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22. 9. 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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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교의 주제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란 놀라운 특권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부르며 그 하나님께 기도로 나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요.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과 저주를 피할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형벌을 선고받아야 하는 죄인이라면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며 자신의 소원을 아뢸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구원받기 이전의 우리는 감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는 존재였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받았고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그저 어딘가에 있을 능력 많은 신적 존재를 향해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자신의 소원을 비는 행위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교류를 누리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정확히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에 정확히 우리의 모든 초점을 고정하는 성도들의 이러한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누리는 놀라운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사하는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라고 강조하면 은연중에 기도라는 특권은 내가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사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성경은 기도가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라고 가르치면도 동시에 기도는 모든 성도들의 사명이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맡겨주신 역할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그것을 지속하는 것이 나에게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셨기에 다시 한번 힘을 내어 그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바로 사명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기도는 특권이면서 동시에 사명입니다. 기도는 특권이면서 동시에 사명이기에 우리는 기도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기도를 잠시 쉬고 싶을 때에도 다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디모데전서는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뒤를 이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목양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디모데에게 사명을 감당하는 자세를 권면한 편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디모데가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집중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첫째로 권한다는 뜻은 권면의 순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1절) 

디모데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입니까? 디모데는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목양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가장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기도의 사명이지요. 바울이 강조하는 기도의 사명은 교회를 목양하는 디모데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일을 맞이하여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모습으로 봉사하는 손길이 필요하지요. 어떤 분들은 예배를 위한 시설을 관리하고 또 어떤 분들은 주방 봉사나 주차 관리로 수고해주시고 또 어떤 분들은 안내위원이나 봉헌위원으로 봉사해주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봉사하는 모든 분들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집중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일까요? 기도의 사명입니다. 우리 중에는 교회가 아니라 직정이나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직장에서 정직하고 바르게 일을 처리하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사명을 받으신 분들도 계시지요. 가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족과 자녀들을 돌보는 귀한 사명을 맡은 분들도 계십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장소나 내용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일까요? 역시 기도의 사명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 모두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사명의 은혜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의 장소가 다르고 사명의 종류가 다르죠. 그러나 그 모든 사명을 충성스럽게 담당하기 위해 최고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기도의 사명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기도의 사명, 우리 모두가 최우선순위에 두고 감당해야 하는 기도의 사명이 보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기도이어야 하는지를 두 가지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사명, 곧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기도의 사명은 첫째로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기도의 사명에 대해 말씀하는 본문 1절을 묵상하면, 모든 성도들에게 사명으로 주어진 기도는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간구의 기도를 넘어 보다 다채롭고 보다 폭넓은 기도라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다시 보시면, 기도의 종류가 네 가지나 등장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입니다. 간구하는 기도로 시작하여 감사하는 기도까지 기도의 다양한 형태와 내용이 이 짧은 구절에 등장하지요. 어떤 분들은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가 각각 무엇을 나타내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없으니 우리는 바울이 어떠한 의미로 이러한 용어를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대목을 묵상하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분명한 교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성도들의 기도가 단지 하나님께 나의 소원을 아뢰는 간구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화하는 다양한 내용과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첫 번째 기도의 유형은 간구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기도의 사명은 간구의 기도에 머무른 것이 아닙니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라는 다채로운 기도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말씀이지요. 

또 한 가지, 본문 1절에서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기도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는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 가족만을 위한 기도도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가 어떠한 것인지 구체적인 예가 등장합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 하라 (2a절) 

이 말씀은 세상의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구절로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을 위해 기도하지요. 그런데 바울이 기록한 이 글을 초대교회 성도들이 읽었을 때에는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쉽게 예상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당시 기독교가 로마 제국 안에서 큰 박해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의 정치인들 중에도 종교적 편향성을 보이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이지요. 그런데 당시 로마의 고위 관료들은 한결같이 기독교인들을 미워하여 기독교를 비방하고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디모데와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면했을 때, 그 권면은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삶을 가장 크게 괴롭히는 사람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성도들의 마음에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는 그 대상을 위해 기도하라는 권면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뱅은 이 구절을 해설하면서 성도들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앉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그들이 교회의 미움을 받기 때문이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바울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특별히 기독교를 박해하는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앉은 사람들을 위해 간구하고 기도하고 도고하고 감사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본문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3절)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위한 기도의 사명을 받았을까요?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입니다. 물론 나 자신을 위한 기도 포함됩니다. 우리 가족을 위한 기도가 포함됩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도 포함되고, 내가 자주 마주치는 이웃들을 위한 기도도 포함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사명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를 가장 괴롭히는 사람 그리하여 내 마음에 가장 미움이 생기는 그 사람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선한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사명, 곧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기도의 사명은 둘째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도”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기도의 사명을 말씀하면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요. 바울은 이제 그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그 다음을 주목하십시오) 원하시느니라 (4절)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알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구절에도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온갖 박해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성도들만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 중에는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곧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교회를 박해하고 기독교인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들도 구원을 받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사람들도 구원을 받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시다는 바울의 주장에 동의하시나요? 초대교회 성도들 중에는 모든 사람,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바울의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제시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6절) 

본문 6절에도 “모든 사람”이라는 문구가 등장하네요. “모든 사람”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만 더 반복해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본문 6절의 “모든 사람”은 기독교인들,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찾아와도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는 신실한 성도들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다는 이 말씀에서 “모든 사람”은 기독교인들을 미워하는 사람들, 기독교를 박해하는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앉은 사람들도 모두 포괄하는 표현이지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시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저 이방인들 심지어 교회를 비방하고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너무도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비록 고난을 당하고 역경에 빠진다 할지라도, 우리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죄인이었을 그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도 십자가 위에 내어주셔서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증명하기 대문이지요. 똑같습니다. 지금 누군가 나를 괴롭힙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기독교를 박해합니다. 그 사람의 언어와 행동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죄인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그가 아직 죄인으로 살아가는 그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 위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증명하고도 남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금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가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시다면 우리 성도들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사명, 그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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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에 빛나는 기도문 07 “장 칼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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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