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성경공부2021. 10. 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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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전도서 연구 01”에서 이미 다루었다(전도서 연구 01 “전도서의 저자와 구조”). 그러면 전도서의 저술 연대는 언제일까? 성경 내에 구체적인 정보가 희박하기에 저술 연대 역시 추정에 의지해야 한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전도서 안에는 최소한 두 명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는 오랜 시간의 편집 과정을 거쳐왔다는 의미인데, 학자들 사이에 이견은 존재하지만 최종 편집의 시점은 대체적으로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론하고 있다. 


그리스 사상: 무한한 가능성과 성공주의

전도서의 최종 편집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그때가 그리스 문화의 전성기였기 때문이다. 주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후 그리스는 세계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군사적 우위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뛰어났던 문명을 이룩하였던 그리스의 제국주의 정책은 유대인들도 결코 피할 수 없었다. 사회 역사학자 로스토브체프(M. Rostovtzeff)는 그 시대를 이렇게 요약하였다. “그리스 시대의 지배적인 정신은 인간의 무한한 능력과 그들의 이성에 대한 신뢰로 특징된다.” 사람들은 낙관주의 세계관에 심취하였고, 도전과 성공을 향해 진취적 기상이 강조되었다. 이처럼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신뢰하였던 그리스 문화는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견지하였던 여호와 신앙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시대사조였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믿던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었고,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참된 행복의 길이 열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유대인들도 그리스의 문화에 편승하였음이 분명하다. 

전도서의 저작 시대가 기원전 3세기라면, 전도서의 저자인 코헬렛(전도자)은 그리스 문화가 유대인들의 전통적 신앙을 뒤덮는 역사적 현장의 산 증인이었을 것이다. 지혜의 말씀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가르쳤던 코헬렛은(cf 전 12:9-10) 인간의 가능성과 그로 말미암은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번영 속에서도 인간의 삶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관찰할 수 있었다. 모두가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사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져 버린 사회적 억압구조, 그리스인과 야만인의 차별, 노동 착취, 개인 수공업자의 파탄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는 그리스의 지성인들이 설파하였던 낙관주의의 어두운 뒷모습이었다. 전도자가 모든 것이 헛되다고 강조하며 선포하였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시대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낙관주의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부조리를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세상

전도서의 가르침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구절은 단연코 1장 2절이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2) 

여기에서 ‘헛되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단어는 ‘헤벨’인데, 숨소기를 나타내는 의성어에서 시작하여 숨, 안개, 수증기 등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아가 추상적 개념을 표현할 때는 헛됨, 무상의 의미가 된다. 그런데 ‘헤벨’의 추상적 개념에 대해 영어권 학자들 가운데 전통적인 번역인 ‘헛됨’(vanity)보다 ‘부조리’(absurd)로 번역하는 이들이 있다. 폭스라는 학자는 ‘헤벨’의 의미에 대해 “원래 함께 잘 어우러져 화음을 내야 하는 것들이 서로 어울리지 못할 때, 혹은 둘 다 옳은 원리들이 융합되지 못하여 비롯되는 갈등/모순”이라고 설명한다. 전도서를 계속 연구하다보면, 1장 2절에 다섯 번이나 강조된 ‘헤벨’의 추상적 의미를 ‘헛됨’과 ‘부조리’ 두 가지로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도서는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면서 동시에 세상의 부조리도 지적하기 때문이다.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전 3:16)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전 4:1)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재판석에 악이 존재한다. 해 아래에 학대가 가득하다. 여기서 학대란 학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요, 학대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잘못을 행하지 않았음에도 억압과 징벌을 받는 상황을 뜻한다. 곳곳에 학대가 자행되고 있지만, 참된 위로자는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코헬렛이 관찰한 해 아래의 세상이었다. 

부조리가 가득한 세상에서는 정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내 허무한 날(부조리한 세상)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전 7:15)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부조리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부조리하도다) (전 8:14) 

전도자가 부조리한 세상을 폭로하는 여러 구절 가운데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내가 또 해 아래에서 지혜를 보고 내가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곧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어떤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전 9:13-16) 

큰 군대가 성읍을 에워싸고 공격할 때 한 사람의 지혜는 그 성읍을 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다윗의 군대장관이었던 요압이 반역자 세바를 잡기 위해 아벨 성을 쳤을 때 한 지혜로운 여인으로 말미암아 말머리를 돌렸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cf. 삼하 20:14-22). 지혜로운 여인에 대한 이 이야기는 지혜가 얼마나 큰 위력을 나타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전도자는 성읍을 구한 지혜로운 사람이 가난한 삶을 살았으며, 또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혔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혜가 힘보다 낫다”는 전통적인 격언을 인정하면서도 가난한 사람의 지혜는 멸시를 받는 현실을 강조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 이처럼 부조리로 가득하다면, 신앙인은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코헬렛은 먼저 세상의 부조리를 인정하라고 강조한다. 그래야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의 참된 지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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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