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2022. 4. 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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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으로부터 하나의 일화를 전해 들었다. 목사님이 병원에 임원한 환우를 심방하였다. 이분은 스스로의 종교를 개신교라고 밝힌 분이다. 그런데 이분은 최근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목사님이 그 이유를 물으니, 불교는 평화를 사랑하는 듯하여 좋다고 대답하였다. 목사님은 잠시 그분의 이야기에 긍정을 해주고, 이렇게 답변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도 평화를 참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는지, 평화라는 의미의 '샬롬'이라고 인사를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분이 대답했다. "아~ 그렇네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이미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은 기독교 안에 가득 담겨 있다는 점을 잊은 채,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눈을 돌리는 유럽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일화처럼 들렸다.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은 중세 시대가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이성을 옥죈 암흑의 시대요, 근대로 넘어오면서 인간 이성이 암흑의 시대를 뚫고 나온 승리의 시대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고대역사에 대한 서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는 인간성과 이성을 중시 여기는 문화였는데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신앙이 이성을 말살시킨 암흑시대가 중세 천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는 이러한 근대적 성공 스토리가 역사의 왜곡이요, 무신론자들의 망상이라고 주장한다. 고대 문명이 중세 시대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책임이 로마제국을 굴복시켰던 기독교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로마제국이 이방민족의 침입으로 무너지는 과정에서 고대의 문명이 손실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대 문명이 그나마 후대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기독교가 수도원을 중심으로 고대의 유산을 간직하고 보존했기 때문이다. "4세기 그리고 5세기 초에, 고전 문학의 문화가 마지막으로 꽃 피어난 것은 대체로 교회 교부들의 업적이었다. 즉 당시의 가장 위대한 수사학자들, 가장 정교한 형이상학자들, 가장 혁신적인 문장가들이 교부들에게서 나왔던 것이다."(p. 104) 중세 시대를 지나 근대적 과학이 태동하였던 모판 역시 중세 시대의 대학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피조세계를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여겼던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이 근대의 과학적 사고를 탄생시킨 장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하트는 근대가 계몽주의 시대였다는 신화가 고대 기독교의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였는지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리고 제 3부 "혁명: 그리스도교가 발명한 인간"에 이르면 기독교의 역사를 새롭게 펼쳐 보인다. 기독교는 세례 의식을 통해 기존의 사고나 삶의 방향을 처음부터 완전히 바꾸는 혁명을 일으켰다. 이러한 혁명의 결과로 고대의 영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환희'와 '해방'을 선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이교도들의 삶과 분명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으로 로마 제국을 다시금 다신교 사회로 바꾸려 노력했던 율리아누스 황제조차 자신의 눈으로 관찰한 사실을 이렇게 인정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의] 무신론을 확산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낯선 사람들에게도 베푼 그들의 자선, 죽은 자들의 무덤을 돌보는 일, 그리고 그들의 삶을 이어가는 감동적인 거룩함 등이었다." (p. 263) 이는 2세기 후반의 교부였던 테르툴리아누스가 목격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말하기를 "옛날 신들의 신전들에게 바친 돈은 순간적 쾌락을 위해 축제와 술 마시기에 낭비되었지만, 교회에 헌금한 돈은 가난한 사람들과 버려진 사람들에게 사용되어, 가장 가난한 사람들도 온전히 장사 지내주고, 늙은이들에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었다"(p. 279-80) 

기독교는 이처럼 기쁨과 해방을 선포하며 이는 성도들의 거룩과 자선의 삶으로 이어졌지만, 데이비드 하트는 그보다 더욱 중요하고 근본적인 혁명이 일어났음을 강조한다. 곧, 사람의 인격을 발견하고 모든 인간이 신적인 인격을 소유하였음을 알려주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독교의 성육신 교리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가르침과 관련이 있다. 세상의 질서가 하나의 피라미드로 조직되어 최상위의 존재인 신은 하위의 존재인 물질세계나 인간과 접촉할 수 없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에게, 기독교는 성육신의 교리와 기독론으로 인간이 신적 인격을 소유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합일을 이루는 존재라고 선포하였다. 기독교의 이러한 선언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인격을 발견하게 하였고, 나아가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혁명적으로 바꾸었다. "그리스도교의 보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승리는 인간의 양심적 행위들 속에 씨를 뿌리는데 성공한 도덕적 직관의 이상스럽고도 비실제적이며 전적으로 이 세상적이 아닌 애타심(unworldly tenderness)이다."(p. 366)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의 이 책은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데이비드 하트는 기독교가 초래한 위대한 혁명을 서술하면서 동시에 기독교가 사라진 근대 사회에 무엇이 남을 것인지를 끊임 없이 질문한다. 기독교라는 든든한 사상적 토대가 사라진 후, 과연 인격과 애타심이 여전히 모든 사람들의 중요한 가치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해야 할 또 다른 혁명의 필요성이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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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