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2. 23. 21:00

씨 뿌리는 비유에 이어,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라지의 비유를 비롯하여 씨앗을 모티브로 한 여러 비유를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공생애로 천국 복음(씨앗)이 선포되고 있다. 이러한 비유는 천국의 씨앗이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 과정을 묘사한다. 


가라지의 비유

천국은 제 밭에 좋은 씨를 뿌린  사람과 같다(24절). 여기에서 씨앗을 뿌리는 농부는 예수님이고, 씨앗은 천국 복음이다(cf. 19절). 문제는 곡식 가운데 원수가 가라지도 덧뿌렸다는 사실이다(25절). 예수님의 비유에서 좋은 씨는 겨울 밀을 의미하는데, 가라지와 겨울 밀은 봄이 올 때까지 구분하기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 모양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봄이 되어 이삭의 머리를 형성할 때에야 농부가 가라지와 곡식을 구분할 수 있지만, 밭에서 가라지를 제거하기에는 이미 늦은 식디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29절) 

주인은 가만 두라고 명령한다. 그 이유는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곡식까지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싹이 올라오고 있는데, 가라지를 쫓아 밭고랑으로 들어가면 곡식을 다치게 할 수 있다. 더욱이 곡식과 가라지는 그 뿌리가 서로 얽혀 있기에 가라지를 뽑으면 곡식의 뿌리도 함께 뽑히게 된다. 주인이 가라지를 내버려 두는 이유는 가라지를 키우기 위함이 아니라 곡식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의인을 괴롭히는 악인의 존재를 분명히 알고 계시면서도 그대로 두는 이유는 의인의 손해를 최소로 하기 위함이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30절) 

농부는 "추수 때"를 기약한다. 지금은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지만, 추수 때가 이르면 농부는 가라지와 곡식을 명확히 구분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해설하며 '추수 때'(세상 끝, cf. 40절)를 다시 한번 강조하신다. 

[가라지의 결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1-42절) 

[곡식의 결말]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43절) 

마지막 때는 반드시 있고, 그날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공의로 판결하신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가라지라고 쉽게 판단하여 제거하려는 모든 시도를 지금 당장 멈추어야 한다. 아직은 추수 때가 아니요, 우리 인간은 최후의 심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카이먼 키스트메이커는 <예수님의 비유>라는 책에서 가리지 비유의 의미를 이렇게 강조한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인내하라고 하며 자칭 재판관으로서 행세치 말도록 가르친다." 


겨자씨와 누룩 비유 (31-33절) 

가라지 비유와 그 해설 사이에 예수님은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이 두 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천국이 (1) 작게 시작하여 (2) 크게 번성한다는 강조점이다. 두 비유 사이에는 차이점도 존재하는데, 겨자씨 비유가 천국의 외향적 확장을 묘사한다면 누룩 비유는 천국의 내적 역동성을 보여준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33절) 

밀가루 안에 누룩을 넣어 반죽하면 누룩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누룩이 있으면 반죽이 부푼다. 그 내부의 과정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그 결과는 모든 사람이 분명히 알게 된다. 가루 서말은 약 50kg으로 성인 150명가량이 먹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이처럼 크고 넓은 세상도 한 줌의 누룩이 변화시킨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꼭 이와 같다. 로마 제국 안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의 누룩으로 살았다. 그들의 존재와 역할이 사람들의 눈에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천국 복음이 제국을 변화시킨 현상은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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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2. 19. 18:00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신다. 이 비유의 제목으로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언급하셨기에, 사람들은 이 비유를 그렇게 부른다(18절). 그러나 비유의 내용은 씨를 뿌리는 행위보다 씨앗이 뿌려진 땅에 초점이 있다. 크게 보아 열매를 맺는 땅이 있고 그렇지 못한 땅이 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땅 

당시 갈릴리에서 농부가 씨앗을 뿌리는 것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장면이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군중들 중에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걸어오는 길에 씨를 뿌리는 농부를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 시대의 농부는 목에 메는 주머니에 씨앗을 담고 걸어가며 씨앗을 뿌렸다고 한다. 여기에서 '뿌렸다'는 표현은 심는 것과 다르다. 씨앗을 심을 때는 땅을 고르고 그 안에 씨앗을 심고 흙을 덮는다. 그러나 갈릴리의 농부들은 씨앗을 심지 않고 뿌렸다. 그러니 그 가운데 어떤 씨앗은 길가에 떨어지고 또 어떤 것은 돌밭이나 가시떨기에 떨어지기도 한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직접 설명해 주신다. 그러나 씨를 뿌리는 농부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다. 단지, 농부가 뿌리는 씨앗을 "천국 말씀"으로 해석하는 대목에서(19a절), 이 비유의 농부는 천국 복음을 선포하는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다. 

