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성경공부2021. 6. 1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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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소와 맞닿아 있는 성소에는 진설병 상과 등잔대가 서로 마주 보게 놓여있었다. 그 외에도 성소에는 또 하나의 성물을 놓아야 하는데, 그것이 분향단이다. 

그 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 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출애굽기 30장 6절) 

하나님은 지성소에 위치한 속죄소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하신다(cf. 출애굽기 25장 21-22절). 그곳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재하여 그들을 만나는 장소다. 오늘 본문에서 분향단의 위치는 속죄소를 기준으로 말씀하신다.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휘장 밖에 두라는 명령이다. 아론은 그곳에서 향을 피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간적 연약함을 가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룩하신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대표자 아론 사이에는 휘장과 향이 놓여 있지만, 이러한 조건이라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친히 만나신다는 사실은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매일 그리고 대대로

분향단에서 피우는 향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자신을 씻어 정결하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마치 제사장들이 성막의 외전에서 내전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물두멍에서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성소에 들어오는 길목에 물두멍을 두어 하나님께 나아오는 제사장들이 스스로를 씻게 하셨다. 나아가 지성소에 임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분향단에 향을 피워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정결의 과정은 수시로 반복되어야 하며, 영원토록 계속되어야 한다.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 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 (출애굽기 30장 8-9절) 

아론은 매일 두 번씩 향을 피워야 했다. 등잔대의 등불을 매일 밝혀야 하듯, 분향단의 향도 끊어져서는 안 된다. 매일 두 번이라는 횟수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향을 피우는 일이 대대로 계속되어야 한다는 명령도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은 물론이요, 제사장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시며 살기 위하여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고, 이러한 노력은 끝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성도의 기도와 향연

지성소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성소에 들어오는 제사장 사이에는 휘장과 함께 분향단에서 피어오르는 향이 필요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신약의 성도들은 더 이상 휘장이나 분향단의 향을 사이에 두고 하나님을 만나지 않는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 부르며 당당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향단의 역할이 신약시대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요한계시록 8장 3-4절) 

금 향로는 구약성경의 분향단을 의미한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에는 금 향로 안에 많은 향이 담겨 있었는데 거기에는 성도들의 기도가 함께 담겨 있었다. 이 장면에서 향로에서 피어나는 향은 성도들의 기도를 거룩하게 만들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상달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의 분향단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거룩하게 이끄시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만한 합당한 기도로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장 26절). 


토의 질문. 

1.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나 자신을 정결하게 가꾸기 위해 내가 기울여야 할 노력은 무엇일까요? 
2. 나의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의 손길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러한 경험을 함께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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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출애굽기 성경공부2021. 6. 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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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에서 언약을 채결한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막의 용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할 장소’(출애굽기 25장 8절)이다. 마치 결혼의 언약을 맺은 부부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신방을 마련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함께 만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제작하라고 명령하신다. 

성막의 구조는 내전과 외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성막의 내전은 또다시 성소와 지성소로 나눌 수 있는데, 지성소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라면, 성소는 이스라엘의 대표자인 제사장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들어가는 장소다. 오늘 본문은 성소에 놓일 진설병 상과 등잔대를 만드는 규정이다. 


진설병을 두는 상

성소에는 조각목과 순금으로 만든 상을 놓아야 한다. 상에 네 개의 고리를 만들고 그 고리에 꿸 수 있도록 채를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실용적인 목적이다(출애굽기 25장 26-28절). 출애굽 이후 광야생활을 하였던 이스라엘 자손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늘 이동하였다. 성막을 운반할 때 하나님은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고 옮기도록 명령하셨는데 성소에 놓아둘 상에 채를 꿸 수 있도록 만들어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는데 용이하도록 하였다. 상 위에는 여러 가지 기구를 놓아야 한다. 대접, 숟가락, 병, 잔이 그것인데 이는 제사장이 사용할 도구였다.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출애굽기 25장 30절) 

성소에 상을 놓아두는 목적은 그 위에 진설병을 놓기 위함이다. 진설병(히. 레헴 파님)의 문자적 의미는 ‘얼굴의 떡’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떡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고, 이스라엘이 자신의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의미도 가능하다. 12개의 진설병을 6개씩 2열로 놓았는데, 안식일이 돌아오면 새것으로 바꾸어 한주 동안 진설하였다. 12개의 떡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며, 온 이스라엘이 정성을 다한 땀의 결실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가 있다. 한마디로, 진설병은 시내산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이 매주 드리는 하나님을 향한 정성이었다. 


