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운동가이자 정치 지도자였던 넬슨 만델라가 진정한 용기에 대해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고 하지요.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에서 크고 작은 두려움을 마주하지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혹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게 될 때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두려운 마음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특별히 과거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면, 그리하여 그때의 경험으로부터 일종의 트라우마가 형성되어 있다면, 우리의 마음에는 더 큰 두려움이 몰려오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인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제 아무리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두려운 현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처음부터 제거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신앙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두려운 마음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지는 않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그 두려움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되는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모든 두려움을 정복하는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항해하던 중에 큰 풍랑을 맞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만난 거대한 풍랑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장소와 위치입니다. 본문 24절을 보시면, 배가 이미 육지를 수 리나 떠났을 때 바람이 거세지고 물결이 일어났다고 서술하지요. 제자들이 거대한 풍랑을 맞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육지에서 수리를 떠난 곳이지요. 그런데 성경책 중에는 이 대목을 “바다 한 가운데”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거대한 풍랑을 맞이한 지점은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난 장소, 곧 바다의 한 가운데라는 의미입니다. 항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풍랑을 맞이했다면 쉽게 돌아올 수라도 있었겠지요.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풍랑을 맞이하면 조금만 더 힘을 내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에게 닥친 그 밤의 풍랑은 어느 지점에서 일어났습니까? 바다의 한 가운데에서 만납니다. 그 어디로도 피할 수 없는, 문자 그대로 진퇴양난의 상태이지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풍랑의 특징으로 풍랑을 맞이한 장소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그 풍랑을 맞이한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오병이어 사건 직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해가 저물어 갈 때, 곧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저녁식사로 음식을 나누어 주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하루가 끝나가는 밤 시간에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수 리를 항해한 뒤, 곧 한 밤에 거대한 풍랑을 맞이했겠지요. 그러면 이 풍랑이 언제까지 이어집니까? 오늘 본문 25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여기에 등장하는 밤사경은 지금의 시간으로는 새벽 3시부터 6시 사이가 됩니다. 한 마디로 제자들은 해가 저무는 밤시간부터 이제 곧 해가 떠오르는 새벽까지 하룻밤을 꼬박 거대한 풍랑과 맞서 싸우느라 기진맥진했다는 뜻이 되겠네요.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어렵고 다시 돌아오기에도 어려운 바다의 한 가운데, 그것도 하루 중 가장 어두운 그 시간에 제자들은 고난의 밤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날 밤 제자들이 맞이한 거대한 풍랑에 대해 가장 의아한 점은 제자들이 왜 그 밤에 바다 한 가운데 들어가게 되었는가라는 점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물결이 잔잔하다가도 갑자기 기상이 악화하여 거센 풍랑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한데, 도대체 제자들은 그 밤에 왜 바다 한 가운데로 항해를 시작했을까요? 그 대답이 오늘 본문이 시작하는 22절에 등장하거든요.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2절)
누가 그 밤에 제자들의 항해를 재촉하였습니까? 예수님이 재촉하셨네요. 여러분, 제자들은 그 밤에 예수님 곁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본문의 사건은 오병이어의 사건 직후의 일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예수님은 풍성하게 모든 필요를 채워주고 계신데, 제자들의 입장에서 왜 예수님 곁을 떠나고 싶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십니다. 예수님을 남겨둔 채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라고 재촉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제자들은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배에서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러니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만난 풍랑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했나요?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어겨 죄를 범하였습니까? 제자들이 자신들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풍랑을 당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당하는 고통은 그러한 요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생각을 접어두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당하는 인생의 풍랑이요, 고난의 밤이지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매주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면 우리의 삶이 늘 형통하기만 할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면 형통의 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생의 풍랑이나 고난의 밤은 피할 수 있을까요? 저는 목회자로서 우리 교회 성도들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인생의 풍랑이나 고난의 밤을 다 비켜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경의 가르침이 그와 다르니 저로서는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가 없네요. 분명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항해를 시작했는데, 바다 한 가운데에서 인생의 가장 힘겨운 밤을 맞이하고 고난의 풍랑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을 주는 것입니까? 우리가 아무리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더라도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고난의 밤도 인생의 풍랑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니, 신앙이 있든 신앙이 없든 상관 없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인생의 풍랑과 고난의 밤을 맞이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 마음에 있는 신앙은 우리에게 놀라운 능력을 선사하는데, 인생의 거센 풍랑 속에서도 함몰되지 않고 그 모든 역경을 마침내 이겨내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최후의 목적지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지금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나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인생의 거대한 풍랑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인생이 크게 흔들리며 요동치고 계신 분이 계신가요?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믿음을 더하여 주셔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앙으로 여러분의 삶에 찾아온 거대한 풍랑을 모두 이겨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두려워 말라
제자들은 밤이 새도록 큰 풍랑을 맞아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큰 풍랑을 맞아 괴로워하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도와주시기 위해 오셨으니, 이제 예수님께서 무엇을 해 주실 것으로 예상이 되십니까? 예수님께서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고, 제자들을 위기로부터 구해줄 것으로 생각되지 않으시나요? 그런데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풍랑을 잔잔하게 만들어 주시거나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가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신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난 즉시 하신 일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7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난 즉시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십니까? 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두려움을 물리쳐 주시네요. 지금 제자들은 바다 한 가운데에서 밤이 새도록 풍랑을 맞아 온갖 고생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난 즉시 풍랑을 잔잔하게 만들지 않으십니다. 그것보다 제자들에게 안심하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물리쳐 주시네요.