'길 가'는 천국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한다(19절). 이들에게도 천국 말씀은 들렸다. 다만 깨닫지 못하니, 악한 자가 와서 그 말씀을 빼앗아 간다. '돌밭'은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박해나 환난을 당하면 넘어지는 사람이다(21절). 갈릴리 지역의 돌밭은 온도와 습기가 적절하여 씨앗이 다른 땅보다 일찍 발아한다고 한다. 말씀에 그 누구보다 쉽게 반응하지만 환난이 몰려올 때 다른 누구보다 먼저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가시떨기'는 말씀을 들었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넘어져 결실하지 못하는 사람이다(22절). 공개적인 박해가 없는 현대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실패하는 단계를 가시떨기가 표현하는 듯하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본문을 주석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시들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각 사람은 마음속에서 가시떨기를 제거해야 한다." 


열매 맺는 땅 

농부가 뿌린 씨는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길 가, 돌밭,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은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23절) 

씨뿌리는 비유는 당시 갈릴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당시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비유의 마지막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로 마친다. 당시 평균 수확은 약 열 배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백배의 결실을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숫자다. 그래서 사이먼 J. 키스트메이커는 <예수님의 비유>라는 책에서 씨 뿌리는 비유의 핵심이 풍성한 수확이라고 강조한다. 일반적인 농부는 좋은 땅에 씨가 떨어졌을 때 열 배 정도의 결실을 얻지만,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천국 복음은 좋은 밭에 떨어질 때 백배까지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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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2. 12. 14:54

예수님의 기적은 표적이라고 부른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단지 놀라운 일에 머무르지 않고 천국 복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신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 데 있다(요 20:31). 그러나 유대인 중에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도 믿지 못한 채 더 많은 기적만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표적 보여주기를 원하나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한다고 말했다(고전 1:22). 표적을 좋아하는 유대인들의 특성 때문일까? 지금까지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를 치유하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려주셨는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또다시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38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39절)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고도 여전히 표적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비판하신다. 이제 그들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 그런데 요나의 표적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표적이다. 요나의 표적이란 사흘 동안 요나가 울고기 뱃속에 있다가 나온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40절).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최고의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이 어떠한 기적을 행하셔도 믿지 않는다. 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복음을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이 천국 복음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예수님을 믿을 만한 표적이 부족했다고 불평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들려주셨기 때문이다. 


악한 세대의 결말 

바리새인을 비롯한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부족한 것은 표적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충분한 표적을 보여주셨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표적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믿음이다. 그들의 영적 상태를 예수님은 하나의 비유를 통해 보여주신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다(43절). 귀신이 나가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축귀가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권능을 행하여 그 사람에게 치유와 회복을 선물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마음에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표현대로, 그 마음의 집이 청소도 되어 있고 수리도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텅 빈 상태로 방치되었다. 귀신은 다시 그에게 들어오고 더 악한 귀신 일곱도 데려온다.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45b절) 

처음부터 귀신이 쫓겨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나쁜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귀신이 한번 쫓겨났다 다시 들어오니 그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치유와 축귀라는 표적을 보여주지 않으셨다면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어둠의 세력을 물리쳐 주셨다. 그런데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의 마음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채워지지 않고 있다. 그러니 그들의 나중 형편은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표적을 거부하는 악한 세대의 결말이다. 


예수님의 가족 

마태복음 12장은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어떻게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천국 복음을 거부하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마태복음 12장의 마지막은 비관적이지 않다. 비록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거부하였지만,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49-50절) 

세상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다. 바로 그들이 예수님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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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2. 12. 14:49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에 대해 바리새인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다고 비난했다(마 12:24). 예수님은 이에 대해 계속 답변하신다. 본문에서는 그들의 비난이 성령훼방죄에 해당한다고 고발하신다.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다(31절). 이 세상은 물론이고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를 받을 수 없다(32절). 언어를 잘못 사용한 결과가 이처럼 무서운 심판을 초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음과 언어의 관계 (33-35절) 

예수님은 나무와 열매의 비유를 종종 말씀하셨다(cf. 마 7:16-20). 이번에도 나무와 열매의 비유를 통해 인간의 언어와 마음의 관계를 보여주신다(33절). 나무가 사람의 마음에 해당한다면, 열매는 입술의 열매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가 좋듯 마음이 선한 사람은 선한 말을 하게 되어 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4절) 