등잔대

진설병을 놓아두는 상의 맞은편에는 등잔대를 두어야 한다. 등잔대는 7개의 살구꽃 형상으로 만들었다(출애굽기 25장 31-35절). 살구꽃은 이스라엘에서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움이 터서 어떤 경우에는 2월말 이전에 꽃을 피운다. 그런 점에서 살구꽃의 형상은 겨울을 이겨내고 새롭게 피어나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등잔대에도 제사장이 사용하는 도구들이 있었는데, 집게와 그릇이다(출애굽기 25장 38절). 

등잔대의 역할은 그 위에 등불을 켜놓는 것으로 제사장은 상에 진설병을 언제나 놓아두어야 하듯, 등잔대의 불도 꺼지지 않게 관리해야 했다. 등잔대가 언제나 불을 비추고 있으니, 맞은편에 위치한 상과 그 위의 진설병을 밝히 비췄을 것이고 제사장은 그 등불을 이용하여 자신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등잔대의 등불은 이러한 실용적인 용도를 넘어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생명의 빛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에는 정기적으로 관리할 물건이 없었다. 그래서 대제사장도 일년에 한 번만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성소에 있는 진설병 상과 등잔대는 매일 그리고 매주 제사장의 손길이 필요했다. 이는 제사장으로 대표되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날마다 깨어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가꾸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토의 질문. 

 

1.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정성을 드려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정성의 표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2. 매일 그리고 매주 진설병과 등잔대를 관리하던 제사장의 삶을 생각해 봅시다. 내가 나의 삶을 거룩하게 가꾸어 가는데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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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출애굽기 성경공부2021. 5. 2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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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 언약의 핵심은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으로, 이는 하나님 백성의 대헌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십계명은 보다 구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했기에,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한 율법을 말씀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은 두 돌판에 기록하셨는데(신명기 4장 13절), 십계명의 정신을 보다 구체적인 율법으로 풀어놓으신 말씀은 ‘언약서’에 기록되었고 이 언약서의 존재가 출애굽기 24장에 등장한다.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출애굽기 24장 7절) 

그리고 출애굽기 20장 22절부터 23장 33절까지가 언약서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배상의 책임

언약서에는 인간의 생명과 신체에 유해를 가한 사람에게 내려질 처벌을 규정한 뒤(출애굽기 21장 12-32절), 재산상의 피해를 배상하는 법률로 이어진다(출애굽기 21장 33절 ~ 22장 15절). 배상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1. 부주의 
자신이 파 놓은 구덩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그곳에서 다른 사람의 짐승이 빠져 죽으면 이를 배상해야 한다(출애굽기 21장 33-34절). 자신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부주의로 말미암아 타인에게 손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동일한 논리로 자신의 소가 받는 버릇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속하지 않아 다른 사람의 소를 해하면 이 또한 배상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출애굽기 21장 35-36절). 
가축만이 아니라 곡식에 대해서도 부주의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이 역시 배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밭이나 포도원에 짐승을 풀어 풀을 뜯게 하였는데, 그 가축이 타인의 농작물을 뜯어먹은 경우다(출애굽기 22장 5절). 혹은 불을 사용하다가 그만 다른 사람의 밭에 옮겨 붙은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출애굽기 22장 6절). 나의 부주의로 자신의 재산을 해쳤기에 자신의 부주의에 대해 배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 

2. 악한 행동 
타인의 재산을 약탈하거나 도둑질한 경우다. 의도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행동하였기에 소 한 마리에 대해서는 다섯 마리로, 양 한 마리에 대해서는 네 마리로 갚아야 한다(출애굽기 22장 1절). 도둑질한 짐승이 여전히 살아있어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더라도 두 갑절로 물어주어야 한다(출애굽기 22장 4절). 심지어 배상할 재산이 그에게 없다면 자기 몸을 종으로 팔아서라도 배상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출애굽기 22장 3절). 배상의 책임이 이토록 강력했던 이유는 타인의 재산을 악의를 가지고 탈취한 악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3. 의무 불이행 
배상의 책임을 져야 하는 마지막 경우는 의무에 대한 불이행이다. 타인의 재산을 위탁받았는데 관리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위탁받은 물건을 누군가 도둑질하였거나(출애굽기 22장 7절), 맹수가 가축을 해하였거나(출애굽기 22장 13절), 혹은 그 주인이 자리에 함께 있었으면(출애굽기 22장 15절) 의무 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배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

위의 세 경우는 고대사회를 그 배경으로 하기에 현대사회에 문자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문이 가르치는 정신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하며, 악한 행동은 물론이요 자신의 부주의나 의무 불이행으로 말미암아 타인에게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주었다면 반드시 배상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본문을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의 한 가지 특징은 타인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자세에 있다. 


