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장로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트집 잡았다(마태복음 21장 23절). 이에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대답하시는데 본문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본문이 소개하는 ‘혼인잔치의 비유’는 일차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지도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첫 번째 초대
천국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잔치와 같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태복음 22장 2절)
어떤 이들은 이 잔치가 ‘혼인 잔치’라는 데 주목한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그리고 성도를 신부로 비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잔치를 신랑 되신 예수님과 신부 된 교회의 혼인으로 해석하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있다. 이 비유에서 성도들은 분명히 신부가 아니라 초대받은 손님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천국의 잔치는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셨으니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마태복음 22장 4b절). 단 한 가지, 아직 손님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임금은 종들을 보내어 초청한 사람들을 불러오게 한다. 여기에 ‘그 청한 사람들’(마태복음 22장 3절)은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은 잔치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 임금은 “다시” 종들을 보내었는데(마태복음 22장 4a절) 여기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백성들에게 모세를 보내어 율법의 말씀을 전하셨고, 이후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으며, 세례 요한과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주셨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마태복음 22장 5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천국 잔치에 초대하셨지만, “그들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초대에 철저히 무관심했던 그들은 자신의 밭과 사업에 정신이 팔려 하나님의 초대에 응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펼쳐진다.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마태복음 22장 6절)
결혼 잔치에 초대하였다고 그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일 이유가 있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의 행동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묘사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박해하였고, 마침내 그들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죽인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비유에는 자신이 며칠 뒤에 당하게 될 십자가의 죽음이 암시되어 있다.
임금이 보낸 종들을 죽였으니 이들에 대한 임금의 반응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마태복음 22장 7절)
예수님의 말씀은 역사적 현실이 되었는데, AD 70년 하나님은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의 군대를 예루살렘에 보내셨고 예루살렘은 초토화되었다. 그러니 이 비유는 예수님을 끝까지 거역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다.
두번째 초대
임금은 새로운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초대한다. 이번에는 종들에게 길거리로 나가 누구든지 만나는 사람을 잔치에 초대하라고 명령한다. 첫 번째 초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묘사한다면, 두 번째 초대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부르시는 장면이다. 그런데 두 번째 초대에서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심지어 임금이 보낸 종들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온다(마태복음 22장 10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마태복음 22장 9-10절)
첫번째 초대에서는 아브라함의 자손, 곧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의 초대를 받을 수 있었지만 두 번째 초대에서는 민족과 국경의 경계를 뛰어넘어 그가 악인이든 의인이든 모두 초대를 받는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과 달리 교회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심지어 의인이든 악인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모임이다.
하나님의 초대를 받아 천국 잔치에 참여한 성도들 중에도 그 자리에서 쫓겨난 사람이 있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마태복음 22장 11-13절)
여기에서 임금이 제시한 기준, 곧 “예복”은 무엇을 의미할까? 첫번째 초대를 받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예복”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믿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임금의 초대를 받아 이미 혼인잔치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에 대한 믿음을 넘어 복음에 따르는 합당한 삶을 의미할 수도 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믿을 뿐만 아니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여러 차례 강조하셨기에 이러한 해석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참고. 마태복음 7장 21절)
두 가지 교훈
본문의 비유는 예수님을 끝까지 거부했던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지도자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새로운 신앙 공동체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이 비유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통해 최소한 두 가지의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첫번째 초대와 달리 두 번째 초대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심지어 악인까지도 임금의 초대를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초대가 모든 경계와 범위를 초월하였기에 나 같은 죄인도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된 것이 아닌가? 이 비유가 암시하고 있듯(마태복음 22장 6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둘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끝까지 왕의 초대를 거부했던 사람들에게 임금은 군대를 보내어 심판하신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에서도 하나님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신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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