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2017. 1. 22. 06:30
반응형
James Choung. True Story: A Christianity Worth Believing in
 
한국어로는 <냅킨 전도>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는 저자가 미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면서 발생한 문제제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이다. 제임스 정(James Choung)의 문제 제기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과연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식인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죽음 이후에 천국에 들어가는 복음은 신자와 불신자를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이 될 수 있는가? 이 책의 안나라는 등장인물로 대표되는 현대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복음 제시를 참된 의미의 ‘복된 소식’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죽음 이후 천국에 들어간다는 복음은 지나치게 개인적(personal)이며 동시에 근시안적(myopic)이다. 
 
제임스 정은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성경이 이야기하는 복음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복음제시의 방향은 크게 3가지다. (1) 결정(decision)에서 변화(transformation)로, (2) 개인(individual)에서 공동체(community)로, (3) 죽음이후(afterlife)로부터 선교적 삶(mission life)으로. 그는 이와 같은 방향성 안에서 (1) 선을 위한 창조(design for good), (2) 타락한 세상(damaged by evil), (3) 선을 위한 회복 (restored for better), 그리고 (4) 치유를 위한 파송(sent together to heal)이라는 네 단계의 복음제시를 제안한다. 그리고 각 단계는 개인적(personal) 측면, 관계적(relational) 측면, 조직적(systemic) 측면에서 내용을 설명하도록 구성하였다. 한국어 번역은 이와 같은 복음제시가 노트에 간단한 그림을 그리며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냅킨 전도”라고 제목을 붙인 듯 하지만, 그것이 제임스 정이 제안하는 복음제시의 핵심은 아니다. 
 
제임스 정의 복음제시는 전통적인 복음전도방법(사영리, 다리예화, 전도폭발 등)의 개인적이고 사후 세계에 초점을 맞춘 전도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보다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전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 이 책의 표현대로 "성경에 대한 전체적 조망”(the entire scope of the Bible, p. 168), 곧 “세상을 바라보는 기독교 세계관”(the basics of a Christian worldview, p. 200)을 최대한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복음제시의 형태로 구성한 결과물이다. 그런 점에서 제임스 정이 제시하는 성경의 '진정한 이야기’(true story)를 전도 현장에서 활용한다면 복음 전도자 역시 복음에 대한 보다 넓은 관점을 소유하게 될 것이며, 전도 대상자는 복음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특별히, 목회자로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등장인물들이 있다. 이 책은 갈렙(Caleb)이라는 한 대학생이 복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넓어지는 과정, 나아가 그러한 생각의 변화를 자신의 친구 안나(Anna)에게 전하는 과정을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한다. 그런데 갈렙에게는 두 명의 중요한 멘토[스승]가 있다. 곧, 갈렙이 섬기는 예배팀의 책임자인 제프(Jeff Corbin) 목사와 갈렙이 다니는 학교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는 살렌드라(Shalandra) 교수다. 제프는 존경받는 목회자이지만 여전히 개인적이고 타세중심적인 복음전도에 집중하는 전형으로 등장한다. 반면, 살렌드라는 갈렙에게 보다 넓은 복음의 의미를 전해준 사람으로 등장한다. 갈렙으로 대표되는 기독 청년에게 제프와 같은 목회자가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느냐, 아니면 살렌드라와 같은 멘토가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느냐에 따라 그의 복음 이해는 달라지는 것이다. 곧, 목회자의 복음 이해는 그가 양성하는 전도자의 복음제시 내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제임스 정의 복음제시는 전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지역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제임스 정은 전통적인 복음제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죽음이후(afterlife)에 대한 강조보다는 선교적 삶(mission life)에 대한 강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복음을 죽음 이후의 문제로만 국한시키는 경향을 복음에 대한 왜곡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왜곡으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무엇을 줄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받을 것인가에 크게 집중하게 되었다”(p. 197)고 진단한다. 만일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여, 전도 대상자에게 사후 세계에 얻게 되는 천국보다는 이 땅에서의 선교적 사명에 집중하여 복음을 전한다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과제가 있다. 곧, 전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이 들어오게될 교회 공동체를 받는 것에 익숙한 수동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선교적 사명에 민감한 능동적인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교회의 모습은 변하지 않은 채 복음 제시에만 사명, 선교, 제자도 등을 강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전통적인 복음제시가 그토록 선교적 삶보다는 죽음 이후의 천국에 집중하는 이유 가운데 받는 것에만 익숙한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응형
Posted by Rev. Hanjin Lee
서평2017. 1. 10. 13:38
반응형
미국교회사를 전공한 한 역사신학자가 어떻게 세계기독교(global christianity) 연구에 집중하게 되었는 지에 대한 자서전적 서술이다. 이는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기독교와 신학의 중심추가 전통적으로 비기독교권이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는 명백학 현상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기독교의 역동성을 서구기독교를 넘어 세계기독교의 관점에서 발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 특별히 한국의 목회자와 신학자 - 에게 마크 놀(Mark A. Noll)의 학문적 여정은 다음의 몇 가지 교훈을 준다. 
 