토의 질문 

오늘 나에게 주어진 책임은 무엇인가요? 지금 내가 타인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할 영역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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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출애굽기 성경공부2021. 5. 1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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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왔다. 그러나 출애굽 자체가 출애굽의 목적이 될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향한 더욱 위대한 비전이 있었고, 이제 그 비전을 이스라엘 자손과 공유하려 하신다. 그 비전이란 시내산 언약이다. 출애굽기에서 시내산 언약은 19~24장에 서술되어 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시기 위한 준비과정을 그려준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선포하고 백성들이 이를 받아들여 시내산 언약을 맺을 준비를 갖추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신 첫 번째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말씀이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애굽기 19장 4절)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셨는가? 지금까지 출애굽기를 읽어온 독자라면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그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이는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동시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출애굽을 선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래서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은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과 연결된다. 물론, 하나님은 출애굽 이후에도 그들을 업고 안아 주시며 시내산까지 인도하셨다(cf. 이사야 46장 3절). 

출애굽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인간의 노력이나 계획이 전혀 개입할 틈이 없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바가 이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비전을 선포하기에 앞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상기시키셨다. 그들이 하나님의 비전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인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비전

이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등장한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애굽기 19장 5-6절)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히브리 민족, 조금 더 넓혀 애굽이 세상의 전부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시각을 넓혀 주신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해주신 출애굽의 사건이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분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 자손도 그들의 눈을 들어 보다 넓은 곳을 바라보라는 요청이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출애굽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발적으로 행동할 영역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언약을 지켜야 한다. 출애굽이라는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출애굽 이후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은 그들의 자발적 응답을 요청한다. 

“제사장 나라” 
제사장이란 하나님과 백성을 이어주는 역할이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위해 백성을 하나님께 인도하며,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축복을 중보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론이라는 개인이나, 레위인이라는 특정 지파만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나라가 되는 비전을 선포하신다. 곧,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을 하나님과 연결하는 중보자 역할을 감당하는 비전이다. 

“거룩한 백성”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다. 그러나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출애굽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유인이자만, 그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불의와 죄악을 멀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공동체를 이루라는 명령이요, 하나님의 비전이다. 


백성의 응답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자신의 비전을 선포하셨다.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이 응답할 차례다.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출애굽기 15장 8a절) 

이스라엘 백성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현현하실 준비가 되었다(cf. 출애굽기 15장 9-15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비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이 함께 일구어가는 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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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출애굽기 성경공부2021. 5. 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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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생활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은 먹을 양식을 풍성하게 공급하여 주셨다. 아침에는 만나를,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충분히 내려주신 것이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자연현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다. 철새의 한 종류인 메추라기는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지내고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는데, 그 과정에서 체력이 다한 새들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만나는 곤충에게 나오는 달콤하고 끈적한 물질이 사막의 건조한 기후에 의해 마르고 굳어지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자연현상만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풍족하게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는 없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양식을 비와 같이 베풀어주신 특별한 기적이요 은혜였다(cf. 출애굽기 16장 4절). 


먹을 만큼, 수효대로

하나님께서 매일의 양식을 풍성하게 베풀어 주셨지만 이스라엘 자손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매일 아침 그것을 거두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만나를 거두는 일에도 규례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출애굽기 16장 16절) 

한 오멜이 어느 정도의 양인지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성경의 여러 번역에서는 대략 2리터 정도로 번역하고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더욱 중요한 점은 ‘먹을 만큼’, 곧 ‘수효대로’ 거두라는 규정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나가 만나를 거둘 때는 많이 거둔 사람도 있었고, 적게 거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돌아와서 그 양을 제어 보니 모두에게 정확히 필요한 만큼이 되었다.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출애굽기 16장 18절) 

여기에 만나와 관련된 두 번째 기적이 등장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먹을 수 있는 양식이 매일 하늘에서 내렸다는 것이 첫 번째 기적이었다면, 두 번째 기적은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분배되었다는 점이다. 사도 바울은 이 장면을 인용하며 ‘균등’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고린도후서 8장 13-15절). 현대의 용어로 표현하면 ‘분배 정의’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양식이 모두의 필요를 채울 수 있도록 균등하게 돌아갔던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배 정의는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모든 사람이 먹을 만큼, 곧 수효대로 거두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날 성도들이 바치는 헌금은 성경이 강조하는 균등을 실현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출애굽기 본문을 인용하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8장에서 강조하는 바가 바로 연보(헌금)이기 때문이다. 

