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강해2021. 10. 24. 17:13
반응형

오늘 본문 시편 34편에는 표제어가 붙어 있지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여기에 등장하는 아비멜렉은 블레셋의 왕을 통칭하는 용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의 보다 정확한 이름은 블레셋의 성읍이었던 가드를 다스리는 아기스 왕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골리앗이라는 그 누구도 쓰러트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블레셋의 장군 앞에서 사기를 잃고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우연히 지켜보았던 다윗은 골리앗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그의 손에는 가장 익숙한 무기였던 물매를 가지고,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갔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큰 승리를 허락해주셨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을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다윗의 승리를 오히려 시기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스라엘의 왕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시기심에 이끌려 다윗을 죽이려 하였고, 다윗은 사울의 칼과 창을 피해 이스라엘을 떠나 블레셋 지역으로 도망을 갔어요. 그런데 다윗 자신이 전쟁에서 이겼던 골리앗은 블레셋의 장군이었잖아요. 당연히 블레셋의 가드를 다스리던 아기스 왕은 다윗을 보자마자 위험한 인물이라 생각하고 잡아 죽이려 하였지요. 그 급박한 상황에서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척을 합니다. 나 다윗이 당신에게 그렇게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지요. 다윗이 얼마나 그럴듯하게 미친 척을 하였는지, 그 장면을 본 모든 사람들이 다윗이 실제로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구사일생으로 다윗은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시편 34편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되어 있네요.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

오늘 본문 시편 34편을 천천히 읽어보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다윗의 경험을 다윗 자신이 스스로 묘사하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바로 본문 6절입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6절) 

본문 6절의 말씀은 다윗이 자신의 체험을 노래하는 구절이지만, 동시에 본문 6절은 다윗 개인의 인생을 묘사하는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본문 6절의 체험은 지금까지 시편 34편을 노래하였던 수많은 신앙인들의 체험이었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모두의 경험아기도 하지요. 

자, 다윗이 묘사하는 자신의 경험, 나아가 시편 34편을 노래하는 모든 성도들의 경험, 그 첫번째는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습을 한 단어로 표현하네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곤고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은 너무도 곤고했습니다. 우리는 크지도 않은 재산을 잃어버려도 우리의 삶이 곤고해집니다. 계획한 바를 이루지 못할 때도 우리의 삶은 곤고해집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자신의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사울의 칼과 창을 피해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 다니고 있어요. 심지어 이스라엘을 떠나 블레셋 땅으로 갔더니 거기에서도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뿐이네요. 그러니 다윗의 삶이 얼마나 곤고합니까? 

여러분, 다윗이 지금 큰 잘못을 저질러서 이렇게 곤고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다윗이 사울에게 무엇인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윗이 백성들에게 큰 해를 끼쳤기에 블레셋 나라에서 생명을 구걸하고 있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어서 지금 곤궁한 상황에 빠졌나요?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상대하여 믿음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지켜낸 구국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펼쳐진 현실은 사울의 칼날을 피해 블레셋 땅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도 미친 모습을 보이며 생명을 구걸해야 하는 곤고한 상황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본문 6절은 다윗의 경험을 묘사하지만 동시에 시편 34편을 노래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우리의 욕심을 따라 행동한 결과로 우리 성도들에게 큰 시련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그렇게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우리 성도들의 삶에는 큰 아픔과 시련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왜 나의 삶이 이토록 곤고한지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어요.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혹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뜻이 있는 것인지 우리 인간은 다 알 수가 없지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의 삶은 곤고한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던 다윗의 인생도 곤고하였고, 지금까지 시편 34편을 노래하였던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형통의 삶보다는 곤고한 삶을 살아왔고,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하는 우리에게도 곤고한 삶을 결코 피해 가지 않습니다. 

다윗이 묘사하는 자신의 경험, 나아가 시편 34편을 노래하는 모든 성도들의 경험, 그 두번째는 “여호와께서 들으시고”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미움을 받아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다윗은 곤고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그 기도를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셨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칼날을 피해 이스라엘을 떠나 블레셋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도 다윗의 생명이 위태로워졌습니다. 다윗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미친 척을 하는 그 순간에도 곤고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그 기도도 듣고 계셨습니다. 오늘 본문만이 아니라, 시편에는 다윗의 이름이 표제어로 등장하는 수많은 시편들이 있지요. 다윗은 곤고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때마다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사울의 모든 공격과 위협으로부터 다윗을 구해주신 것은 아닙니다. 아직은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칼날이 살아 움직입니다. 아직은 블레셋으로 도망을 가도 그곳에서 살해의 위협을 느낍니다. 여전히 다윗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미친 척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실은 곤고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들은 누구에게나 곤고한 삶이 찾아옵니다. 그때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으며 기도하지요. 물론 기도한다고 지금 당장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한다고 지금 당장 곤고한 삶이 형통의 삶으로 변화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곤고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여러분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지금도 듣고 계십니다. 