그러면, 도대체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재워 주시지는 않고, 가장 먼저 제자들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을 몰아내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제자들이 만난 거대한 풍랑을 잠잠하게 하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하지도 그리고 시급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목사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나요? 거대한 풍랑으로 밤이 새도록 고생하고 있는데 풍랑을 잔잔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도 시급하지도 않다고요? 이렇게 반문하시는 분들이 계실 듯한데요.
여러분, 조금만 더 생각해보십시오. 지난밤이 새도록 제자들 앞에는 거대한 풍랑이 있었지요. 그러면 그 풍랑 때문에 제자들이 타고 있던 배가 좌초했나요? 제자들이 바다에 빠졌나요? 그 결과 제자들이 다치거나 생명을 잃었나요? 아닙니다. 밤이 새도록 거대한 풍랑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사실 제자들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난밤에 잠을 한숨도 못 자고 고생했지요. 바닷물이 일어나서 온몸이 땀과 바닷물로 흠뻑 젖었겠지요. 이렇게 고생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무서운 풍랑이 몰아치면서 하룻밤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 실제로 제자들 중에는 다친 사람도 없고 바닷물에 빠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으세요? 어떻게 그 거대한 풍랑이 제자들이 탄 배를 덮치고 있는데, 배가 좌초되지 않고 제자들이 바다에 빠지지도 않고 다치거나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요? 저는 그 비밀에 대한 대답이 본문 23절에 담겨 있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3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도록 재촉하셨습니다. 다른 무리들도 모두 흩어보내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그 밤에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네요. 그러면 제자들을 풍랑이 이는 바다로 보내신 예수님은 그 밤에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을까요? 당연히 자신의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겠지요. 오늘 밤 그들에게 고난의 밤이 찾아올 것인데, 성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달라고 기도하셨겠지요. 그 결과 바다 한 가운데에서 제자들은 밤이 새도록 거대한 풍랑을 맞아야 했지만, 그 어떠한 풍랑도 그 어떠한 물결도 제자들을 삼킬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고난의 밤이 찾아오셨습니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고, 성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잡고 계시니, 여러분의 삶에 아무리 어두운 고난의 밤과 인생의 풍랑이 몰아친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삶은 안전합니다.
제가 어느 성도님의 가정을 심방하는데, 함께 부르고 싶은 찬양으로 “나의 등 뒤에서”라는 곡을 말씀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그 찬양을 선곡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가 큰 아픔에 있을 때에는 예수님께서 제 등 뒤에 계신 것을 몰랐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큰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제 등 뒤에서 저를 붙잡고 계셨더라고요.” 네, 맞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큰 풍랑을 만났을 때, 예수님은 바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거대한 인생의 풍랑을 맞이한 여러분에게 가장 시급하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인생을 풍랑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풍랑 속에서도 안전하를 나를 붙잡아 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겨내는 믿음입니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믿음만 있다면, 제 아무리 거대한 인생의 풍랑이 우리를 덮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고난의 밤이 찾아오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잡고 계시니, 인생의 풍랑이 여러분의 삶을 결코 침몰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찾아오는 모든 두려움을 이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의 문제로 마음에 두려움이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어떠한 질병도 여러분을 쓰러트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찾아오는 모든 두려움을 이겨 내기를 바랍니다.
재정의 문제로 마음에 두려움이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하나님은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혀주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왜 책임져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이 믿음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찾아오는 모든 두려움을 이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의 이 말씀을 듣고 여러분 마음에 몰려드는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길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인생의 모든 풍랑을 이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과정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안심하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뒤,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서 예수님께서 계신 곳을 향해 바다 위를 걸어가는 사건이지요. 본문 29절을 보십시오. “오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나에게 오라” 초청하셨고, 예수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베드로는 바다 위를 걸으며 예수님께 다가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한 번 물리쳤다고 완전히 물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본문 30절은 이렇게 말씀하잖아요.
바람을 보고 무서워 뼈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0절)
여러분, 이 장면도 언뜻 보기에는 매우 위험해 보이지요. 바다 한 가운데에서 사람이 빠져가고 있으니 얼마나 위험합니까? 그러나 사실은 결코 위험한 장면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31절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그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아 주시거든요. 베드로가 잠시 물에 빠질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그의 생명을 결코 해하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다 건져 주신다고요. 그러므로 베드로의 안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러면 이 장면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31절을 계속 보세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주시며 무엇이라고 말씀하시지요?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베드로의 마음에 또다시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두려움이 무엇으로 이어집니까? “왜 의심하였느냐?” 그것은 의심으로 이어집니다. 마침내 우리에게 가장 귀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고 마네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이 두려워하는 현실은 사실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정말 위험한 일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믿음을 잃어버리면 정말로 우리 인생에 소망이 없잖아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의심하게 하지만, 반대로 두려움을 이겨내는 진정한 용기는 우리를 굳건한 믿음으로 이끕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냅니까? 인생의 풍랑을 만났느냐 만나지 않았느냐의 차이입니까? 고난의 밤을 만났느냐 만나지 않았느냐의 차이인가요? 아닙니다. 누가 어떠한 풍랑을 맞았는지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고난의 밤이 찾아오고 인생의 풍랑이 휘몰아쳐오거든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에게도 두려워할만한 인생의 풍랑은 언제든 몰려오지요. 이때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마음에 찾아오는 두려움을 물리치지 못하여 의심으로 이어지느냐, 아니면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더 굳건한 믿음으로 나아가느냐의 차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지금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의 이 말씀을 힘입어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을 주셔서, 우리 인생의 모든 풍랑과 고난의 밤을 넉넉히 이겨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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