토의 문제. 
오늘날 교회의 헌금이 ‘균등’을 실현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매일의 양식

모세는 만나를 거둔 당일에 모두 먹고 다음날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말했다(출애굽기 16장 19절). 그런데 모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다음날까지 남겨두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양식이 귀한 광야에서 오늘 조금 먹으면서까지 내일을 대비하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남겨진 모든 양식을 못쓰게 만드셨다(20절). 날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매일의 양식을 만족하게 여기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태복음 6장 11절) 쌓아둘 재물이 아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믿음을 전제한다. 곧, 하나님께서 날마다 공급하신다는 믿음이요, 오늘 나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만족한다는 믿음이다. 출애굽 이후 약속의 땅에 들어가 그곳에서 나는 소출을 먹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신앙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천성에 들어가기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도 바로 이것이다. 

토의 질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에 닮긴 기도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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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출애굽기 성경공부2021. 5. 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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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출애굽은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은 거듭남의 사건은 신앙생활의 완성이 아니라 신앙생활의 시작인 것과 마찬가지다. 


되돌아보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나왔다고 그들에게 약속의 땅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본문에는 ‘전쟁’이라는 현실이 등장한다. 지금 당장이야 하나님께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다른 길로 인도하시지만 가나안 정복을 위해 전쟁은 그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어디 그뿐인가?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출애굽기 13장 18절). 더위와 추위, 목마름과 배고픔 등 그들의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이유는 끝이 없었다. 그러니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였다고 삶의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 정복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광야 생활이 자리 잡고 있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생활의 고단함은 어쩌면 숙명이다. 그러니 전쟁을 맞이하는 것도, 먼 길을 돌아가는 것도, 그 과정에서 힘에 겨워 치키고 넘어져도 그것은 어쩌면 가나안으로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많이 아프지만, 출애굽의 위대한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다시 일어서면 된다. 그러나 그들에게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출애굽기 13장 17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으로 돌아가는 행위는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구원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일이다. 신약시대 성도들의 삶에 비유한다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님을 떠나 죄와 사단의 세력 아래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만큼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용납하실 수 없었다. 그러니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그 여정이 아무리 힘겹고 버거워도 하나님의 백성은 그 길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토의 질문. 
나의 신앙 여정을 지금 가장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구름 기둥과 불 기둥

성도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성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다.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까지 가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닮아 있다. 그러나 약속의 땅을 향해 걸아가는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이 언제나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 물론, 기근과 목마름을 겪어야 하고 적군이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이스라엘이 걷는 광야 길도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다. 그 광야 길에서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애굽기 13장 21-22절)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본문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언제나 그들을 떠나지 않았다고 말씀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그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할 때도, 심지어 그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지켜주셨다. 그러니 비록 광야 길을 걷고 있지만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들은 광야에서도 천국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이렇게 고백하듯 말이다.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가 438장) 

토의 질문. 
나의 신앙 여정에서 하나님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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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출애굽기 성경공부2021. 4. 2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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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바로는 밀고 당기는 협상을 계속했다. 여러 가지 재앙을 당한 바로는 모세에게 애굽 땅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제안했다(출애굽기 8장 25절). 그러나 모세는 바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바로는 다시 한번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 광야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이야기한다(출애굽기 8장 28절). 그러나 모세의 입장은 분명하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하라는 것이다(출애굽기 8장 29절). 길게 끌었던 모세와 바로의 협상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고, 마침내 결렬되었다.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출애굽기 10장 28-29절) 


흑암, 그 짙은 어두움

모세와 바로의 협상이 결렬되는 순간, 애굽 땅에 임한 하나님의 재앙은 흑암이었다. 당시에는 어두운 밤을 밝힐 불빛이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어두움은 모든 것이 멈추는 혼돈의 시간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능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리신 흑암은 매일 밤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어두움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흑암, 곧 짙은 어두움으로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시기 이전의 흑암이요(창세기 1장 2절), 예언자들이 선포했던 심판의 흑암이었다(cf. 아모스 5장 18-20절). 

애굽의 바로 왕은 자신의 제국이 무너지는 현실을 깨닫지 못하였고, 무엇보다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다. 그의 눈이 짙은 어두움에 덮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굽이 큰 흑암에 덮여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는 땅에는 빛이 있었다. 여기에 어둠과 빛이 큰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빛이 어둠에 비추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한복음 1장 5절)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한다(요한복음 8장 12절). 