바리새인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그들의 마음이 악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그들의 입술도 악한 말만 내뱉는다. 마치 나쁜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만 맺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5절) 

마음에 무엇을 쌓아 두었느냐가 관건이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선을 쌓았기에 선한 사람이고, 악한 사람은 마음에 악을 쌓았기에 악한 사람이다. 그런데 마치 창고에서 물건을 가져오듯 사람들은 마음에 있는 것만 입으로 말할 수 있다. 마음에 선을 쌓은 선한 사람이 선한 말을 하고, 마음에 악을 쌓은 악한 사람이 악한 말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심판의 기준: 언어 (36-37절) 

예수님은 마음과 언어의 관계에 대한 말씀을 최후 심판의 기준으로 적용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36-37절) 

예수님께서 심판의 기준으로 언어를 제시하신다. 어떻게 최후 심판의 기준이 인간이 내뱉은 언어가 될 수 있을까? 성경은 심판의 기준이 인간의 마음이요, 무엇보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맞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지금 내 뱉는 언어가 최후 심판의 기준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과 언어의 관계 때문이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듯 인간의 언어는 모두 그의 마음으로부터 기인한다. 사람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그런데 마음의 쌓아둔 것이 결국에는 말을 통해 나오기에, 사람의 말이 그의 마음을 비춰준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시는 하나님은 그의 언어를 기준으로 심판하신다. 언어가 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고 평가하셨다(34절). 그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그들의 언어가 그만큼 악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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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평가하는 두가지 방식 (사도행전 28장)

사람들은 다른 사람은 평가하며 살아간다. 상관이 부하직원을 평가하지만 동시에 직원도 상관을 평가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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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2. 12. 14:45

바리새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치유는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귀신 들려 눈이 멀고 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자 그 사람이 말도 하고 앞도 볼 수 있었다(22절). 예수님의 치유가 계속되니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평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23절). 당시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라는 뜻이다. 


바리새인의 공격과 예수님의 반론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고대하던 메시아로 생각하기 시작하자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바빠졌다. 질투와 분노가 가득해진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악한 말을 쏟아놓는다.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4절) 

바리새인은 예전에도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한 적이 있다(마 9:34). 그들은 이번에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다만 마태복음 9장에는 예수님의 대답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본문은 예수님의 반론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5절) 

만일 귀신의 왕이 귀신을 쫓아낸다면 그것은 귀신들이 서로 분쟁한다는 뜻이다. 만일 그렇다면 분쟁하는 나라나 가정이 스스로 무너지듯, 귀신의 세력이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니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7절) 

예수님은 또 하나의 반론을 제기하신다. 예수님 외에도 당시에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리새인의 자녀들 중에도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축귀는 인정하였다. 그런데 왜 예수님의 축귀만큼은 바알세불을 힘입었다고 비난하니 일관성이 부족한 주장이다. 


축귀와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공격에 반론을 충분히 제시하셨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유와 축귀의 더 깊은 의미를 밝혀주신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8절)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사건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장면이다. 여기에 예수님의 축귀와 하나님 나라의 연관성이 드러난다. 예수님은 이것을 하나의 비유로 다시 한 번 강조하신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29절) 

여기에서 강한 자는 귀신을 의미한다. 강한 자가 어느 집에 자리를 잡고 그 안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모습은 어둠의 세력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빼앗긴 영적 상태를 묘사한다. 구원 받기 이전에 인간이 처한 실존이다. 그들의 영혼과 삶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신 사역이 바로 그것이다. 


 

 

 

"마태복음 성경공부" 글 목록 (Contents)

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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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2. 12. 10:50

바리새인과 예수님 사이에 안식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앞 단락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는 행동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문제를 제기하며 논쟁이 시작되었다(마 12:1-8). 본문은 손 마른 사람을 놓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며 논쟁이 시작된다. 


안식일에 행하신 선한 일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수님도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 자리에는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고발할 기회로 여기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은지 질문한다(10절). 여기에서 옳다는 것은 율법 규정에 합당한 일(lawful)을 말한다. 이에 예수님은 수사 의문문으로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동 양식을 말씀하신다(11절). 사람들은 자신의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안식일이라도 끌어내었다. 양은 귀중한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양보다 귀하다는 명백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답하신다. 

