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2022. 7. 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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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제럴드 싯처는 순간의 사고로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딸을 동시에 잃어버렸다. 비극적인 상실을 경험한 그는 자신의 경험 위에 신학적 성찰을 더하여 ‘상실’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가 다루는 상실의 종류는 다양하며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상실을 비교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 상실은 그것을 겪는 각자에게 고유한 고통을 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실은 인간의 삶을 파괴하며, 그 결과가 누적되고, 상실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하여 상실에 대한 제럴드 싯처의 서술은 지금도 다양한 형태의 상실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지혜를 선사한다. 

고통과 상실이 찾아올 때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회피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다른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상실로 인한 고통을 초월한 듯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상실을 경험하면 많은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는데 이 역시 회피의 한 방법이다. 그러나 상실과 그로 인한 고통은 회피한다고 사라질 수 없다. 상실 앞에서 회피라는 전략은 성공하지 못하며 마침내 상실로 인한 고통은 불쑥 마음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러니 제럴드 싯처는 전략을 수정하여 괴로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함께 아파하는 이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지혜라고 가르친다. 구약 전도서는 ‘헛되다’는 말을 반복하며 강조한다. 우리말로 ‘헛되다’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헤벨’은 헛되다는 의미와 함께 부조리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헤벨’을 외치는 전도서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되이 사라지는 상실의 경험, 나아가 왜 나에게 이러한 상실이 찾아왔는지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부조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요청한다. 제럴드 싯처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러한 전도서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기꺼운 마음으로 상실을 마주하는 것, 그리고 어둠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 그것은 우리가 디뎌야 하는 첫 번째 걸음이다.”(53쪽)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내 삶의 아픔과 고통을 인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 고통의 현실을 인정한다고 그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가? 이미 사별의 고통을 겪고 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고 죽음의 강을 넘어간 가족이 돌아올 수 있는가? 이미 실직하거나 큰 재산을 잃어버렸는데 그 현실을 인정한다고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는가? 나이가 들면서 건강을 잃어버렸는데, 그 현실을 인정한다고 다시 예전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가? 그러면 고통을 인정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전도서의 지혜는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가? 여기에 답하는 최선의 방법은 복음의 원리다. 고통과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철저한 자각을 뜻한다. 과거에 누렸던, 혹은 미래에 성취하리라 기대하였던 이상과 꿈이 헛된 신기루였음을 깨달으며 자신의 유한성을 통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도록 촉구한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은혜가 아니라, 주어진 한계적 상황에서 신기루를 쫓는 헛된 노력을 포기하고 이미 주어졌으며 여전히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을 감사하며 누리는 은혜다. 

그날의 비극은 나를 하나님께로 밀어냈다. (중략) 독신자 부모로서 나는 심한 좌절과 피로감을 경험했고 그 때문에 아이들에게 완벽한 아버지가 되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그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시도록 초대했다. 나는 이제 거의 날마다 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그 아이들을 나의 연약함으로부터 보호해주시길 기도한다. (중략) 나는 상실을 겪으면서 나의 삶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배웠고, 내가 가진 자원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사건을 기회로 나는 살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 특권이며, 부모로서 그리고 교수로서 섬기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기회인지도 깨달았다(122-123쪽). 

물론, 상실 이후의 삶이 상실 이전의 삶보다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비록 상실을 경험하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삶이 가능하며, 그 가능성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 안에 있다. 

지금 내 삶의 무대는 산에서 사막으로 옮긴 것처럼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황혼에 물든 사막도 아름다울 수 있듯이

그런 내 삶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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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