재물에 대한 욕심

바로에게 빛이 사라지고 그의 눈이 어두워지게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었다. 모세와 바로의 협상은 조금씩 합의점을 찾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합의할 수 없는 영역은 애굽을 떠나는 규모에 있었다. 모세의 입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모든 가축을 이끌고 애굽을 나가겠다는 것이다(출애굽기 10장 9절). 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의 장정만 나가라고 이야기하다가(출애굽기 10장 11절), 이스라엘 모두가 함께 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소유한 양과 소, 곧 재물이었다.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출애굽기 10장 24절) 

재물에 대한 욕심이 바로의 마음을 짙은 어둠으로 뒤덮었다면, 이스라엘 자손 역시 재물에 대한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도 재물에 대한 욕심에 빠지면 하나님의 빛이 그들의 마음을 더 이상 비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로에게 했던 모세의 대답은 가축을 끌고 가기 위한 핑계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빛이 계속 머물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든 그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했다.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출애굽기 10장 26절) 


토의 질문. 
나의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 욕심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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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출애굽기 성경공부2021. 4. 1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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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바로와의 만남을 통해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출애굽기 5장 1-4절). 나아가 바로의 이간질에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 자신을 지도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출애굽기 5장 19-21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바로를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말씀하신다(출애굽기 6장 29절).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모세에게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새로운 용기와 힘이 필요했다(cf. 출애굽기 6장 30절). 


바로에게 신과 같이

한번의 큰 실패를 경험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겠다.’(출애굽기 7장 1b절) 하나님은 계속해서 아론을 모세의 대언자로 세워주신다(출애굽기 7장 1c절). 여기에 대언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나비’인데,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많은 경우 ‘예언자’ 혹은 ‘선지자’를 나타낸다.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듯 모세에게는 그의 말을 대언하는 아론이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신처럼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의 또 다른 표현이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애굽의 바로 왕은 초라하게 지팡이 하나를 잡고 자신을 찾아온 모세와 아론을 무시한다. 현재 애굽의 왕좌에 앉아 있는 바로와 40년 전 망명하여 미디안의 목자로 살고 있던 모세는 그 힘과 권세가 누가 보아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신과 같이 만들겠다고 결정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표징과 이적을 많이 행하실 것이고(출애굽기 7장 3절), 결국 바로를 비롯한 모든 애굽 사람들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출애굽기 7장 5절). 그러니 애굽에 재앙이 내리면 내릴수록 모세의 권세는 높이 올라가고 바로의 통치력은 하루가 다르게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의 기도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사무엘상 2장 7절) 

토의 질문. 
나를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나의 마음 자세가 어떻게 변할까요? 


이적을 보이라 

성경에서 이적[기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본격적으로 내리시기 전,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통해 간단한 이적을 보여주신다. 아론이 모세의 말에 따라 지팡이를 던지니, 그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였다(출애굽기 7장 9-10절). 바로의 마술사들도 동일한 요술을 부렸지만,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리며(출애굽기 7장 11절)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은 마술사의 요술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러한 이적을 바로에게 보여주라고 말씀하셨다(출애굽기 7장 9절). 이것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면, 바로는 10가지 재앙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론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이적은 1차적으로 바로에게 보여준 이적이었지만, 동시에 모세와 아론에게 보여주시는 이적이기도 했다.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 하나님은 이미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을 모세에게 보여주셨다(출애굽기 4장).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애굽 요술사들의 지팡이를 삼키는 장면은 모세도, 아론도 이때 처음으로 보았다. 바로는 이 장면을 보고도 하나님을 믿지 못했지만, 모세와 아론은 달랐을 것이다. 이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 하나님은 애굽인들이 섬기는 모든 우상보다 뛰어나시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역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 더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이적[기적]의 목적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기적]의 목적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0장 30-31절) 

토의 질문. 
하나님께서 각자의 삶 속에 펼치신 은혜의 역사를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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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출애굽기 성경공부2021. 4. 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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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선뜻 사명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성경에는 이사야 선지자처럼 “나를 보내소서”(이사야 6장 8절)라고 말하며 적극적으로 사명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세처럼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모세의 탁월한 점은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들인 후에는 단 한 번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명을 받은 모세는 마지막까지 충성된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지팡이로 쓰임을 받는다. 