[바리새인의 질문]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0b절) 
[예수님의 대답]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12b절) 

손 마른 사람은 안식일을 맞아 바리새인의 회당에 참여했다(9절).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규범대로 회당 예배에 참여하며 안식일을 지켰다. 그러나 그에게는 참된 쉼이 없다. 손이 말랐으니 안식일만 아니라 평일에도 노동을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쉼을 누리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한 일은 안식일을 맞이하여 안식일의 규정을 지키고 있지만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그에게 온전한 쉼을 주시는 일이다.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3절) 

예수님께서 안식일에도 병자를 치유하시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분노하고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모의한다(14절). 그들은 안식일의 규정을 금과옥조처럼 지키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의 마음은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는 사람마다 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마 11:29). 손 마른 사람은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할 수 없었음에도 – 손이 말라있기에 손을 펼(stretch our) 수가 없었다 –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몸과 마음의 쉼을 얻게 되었다. 반면, 바리새인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규율에 얽매여 예수님께서 주시는 쉼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한다. 

본문과 관련하여 교회에 내려오는 전설 
나사렛파(the Nazarenes)와 에비온파(the Ebionites)가 사용한 히브리어로 된 마태복음에 손 마른 사람이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대목이 나온다고 제롬은 기록했다. “주여 나는 벽돌공으로서 나의 노동으로 살아왔나이다. 오 예수여, 주께 구하오니 내 손을 회복시키사 양식을 구걸하지 않게 해 주소서.”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사역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떠나신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신다(15절).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고 경험한 사람들은 흥분하여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전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고 경고하신다(16절). 예수님은 왜 기적을  행하시며 사람들에게 그것을 드러내어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셨을까? 여러 가지 이유를 답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데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적에 대한 소문이 무성해지면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천국 복음은 사라지고 능력을 행하는 예수님만 드러나게 된다. 예수님은 바로 이 점을 경계하셨다. 본문은 예수님의 이러한 의도를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며 확증한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19-20a절) 

예수님의 사역은 치유와 축귀의 기적을 광고하거나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었다. 요란한 소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보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사람들의 영혼을 찾아가 그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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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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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2. 12. 10:42

예수님은 앞단락(마 11:25-30)에서 마음의 쉼(rest for your souls, NIV)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본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쉼이 안식일에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보여주신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다. 제자들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밀밭 사이를 선택하신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제자들은 이삭을 잘라먹기 시작한다(1절). 현대인의 관점에서 다른 사람의 밀밭에서 이삭을 잘라먹는 것이 도둑질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얼마든지 허용되는 행동이었다. 문제는 이삭을 잘라먹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안식일 규정과 어긋난다는 점이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2절)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두 장면으로 대답하신다. 첫째 장면은 다윗과 관련된 일화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하나님 앞에 진설하는 거룩한 떡을 얻어 먹은 적이 있었다(삼상 21:16). 또 하나의 장면은 제사장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제사장은 상번제를 매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민 28:3-8). 안식일이 되면 상번제에 더하여 안식일의 번제도 드리도록 율법이 규정해 놓았다(민 28:9-10). 예수님께서 구약의 두 장면을 인용하신 이유는 율법이나 안식일 규정에 대한 예외 사항을 제시하여 필요에 따라 안식일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윗이 율법의 규정에 구애받지 않았고, 제사장도 그들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안식일 규정을 초월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보다 훨씬 크고 위대하신 분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6절)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다윗이나 제사장보다 크신 분이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이렇게 선포하신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8절) 

사람이 안식일을 맞이하여 쉼을 얻는 길은 안식일의 규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데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믿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면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쉼과 평안을 주신다. 이어지는 단락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참된 안식을 얻은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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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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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2. 10. 21:30

예수님은 갈릴리를 두루 다니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그런데 갈릴리의 마을 중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권능을 직접 보고도 회개하거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화 있을진저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마을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고라신과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이다. 이곳 주민들이 예수님께 책망을 받은 이유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0절)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기적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았다. 병자를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은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천국이 그들에게 임재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기적의 목적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는 데 있었다. 고라신과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과 권능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다. 이들의 죄악은 동일했고 그들에게 내리신 예수님의 심판도 동일하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23a절) 

위의 구절에서 고라신과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이 회개하지 않았던 근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교만이다.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처럼 스스로 의인이라 여기는 교만한 사람은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대로 세리나 어린아이 같이 스스로 내세울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기는 겸손한 사람은 천국 복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5절) 

