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22. 9. 2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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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와 야곱의 다툼은 결국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멀리 하란으로 도망하는 결과를 빚게 됩니다. 본문은 야곱이 집을 나서기 전,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다시 한번 축복하고 또 권면하는 장면입니다. 


결혼에 대한 권면

창세기를 계속해서 묵상하는 우리는 오늘 본문의 배경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되었지요. 이것이 계기가 되어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자신의 친정이 있는 하란으로 보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만 떼어놓고 읽어보면, 이러한 긴박한 사건의 흐름과는 달리 이삭이 마치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아들 야곱을 하란 땅으로 보내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 특별한 목적이란 야곱의 결혼이지요.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1-2절) 

이 구절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 나이 많은 종을 하란으로 보내었던 장면을 생각나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던 종을 하란으로 보내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창 24:3-4)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비전을 향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주하였고 그곳에 정착하였습니다. 가나안에서 대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 사람들과 화평하게 지는 것이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혼은 그 지역에 동화되는 종은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신붓감을 가나안 백성들 사이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믿을만한 종을 멀리 하란까지 보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동족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찾아오게 합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이삭도 동일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자신의 아들 야곱이 가나안 땅을 떠나야 했을 때, 이삭은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고 그곳에서 자신의 동족과 결혼할 것을 권면하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땅은 가나안이지만,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는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 민족의 정체성도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정체성은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천국 시민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도록 이끄는 유혹이 끝없이 찾아오지요. 바로 이때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바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멀리 하란으로 믿음직한 종을 보내어 그곳에서 며느릿감을 찾아오게 했던 것처럼, 마치 이삭이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며 그곳에 아내를 만나 결혼하라고 권면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언약의 계승자가 아니더라도

이삭은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어 가나안 여인이 아닌 자신의 동족과 결혼할 것을 권면합니다. 야곱의 이러한 행동은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내려온 하나님의 언약이 자신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 가운데 둘째 아들인 야곱에게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4절)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이 구절에 아브라함의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은 곧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언약인데, 그 언약이 이제 이삭을 통해 야곱에게로 계승되리라는 선포나 다름없습니다. 이처럼 야곱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의 계승자는 형 에서가 아니라 동생 야곱이라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여 하란으로 보내는 이 장면이 그의 형 에서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었다고 서술합니다.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8-9절) 

에서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가 민족의 정체성을 철저히 지킨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이어졌지만, 에서 역시 이삭의 아들로 자신의 민족적 순수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위대한 역사의 중심에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야곱의 결혼과 같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성도의 순서성과 정체성을 온전히 지켜온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미 가나안의 여인과 결혼한 에서와 같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성도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야곱과 같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역사의 중심 주인공이 되었든 혹은 에서와 같이 주변 인물이 되었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마치 야곱만 아니라 에서도 이삭의 아들로서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에서가 이삭의 아들로서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듯, 우리도 성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라 불러주셨으니,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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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