다윗이 묘사하는 자신의 경험, 나아가 시편 34편을 노래하는 모든 성도들의 경험, 그 세번째는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누구나 큰 아픔을 당하며 마음이 곤고하고 심령이 곤고할 때를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모두 들어주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들으셨다고 지금 당장 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셨기에 마침내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구해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다윗의 체험이었고, 시편 34편을 노래하는 모든 성도들의 신앙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성도들은 다윗을 따라 본문 6절의 말씀을 나의 믿음의 고백으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6절) 

오늘 본문 시편 34편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곤고한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34편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34편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곤고하여 부르짖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하는 성도님들 중에도 형통한 날을 살아가기보다 곤고한 날을 살아가고 계신 분들이 계시지요? 마음이 곤고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어보지만, 여전히 나의 삶은 형통으로 바뀌지 않아 괴로운 시간을 여전히 보내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심령이 곤고한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믿음을 결코 놓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곤고한 심령으로 부르짖는 여러분의 기도를 지금도 들어주시며, 마침내 여러분을 모든 환난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십니다. 


찬양으로 초대

다윗은 곤고한 자의 하나님, 부르짖는 자의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 시편 34편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1절)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제안하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2절) 

다윗은 곤고한 자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이러한 찬양을 들으며 ‘곤고한 자들이’ 기쁨을 얻게 되네요. 그리고 다윗은 3절에서 자신의 곁에 있는 곤고한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3절) 

여전히 곤고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곤고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들을 향해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들을 향해서 권면도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8절) 

이 구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의 선하심’ 그리고 ‘하나님에게 피하는 자가 받는 복’을 노래하고 있지요. 다윗이 노래하는 ‘여호와의 선하심’은 얼마나 감미롭고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풍성한 행복으로 감싸는지, 다윗은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권면합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고, 책이나 글을 통해서도 배울 수 없으며 단지 실제 경험을 통해서 맛보아 알 수 있는 것이 ‘여호와의 선하심’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러면 여러분, 지금 다윗이 노래하는 ‘여호와의 선하심’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가 지금은 큰 고통을 당하며 곤고한 삶을 살고 있지만 마침내 하나님께서 다윗을 일으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삼으신 그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다윗이 젊은 시절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더니,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재물과 큰 권세와 큰 명성을 얻게 해 주신 그 복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저는 본문 8절의 말씀을 아무리 묵상하고 묵상하여도 여기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선하심,’ ‘하나님에게 피하는 자가 받는 복’은 이후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출세나 그가 왕으로 누린 권세나 재력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표제어를 다시 보세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아직 왕이 되지 않았어요. 심지어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칼날은 여전히 기세 등등합니다. 사울을 피해 이스라엘을 벗어나니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척하여 지금 간신히 쫓겨나 생명만 붙어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다윗의 상황은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아서 모든 고통과 환란이 사라지고 그의 앞에 형통의 대로가 펼쳐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다윗의 상황은 여전히 곤고합니다. 여전히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노래하는 ‘여호와의 선하심’은 곤고한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난 뒤에 누리는 복 아닙니다. 오히려 곤고한 현실을 통과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입니다. 비록 곤고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곤고한 자의 하나님이 되시는 바로 그분을 만나는 은혜입니다. 비록 곤고한 상황에서 부르짖을 수밖에 없지만, 나의 부르짖음에 지금도 귀를 기울여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은혜입니다. 사방이 꽉 막혀 어디로 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순간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나를 붙잡아주셔서 또 한고비를 넘기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여전히 형통의 삶이 아니라 곤고한 날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8절) 

성도 여러분, 어느덧 올해 2021년도 어느덧 10개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난 10개월을 돌아보면, 여러분의 삶도 곤고하지 않으셨나요? 물론 나의 잘못과 실수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지만, 신앙인으로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였지만 우리의 삶에 곤고가 찾아오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 지난 10개월을 다시금 기도하며 되돌아보면 나의 곤고한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지 않으셨나요? 곤고한 삶을 살았기에 바로 그 자리에서 곤고한 자의 하나님게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위로를 누리지 않으셨나요? 우리의 삶은 여전히 형통의 삶보다는 곤고한 삶에 가깝지만 곤고한 가운데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며 사방이 막혀버린 듯한 상황에서도 피할 길을 내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지난 10개월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우리는 다윗과 함께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며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6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에게 곤고한 삶이 멈추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를 찾아와 도우시며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며 살아가십시오. 나의 삶이 형통의 삶으로 바뀌지 않아 여전히 부르짖고 있을지라도 지금도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며 마침내 모든 환란에서 우리를 구해주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십시오. 하나님은 곤고한 자의 하나님이 되시니 곤고한 가운데 부르짖는 여러분을 그 모든 환란으로부터 구해주실 것이요, 곤고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큰 영광을 받아 주실 것입니다. 





반응형
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