하나님의 지팡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내려가는 모세의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출애굽기 4장 20b절) 

모세의 손에는 지난 40년 동안 목동의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출애굽기 4장 2절). 이 지팡이는 그저 평범한 목동의 지팡이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세에게 소명을 주신 하나님은 그에게 지팡이로 이적을 행하라고 명령하신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출애굽기 4장 17절) 평범한 목동의 지팡이가 사명을 위한 하나님의 지팡이로 변화되는 장면이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다. 그러면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모세는 여태껏 정치 조직을 갖춘 것도 아니요, 군사력을 모은 것도 아니며, 민족의 독립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으니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 우리 손에 들려 있는 평범한 물건도 하나님의 기적을 위한 도구가 된다. 그러므로 모세가 손에 잡고 있는 하나님의 지팡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신다는 증표요, 곧 모세에게 주신 출애굽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다는 명백한 증거다. 


내 아들, 내 장자

모세는 애굽 왕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전해야 한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출애굽기 4장 22절)

바로의 눈에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그것도 하나님의 장자라고 선언하신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생각 가운데 무엇이 옳은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 옳고 바로의 생각이 틀렸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장 12절) 그러나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다른 시선을 바라본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이 옳은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 세상 사람들이 무엇이라 평가하든 우리는 세상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이다.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로 삼았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아들, 그것도 장자인데 말이다. 그러므로 애굽이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은 것은 수평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저지른 죄를 넘어, 수직적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이다. 곧, 하나님의 장자를 빼앗아 자신의 노예로 삼은 죄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장자의 죽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장자를 빼앗아 노예로 삼은 죄를 그들의 장자를 죽여 벌하신 것이다(출애굽기 4장 23절). 


토의 문제 

1.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사명을 위해 헌신할 때 내 손에 있는 평범한 물건도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흔드는 세상의 유혹에는 어떠한 것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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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출애굽기 성경공부2021. 4. 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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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장은 야곱이 애굽에 데려간 사람들의 이름을 나열한다. 그러면서 야곱이 애굽으로 간 사건에 대해서는 일절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야곱의 애굽행을 이미 알고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글성경에는 분명히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출애굽기의 첫 시작이 “그리고”다. 그러므로 출애굽기는 창세기의 배경에서 읽어야 한다. 


번성

야곱은 그의 자손 70명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갔고, 그로부터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출애굽기 12장 40절은 출애굽의 사건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고 기록한다. 그리고 출애굽기의 주인공인 모세는 레위의 4대손이므로(민수기 26장 58-59절), 레위와 요셉의 시대로부터 4대가 이어지는 세월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긴 세월의 흐름이 출애굽기 1장 6절과 7절 사이에 놓여 있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출애굽기 1장 6-7절) 

4대가 지나갔던 430년은 한 개인이 가늠하기에 너무도 긴 세월이었지만, 그 오랜 세월 하나님의 섭리는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애굽에 내려간 70명이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게 된 것이다. 이미 오래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세기 12장 2절)는 약속이 성취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출애굽기 1장 7절은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신 약속도 상기시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 28절) 

세월이 오래 흘렀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직접 들은 아담도, 그리고 아브라함도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신다. 사람들은 잊었지만 하나님은 그 오래 전의 약속을 기억하셔서 성취하고 계신다. 


학대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매우 강하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이 겪은 불행의 원인을 제공했다. 당시 애굽은 요셉이 총리로 다스리던 시대와는 다른 왕조가 세워져 있었는데(출애굽기 1장 8절),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을 두려워하였다. 그들의 두려움은 미움과 시기가 되었고 급기야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하기에 이른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출애굽기 1장 11절) 

성경의 기록 외에도, 역사가 요세푸스는 자신의 저서 <유대 고대사>에 이 사건을 기록해 두었다. “애굽인들은 고된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말살시키기 원했다.” 이처럼 애굽 사람의 학대는 이스라엘 자손의 말살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시는데 과연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출애굽기 1장 12a절) 애굽 사람들의 학대는 더욱 가혹해졌다.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출애굽기 1장 14절) 

출애굽기 1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학대를 당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그러나 출애굽기의 마지막 40장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충만히 임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보호받는 장면으로 마친다(출애굽기 40장 34-38절). 어떻게 이러한 반전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제부터 출애굽기가 그 과정을 보여준다. 


토의 질문

1.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고 확신하였지만, 그 성취가 더디어 의심이 생기는 경우는 없었나요?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2. 출애굽기는 구원의 책입니다. 큰 아픔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주신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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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