나는 왜 세계기독교인이 되었는가
국내도서
저자 : 마크 A. 놀(Mark A. Noll) / 배덕만역
출판 : 복있는사람 2016.09.08
상세보기

 

세계기독교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지역성에 집중해야 한다. 세계기독교에 대한 일반적 서술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수많은 다양성을 놓치기 쉽다. 마크 놀은 역사학자답게 세계기독교에 대한 탐구를 구체적인 사료에 근거하여 순차적으로   넓혀나간다. 때로는 통계를 인용하지만 동시에 숫자의 한계도 지적한다. 각 지역의 기독교를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여러 지역의 기독교가 어떠한 인과관계를 맺고 있으며 특정 지역의 기독교가 어떠한 점에서 일반적이며 어떠한 점에서 특수한지를 파악해나가는 방식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서 세계기독교가 눈 앞에 들어올 수 있다. 
 
세계기독교 연구는 자신이 속한 기독교와 그 주변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미국 교회사를 전공한 마크 놀에게 북미의 기독교를 캐나다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도와준 인물은 조지 롤릭이었다. 동일한 북미 기독교로 여길 수 있는 캐나다와 미국이지만, 조지 롤릭의 영향으로 마크 놀은 캐나다 기독교와 미국 기독교의 공동점과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마크 놀은 시각을 남쪽으로 돌려 남미를 관찰할 수 있었다. 한국 기독교는 많은 점에서 서구 기독교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그 결과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바라보게 되는 곳은 서구 기독교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시아에 속해 있으며, 한국 기독교를 세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은 먼저 아시아적 관점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을 배제한 아시아 기독교에 대한 무지가 한국의 교회와 신학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데 일차적인 장애물인지도 모른다. 
 
세계기독교를 향한 선봉에는 선교학이 위치한다. 마크 놀의 역사 서술이 세계기독교를 지향하는 학문적 여정에도 선교학이라는 파트너가 놓여있었다. 마크 놀은 담대하게 선언한다. “기독교 신자들이 사는 부족에 대해서 선교학자는 전근대, 근대, 탈근대적 측면과 동시에 작업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마크 놀, 194) 한국 기독교는 세계 2위의 선교사 숫자를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세계기독교를 서술할 수 있는 선교사들로부터 신학적 지혜를 들으려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선교지를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수혜자로 보는 관점을 넘어 그들의 현장으로부터 세계기독교에 대한 통찰을 얻으려는 자세를 보유한다면 한국기독교는 보다 넓은 세계기독교적 관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m.blog.naver.com/practicaltheologian/223222250639

 

도서 리뷰 (Book Review) 목록

제가 작성한 도서 리뷰가 <목회 아카이브>와 네이버 블로그에 산제되어 있습니다. 주로 단행본 중심...

blog.naver.com

 

 

 

 

 

 

 

반응형
Posted by Rev. Hanjin Lee
서평2016. 12. 16. 15:49
반응형

복음주의 기독교의 신학적 자기 반성은 축소주의’(reductionism)을 피해갈 수 없다. 복음주의 기독교는 사회 구원을 비판하며 구원의 총체성을 개인 구원으로 축소시켰다. 교회의 사회 참여에 적극적이지 못한 채 교회는 영적인 영역에서 봉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원론적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복음주의 기독교는 세상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교회의 하나님, 혹은 믿는 자들만의 하나님으로 제한하였다. 물론, 복음주의 기독교가 구원론, 교회론, 창조론에 있어서 통전적인 이해를 시도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복음주의 기독교 안에 신학적 축소주의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음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
국내도서
저자 : 스티븐 커트
출판 : 에클레시아북스 2013.04.18
상세보기

 

