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시리즈설교2020. 6. 16. 17:21
반응형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회자되는 격언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시장은 두려움과 욕심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움직인다” 투자라는 것은 매우 이성적인 행동으로 보입니다. 과연 누가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투자를 하면서, 수익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그러면서도 안정성이 더욱 확보되는 곳이 어디인지 합리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자신의 소중한 재물을 투자하지 않겠어요? 투자라는 것이 당연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하며, 마땅히 그러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금융시장이 밀집되어 있는 월스트리트에서 사람들의 투자 행태를 가만히 보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뭡니까? 첫째로 탐심, 그리고 둘째로 두려움에 따라서 사람들의 투자 행위가 결정되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누군가 주식에 투자를 합니다.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주식 투자를 통해서 수익을 올리겠다는 것이죠. 그리고 주식 투자를 통해 소득을 늘리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주식 가격이 낮을 때 주식을 사들여서, 주식 가격이 높아지면 그 주식을 파는 겁니다. 가격이 낮은 주식을 사서 높은 가격에 팔면 수익이 생깁니다. 누구나 다 아는 너무도 단순한 원리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사람들이 이 단순한 원리를 실천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한참 주가가 상승하던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주변에 주식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내 친구들 중에도 주식에 투자를 했더니 두배가 됐다, 세배가 됐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주가가 뛰면서 펀드에 투자한 사람들도 큰 수입을 얻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러면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마음에 어떠한 마음이 생길까요? “탐심”이 생깁니다. 나도 손쉽게 큰돈을 벌고 싶다는 거죠.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주식에 투자해요. 그런데 이미 그때는 늦었습니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주식으로 큰돈을 만졌다면, 이미 주식 시장은 가열될 만큼 가열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주식 가격이 낮을 때 사서, 가격이 오리면 팔아야 하는데, 탐심의 마음 때문에 높은 가격의 주식을 사는 거지요. 그렇게 높은 가격에 주식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주가가 어떻게 될까요? 떨어집니다. 주식 가격이 떨어지고, 자신이 구입한 주식의 평가액이 자꾸만 낮아지는 거지요. 주변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누구는 주식이 반토막이 났다, 누구는 빚을 내어서 투자했다가 가족들이 다 뿔뿔이 흩어졌다. 뭐 이런 이야기가 들립니다. 이런 소식을 계속 듣게 되면 어떤 마음이 찾아올까요?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이러다가 나도 크게 손해 나는 것이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내게 몰려오자 이제 어떤 결정을 내립니까? 주식을 빨리 팔자. 지금, 주가가 떨어질 만큼 떨어졌는데, 두려운 마음에 주식을 처분합니다. 결국 대부분의 개미 투자자들이 높은 가격에 주식을 샀다가 낮은 가격에 주식을 팝니다. 이상적인 판단이 아니에요. 마음에 생기는 탐욕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단지 시장에서만, 금융 투자에 있어서만 인간이 두려움과 욕심에 따라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전도서 5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언어생활에서 실언을 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네, 마음이 급하기 때문입니다. 조급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안한 상태라면 앞뒤를 생각해보고 상황에 적절한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고, 급한 마음이 들고, 조급한 마음이 생기니 우리의 언어에서 실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말과 행동에 있어서 실수하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두려움’입니다. 


아하스의 두려움 

성경을 보면 두려움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던 경우가 많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남 유다의 아하스 왕도 바로 그러한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7장 1-2절의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자, 이사야 7장의 시대적 배경이 등장합니다. 당시 남 유다를 다스리는 왕은 누구입니까? 아하스 왕입니다. 아람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누구입니까? 르신 왕입니다. 끝으로 북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은 누구입니까?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입니다. 그런데 아람 나라와 북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남 유다를 공격합니다. 그것도 남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공격한 것입니다. 
여러분, 두 개의 나라가 연합하여서 남 유다를 공격합니다. 그것도 남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공격합니다. 그러면 국가의 위기인가요? 위기가 아닌가요? 위기죠. 위기가 맞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위기가 아닙니다. 이사야 7장 1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그 뒤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했지만, 두 나라의 군사력을 합쳐도 그들에게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함락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겉으로 보기에는 두 나라가 연합하여 예루살렘 수도를 공격하는 국가의 최대 위기 상태이지만, 실제로는 위기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안전합니다. 

실제로 이 전투는 세계사에서 “북이스라엘-아람 전쟁”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전쟁을 계기로 아람과 이스라엘은 국력의 바닥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은 이 전쟁으로 인하여 완전히 기울기 시작하느 국운을 다시 세우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앗수르 제국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고 맙니다. 그러니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할 나라가 무슨 군사력이 대단하고, 무슨 국력이 대단해서 다른 나라를 점령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하죠.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렇게 별로 큰 위기의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시 남 유다를 다스리던 아하스 왕의 마음에 무엇이 찾아왔습니까?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이사야 7장 2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연합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아하스 왕의 마음이 어떻다고요?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흔들립니다.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잖아요, 갈대가 흔들리잖아요, 꼭 그와 같이 아하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두려움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상력이 두려움을 만듭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내 자신의 잘못된 상상력으로 말미암아 불필요한 두려움이 생기고, 그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조급해지고, 마음이 조급해지면 나의 언어와 행동에 실수가 따라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을 두렵게 하는 실체는 무엇입니까? 