위의 구절에서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와 '어린 아이'가 대조를 이룬다.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는 하늘의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다. 단지 이 세상에서 지혜롭다고 알려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지혜로 마음이 교만해져 가장 귀한 지혜인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참으로 역설이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은 유대교 지도자들, 헤롯과 같은 정치 권력자들, 나아가 갈릴리의 여러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분이 전한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한 이들은 천국 복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25-26절) 예수님은 그들에게 참된 쉼과 안식을 약속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8-30절) 

위의 구절은 두 가지 상반된 말씀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쉼을 주신다는 약속과 예수님의 멍에를 메라는 명령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시는 쉼의 비밀이 담겨 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멍에를 소 두 마리(한 겨리)에게 함께 메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멍에를 멘다는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렇게 예수님의 멍에를 메어 예수님과 함께 걸어갈 때 그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된다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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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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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2. 10. 21:24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 계속 말씀하신다. 그러나 요한에 대한 이야기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전한 천국 복음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제로 이어진다. 


구약의 가장 큰 인물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평가를 내리신다. 

(1)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2)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1절) 

세례 요한이 가장 위대한 이유는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예언이 요한에게서 멈추기 때문이다(13절).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예언하였지만, 세례 요한은 직접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인물보다 요한이 위대하다. 그러나 세례 요한 역시 구약에 속한 인물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구원 사역 이전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어 천국에 들어간 모든 사람이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하신다. 세례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능력이나 성품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펼쳐지는 과정과 단계를 설명하는 말씀이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2절) 

세례 요한은 구약을 마감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신약 시대를 준비한 사람이다. 그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였다(마 3:1-2). 이제 침략하듯 적극적으로 천국 복음에 반응하는 사람이 천국을 차지하게 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천국을 침노하지 않았고 그들은 천국에서 배제되었다. 반면, 세리와 죄인들은 천국을 침노하였고 그들은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 


무관심의 시대

천국 복음이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모습을 예수님은 비유로 설명하신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6-17절) 

예수님 시대의 어린이들이 결혼 놀이와 장례 놀이를 했던 것 같다. 장례 놀이란 어린이들이 역할을 정하여 장례식을 연출하는 놀이다. 한 아이가 슬피 울면 다른 아이들은 그 소리에 맞춰 가슴을 치며 통곡한다. 반대로 결혼 놀이는 결혼식을 연출하는 놀이다. 한 아이가 피리를 불면 그 소리에 맞춰 다른 아이들은 춤을 춘다. 그런데 결혼 놀이와 장례 놀이에 아무리 초대하여도 응하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예수님은 당시의 유대인들이 꼭 그 아이와 같다고 지적하신다. 

세례 요한의 사역은 장례 놀이에 비유된다. 요한은 천국 복음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하였다. 마치 장례 놀이를 주도하는 어린이가 슬피 우는 것과 같았다(18절). 그러나 사람들은 요한의 촉구대로 참으로 회개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사역은 결혼 놀이에 비유된다.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며 천국 잔치에 죄인들을 초대하셨다. 마치 결혼 놀이에 초대하기 위해 피리를 부는 것과 같았다(19절). 그러나 이번에도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요한의 때로부터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인데, 사람들의 반응은 정반대로 무관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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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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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2. 10. 21:19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후 그의 사역이 멈추었다. 세례 요한이 헤롯의 죄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헤롯이 그를 감옥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오실 그분이십니까? 

감옥에 갇혀있었지만 요한도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제자를 보내어 예수님께 질문한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3절) 

요한의 질문은 직절적이었다. 예수님 당신이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맞는가라는 질문이다.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며 이미 그분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 확신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하기도 했다(요 1: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이 다시 예수님께 질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하였던 것처럼 로마의 통치로부터 유대 나라를 해방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요한 자신은 헤롯의 죄를 지적하여 감옥에 갇혀 있는데 메시아라는 분이 불의한 정치가를 그대로 내버려 둔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4-5절) 

예수님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요한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유대민족의 정치적 해방을 가져오시는 메시아가 아니라, 사람을 치유하여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메시아이다. 세례 요한조차 예수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누구든지 예수님에 대해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6절). 


모든 선지자보다 위대한 인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자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요한에 대해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먼저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만나기 위해 광야에 나간 사실을 언급하신다(7-8절). 과연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 광야에 모였던 것인가? 그들이 요한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9절) 

세례 요한은 선지자다. 그런데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보다 위대한 인물이다. 그 이유는 그의 능력이나 성품에 있지 않고 그의 사역에 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있어 메시아의 예언을 가장 가까이에서 예언한 선지자요, 또한 구약성경이 예언한 대로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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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