영국 뉴 몰든 크라이스트처치(Christ Church in New Malden)의 교구 목사인 스티븐 커트(Stephen Kuhrt)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Tom Wright for Everyone)에서 복음주의 전통에서 자라난 자신이 품을 수 밖에 없었던 신학적 질문을 몇 가지로 요약해서 소개한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소망이라는 것이 단지 죽음 이후 천국에 가는 것만을 의미하는가, 교회의 사회 참여는 교회의 복음전파와 동등한 중요성이 부여될 수 없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개인적인 죄에만 의미가 있고 구조적인 죄와는 무관한가 등이다( 2). 스티븐 커트가 제시하는 의문들을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복음주의 교회의 축소주의 경향에 대한 비판이다. 만일 복음주의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축소주의적 경향을 극복하고자 하는 목회자라면 스티븐 커트와 유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복음주의 기독교에 존재하는 축소주의라는 신학적 결점을 인정한다면, 복음주의 목회자들은 축소주의를 극복하고 통전적 목회(holistic ministry)를 지향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통전적 목회를 위한 신학적 근거를 요구한다. 어떤이들은 존 스트토(John Stott)를 중심으로 한 로잔언약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이들은 에큐메니컬 정신(Ecumenicalism)에서 그 신학적 원동력을 구할 수도 있다. 스티븐 커트는 통전적 목회를 위한 신학적 근거를 톰 라이트(Tom Wright)의 성경신학에서 찾는다. 톰 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창조 세계를 회복하고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언약 관점에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창조 세계의 회복이라는 거대한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신약 성경의 중심 주제들 회개, 속죄, 부활, 천국, 종말 등 을 재해석한다.( 3장 참고) 스티븐 커트는 이러한 톰 라이트의 신약 신학을 근거로 다양한 신학적 주제에 대한 통전적 접근을 시도하고, 그것을 자신의 목회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스티븐 커트의 노력을 소개하는 책이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이다.

 

복음주의 전통에서 목회를 하면서 축소주의 경향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통전적 목회를 실천하려는 혹은 이미 실천하고 있는 스티븐 커트의 노력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게다가, 자신이 추구하는 목회의 강력한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톰 라이트의 신학을 적용하는 것도 좋은 시도로 볼 수 있다. 영국이든, 한국이든 복음주의 전통에 서 있는 목회자들이 자신의 목회에 있어서 보다 통전적인 신학적 확대를 추구하려면 스티븐 커트가 그러하듯 분명하고 강력한 신학적 근거를 찾아 그것을 자신의 목회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톰 라이트의 신학을 자신의 목회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숙고가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에서는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바울의 새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에 대한 저자의 분명한 입장이다. 크리스터 스텐달(Krister Stendahl)이나 샌더스(E. P. Sanders) 등의 학자들에 의해 제시된 바울의 새 관점은 바울 신학을 1세기 유대교 전통에서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바울의 새 관점에 의하면, 1세기 유대교에는 행위를 통한 구원을 추구하는 율법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가고 이에 대한 올바른 반응으로 율법에 대한 준수를 추구하는 유대교 전통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이러한 유대교 전통 위에 서 있다는 주장이다. 바울의 새 관점이 논쟁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 것은 바울이 바리새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을 강조하는 유대교 전통에 서 있었다면,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하듯 유대교는 행위의 종교이고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라는 도식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유대교와 기독교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두 종교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도 사라진다. 그런데 톰 라이트의 신학은 넓게 보아 바울의 새 관점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연장선 위에 있다. 이것이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와 복음주의 학자들이 톰 라이트를 비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바울의 새 관점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톰 라이트의 신학을 목회 현장에 적용할 수 없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톰 라이트의 신학을 목회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새 관점에 대한 최소한 톰 라이트가 동의하는 바울의 새 관점에 대한 내용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스티븐 커트는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에서 바울의 새 관점에 대한 논의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칭의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톰 라이트가 바울의 새 관점에 동의한다는 사실을 그것도 괄호 안에 언급한 정도이다(101). 물론, 바울의 새 관점이 이 책의 중심 주제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스티븐 커트 자신이 톰 라이트의 신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톰 라이트의 신학이 자신의 목회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그 전 과정을 보여주는 책에서 바울의 새 관점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밝히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항목이라 하겠다.

 

https://m.blog.naver.com/practicaltheologian/223222250639

 

도서 리뷰 (Book Review) 목록

제가 작성한 도서 리뷰가 <목회 아카이브>와 네이버 블로그에 산제되어 있습니다. 주로 단행본 중심...

blog.naver.com

 

반응형
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