곳에는 편의시설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주차공간도 비좁지만, 그 언덕을 오를 때 비로소 금문교의 참된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주변에서 유학생활을 하였던 저와 저의 아내는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금문교가 내려다보이는 그 언덕을 참 많이 찾아 갔습니다. 타지에서의 유학생활이라는 것이 언제나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의 연속이었지만, 특별히 그날은 저희 부부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아픔이 찾아왔고 모든 계획과 기대와 소망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슬픔의 날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인생의 사순절을 보내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허탈한 마음으로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금문교가 내려다보이는 그 언덕을 올랐지요. 그리고 조그마한 벤치에 나란히 앉아 한동안 아무 말없이 태평양을 바라보고, 금문교를 바라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한동안 시간이 흘렀지만 저희 부부는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갑자기 저의 눈에 무지개가 보이는 거예요. 캘리포니아의 그 맑은 하늘에 무지개라니 믿어지지가 않아 선글라스를 벗었다 썼다, 눈을 비볐다 떴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무지개가 분명하게 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랜 시간의 침묵을 깨고 제가 아내에게 말했죠. “여보, 무지개다” 그렇게 저희 부부는 맑은 캘리포니아의 하늘에 분명히 떠 있던 무지개를 한동안 바라보다 그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금문교의 하늘에서 무지개를 보았지만, 저희의 생활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어요. 매일 불안하고 앞날을 알 수 없는 안정되지 않은 생활은 유학생활 내내 지속되었고, 우리의 계획과 기대와 소망이 허무하게 무너졌던 경험은 그 이후로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금문교의 하늘에서 바라보았던 무지개는 우리의 마음에 남아 큰 위로가 되었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외지에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는 사실, 캘리포니아의 그 맑은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를 펼쳐놓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펼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경험 후, 지금까지 약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저희는 그날에 보았던 아름다운 무지개를 다시 본적이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저희 부부에게 그와 같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모습을 눈으로 다시 볼 수 있게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날의 무지개를 다시 보여 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맑은 캘리포니아의 하늘에 떠 있던 무지개를 통해 우리 주님의 영광과 우리 주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았던 저희는 이제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날마다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지금도 우리 인생에 예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펼치시는 주님을 믿고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진지하게 돌이켜본면, 여러분의 삶에도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신 변화산의 사건이 있지 않으셨나요? 오늘 본문의 사건처럼 거창하지 않더라도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시는 현장을 바라보았던 경험이 없으셨나요? 우리의 삶에 고난과 수난의 날들이 가득한 것이 사실이지만 단 한 번이라도, 그것도 매우 짧은 순간이라도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변화산 사건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성도 여러분 만일 그렇다면, 인생의 사순절을 보내는 여러분의 삶에 지금도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아름다움을 펼치고 계시는 하나님을 확신하셔도 좋습니다. 우리 인생의 산상변모주일에 비하여 우리 인생의 사순절이 더 길고 모질어, 변화산의 사건이 계속 의심이 되며 무의식의 저 먼 곳으로 잊힐지라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을 들려주시며 조금 더 힘을 내라고 격려하며 응원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주님의 격려와 응원에 새 힘을 얻어 마침내 십자가의 길을 모두 통과한 뒤, 그 모든 과정을 되돌아볼 때 여러분의 삶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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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