하루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스니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눅 12:4-5) 

여러분,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삼가며 조용하라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오늘 본문 3절과 4절의 말씀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제 말씀하십니다. 4절을 다시 보십시오. 아하스 왕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호들갑 떨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언어와 행동 속에 “호들갑”은 다 떠나가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부지깽이가 무엇인지 아시잖아요. 아궁이에서 불을 땔 때 장작을 다 집어넣고는 불이 활활 피어오르도록 이렇게 저렇게 불을 헤치는 데 사용하는 조그마한 나뭇가지가 부지깽이입니다. 여러분, 아궁이에 장작을 다 넣었어요. 이제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해요. 그러면 내 손에 있는 부지깽이도 타오르는 불길에 던져 넣습니다. 그 부지깽이가 다 타버리는 것은 정말이지 시간문제예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남유다를 공격해오는 북이스라엘의 군대와 아람의 군대가 꼭 “연기 나는 부지깽이”와 같다는 겁니다. 그러니 4절 마지막에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호들갑 떨지 마시기 바랍니다. TV를 켜서 뉴스를 보면 우리나라에 뭐 그렇게 문제도 많고 사건도 많은지, 우리나라가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아요. 그러나 여러분, 호들갑 떨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정에 돌아가면 자녀들을 보면서 고민이 산더미처럼 몰려오시나요?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놈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호들갑 떨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는 여러분의 자녀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입니다. 
해가 바뀌고 나이가 한살씩 더해지면서 건강에 대한 걱정이 몰려오세요? 병원에 갈 때마다 새로운 병명이 하나씩 들려서 병원에 가는 것이 싫고 두렵고 내 몸에 큰 질병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십니까?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호들갑 떨지 마세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아하스의 실책 

하나님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아하스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호들갑 떨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하스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연합국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들었지만, 아하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에, 조급한 마음에 자충수를 두기 시작하죠. 아하스 왕은 예루살렘을 공격해오는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저 북동쪽에 있는 앗시리아 제국 – 성경의 이름으로는 앗수르제국 - 에 군사적 원조를 요청합니다.  열왕기하를 보면 아하스 왕이 앗수르제국의 군대를 끌어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온갖 보물을 다 가져다 바쳤고, 심지어는 앗수르제국의 우상까지도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앗수르 제국의 군대를 요청하는 거지요. 그러자 당시 신흥 제국이었던 앗수르가 군대를 일으킵니다. 앗수르의 군대가 몰려오자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연합군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급기야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하지요. 그런데 앗수르 제국의 군대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아하스 왕을 이어 남 유다를 다스린 왕이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입니다. 자, 아하스 왕이 죽고 히스기야가 남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미 아람과 북 이스라엘을 점령한 앗수르 제국은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어디를 공격할까요? 남 유다, 자신들에게 군사력을 요청하였던 남유다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시대에 그 유명한 랍사게 사건이 일어나게 되죠. 앗수르 제국의 장군 랍사게가 18만 5천 명의 대군을 몰고 와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하며 남 유다의 군대가 투항할 것을 요청했던 사건이죠. 물론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로 그 위기는 모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큰 국가의 위기는 어디로부터 시작된 겁니까? 바로, 아하스가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아람을 두려워하고, 북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고, 앗수르를 두려워하는 바로 이 장면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움을 물리치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두려움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두려운 마음, 조급한 마음, 호들갑 떠는 마음으로 실언을 하게 되고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의 마음에 두려움이 몰려온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더 귀를 기울이십시오.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주님의 이 음성을 듣고 내게 몰려오는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설 수 없다

하나님께서 두려움에 떠는 아하스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낙심하지 말라고, 호들갑 떨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인 9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9절 뒷부분을 다시 보십시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두려움의 문제, 그리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굳게 서는 문제는 결국 무엇에 달려 있습니까?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연합 공격이 예루살렘을 무너트리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하스 왕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가 눈에 보이는 현실은 국가의 위기이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든든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위해 이사야 선지자도 보내고, 하나님의 말씀도 주십니다. 

여러분, 아하스는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절대 권력자입니다. 자신의 절대 권력이 아하스 왕을 든든하게 세워주지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사회적인 지위가 우리의 인생을 든든하게 붙잡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하스는 앗수르 황제 디글랏빌레셀의 눈길을 끌 수 있는 금은보석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엄청난 재물이죠. 그러나 그러한 재물이 있다고 해서 그의 삶을 든든하게 받쳐주었던 것도 아니죠. 

우리는 때로 오해합니다. 착각을 해요. 내가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내가 조금 더 많은 재산을 모으고, 내가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간다면 나의 삶에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나의 삶이 든든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이 든든해 질 수 있는 비결을 오늘 말씀을 통해 알려주시잖아요.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도 지켜주신다는 믿음, 우리의 모든 생사화복이 오직 인생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 위에 든든히 서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음이란(1) / 로마서 1장 15-17절 "복음, 하나님의 능력"

믿음이란(2) / 누가복음 10장 38-42절 "율법이 아닌 은혜"

믿음이란(3) / 이사야 7장 1-9절 "믿음이 아니고서는"

믿음이란(4) / 히브리서 11장 1-3절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능력"

믿음이란(5) / 마가복음 8장 27-35절 "십자가의 길"

믿음이란(6) / 다니엘 9장 1-2절 "믿음의 열매"

 

반응형
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